수입자동차 등 고가차량에 대한 자동차보험 개선안이 발표됐다. 내년부터 수리비가 비교적 많이 나오는 고가차량은 자기차량손해담보 보험료가 최대 15%까지 할증될 것으로 보인다. 고가차량의 렌트기준도 변경된다. 또 보험사기에 악용돼온 ‘미수선 수리비 제도’(예상 수리비를 미리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가 폐지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외제차 소유자들이 이번 개선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가차량 관련 자동차보험 합리화방안 세미나. /사진제공=보험연구원

◆고가차량 렌트·수리비 악용 ‘심각’

보험연구원은 지난 13일 ‘고가차량 관련 자동차보험 합리화 방안’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수입차 보험시장의 왜곡과 불균형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동안 수입차 사고와 관련된 수리비·렌트비 등 보험사의 물적 손해가 급증했지만 이에 대한 부담은 외제차가 아닌 국산차 운전자들이 떠안았기 때문.


예컨대 과실비율이 8(외제차 운전자)대 2(국산차 운전자)일 경우 외제차 수리비는 1000만원, 국산차는 50만원이 나왔을 때 외제차 운전자는 40만원만 보상하면 되지만 과실 비중이 적은 국산차 운전자는 200만원이나 물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외제차와 국산차 간 사고가 나면 국산차가 피해차량임에도 외제차의 수리비가 비싼 탓에 피해자가 수리비를 더 부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고가차의 수리비 부담이 저가차에 전가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외제차 수리비는 평균 276만원으로 국산차(94만원)에 비해 2.9배가 많고 렌트비와 추정 수리비는 각각 3.3배, 3.9배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품비는 국산차 대비 4.6배나 비싸다 보니 자동차보험 영업적자의 주요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따라 보험연구원은 보험금 누수 주범으로 꼽히는 고가차량에 대한 자동차보험 대책으로 크게 4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당국은 이 방안을 표준약관 등에 반영해 내년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1) 수리비 많이 나오면 보험료 특별할증

수리비가 전체 차량 평균보다 20% 이상 더 나오는 고가 차종에 대해 자차보험료를 3~15% 할증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특별할증요율을 신설해 수리비가 평균보다 20~30% 더 나오는 고가차의 경우 보험료를 3% 할증하고 30~40% 더 나오면 7%, 40~50% 더 나오면 11%, 50% 초과되면 15%를 할증한다.

수리비가 평균보다 50%를 넘는 국산차는 8개 모델, 외제차는 38개인 것으로 파악됐다. 외제차 중에서는 ▲아우디 A4·A6 ▲벤츠 C-클래스· E-클래스 ▲BMW 미니·3시리즈·5시리즈·7시리즈 ▲포드 ▲혼다 ▲재규어 ▲닛산 ▲포르쉐 ▲푸조 등이며 국산차 중에서는 ▲뉴에쿠스(리무진) ▲체어맨W(리무진) ▲원스톰 등이다.

(2) 중고 외제차 사고 시 렌트기준 변경

중고 외제차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보험사가 렌트해주는 기준도 변경될 전망이다. 동종모델의 신형차량이 아닌 배기량·연식 등이 유사한 동급 차량으로 렌트하는 것. 가령 중고 BMW520은 연식·배기량이 유사한 쏘나타, K5 등 국산 중형차량으로 렌트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동종의 신형 BMW520을 렌트했던 종전 대비 렌트비가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렌트기간도 ‘정비업자에게 차량을 인도한 시점부터의 통상 수리기간’만 인정되는 것으로 바뀐다.

이와 함께 불필요한 렌트기간 연장에 따른 보험료 누수를 막기 위해 현재 표준약관에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로 돼 있는 대차 적용 수리기간을 ‘정비업자에게 인도해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의 통상 수리기간’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3) 미수선 수리비 제도 폐지

특히 보험사기의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 ‘미수선 수리비 제도’가 폐지된다. 미수선 수리비는 차량을 수리하지 않아도 예상되는 수리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그간 이 제도를 이용해 일부 외제차 차주의 경우 보험사로부터 거액의 수리비를 현금으로 받은 뒤 수리는 하지 않고 차량번호판을 바꿔 달거나 보험사를 변경해 또다시 현금을 챙기는 경우가 빈번했다. 금융당국은 자기차량손해 담보 추정 수리비를 폐지하고 실제로 수리할 때만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4) 경미한 사고 시 수리기준 마련

경미한 자동차 사고에 대한 자동차 수리기준도 마련된다. 범퍼사고 정도를 1~5등급으로 구분한 뒤 파손 시(5등급)에는 범퍼를 교체할 수 있도록 하고 약간의 스크래치 피해(1~2등급)를 봤을 때는 도장만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자동차 범퍼가 살짝 긁혔을 경우에는 부품을 통째로 교체하더라도 보험금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보험사, 연간 2000억 절감효과

이번 개선방안이 시행되면 앞으로 보험사의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평균수리비를 초과하는 외제차 보험료에 할증이 붙으면서 그만큼 보험료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보험료 인상, 렌트비 제도 개선, 추정(미수선) 수리비 폐지 등으로 연간 2000억원가량의 보험금 절감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외제차 등 고급 승용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가입자에게서 보험료를 더 걷는다면 이로 인한 혜택은 중소형차량 운전자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뿐 아니라 학계, 소비자단체 등도 당국의 의지에 호의적인 분위기다. 다만 이번 방안이 저가차량 운전자에게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물적손해 1원당 보험료를 살펴보면 저가차량 운전자의 경우 1.63원인데 반해 고가차량 운전자는 0.75원으로 저가차의 보험료 부담이 고가차에 비해 2.2배 높은 상태다. 저가차량 운전자들이 고가차량 운전자의 물적손해를 부담하고 있다는 뜻이다.

보험소비자원 관계자는 “그동안 외제차로 인해 많은 중소형차 운전자들이 피해를 봤던 만큼 이번 개선안을 반긴다”며 “고가차량의 자차보험료를 할증하는 만큼 저가차량 운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가차량 소비자의 권익제고 방안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0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