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TNR’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A씨(26·여)는 최근 아파트 인근에서 웅크려있는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고양이를 발견한 첫날 A씨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날이 지나도 그 고양이는 눈에 들어왔다. A씨는 먹을 것을 사들고 고양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고양이의 한쪽 귀는 V자 홈으로 1cm가량 파여 있었다. 이후 A씨는 우연히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길고양이 집만들기’에 대해 접했다. 스티로폼이나 아이스박스에 동그란 구멍을 낸 후, “치우지 마세요. 겨울이 지나면 제가 치우겠습니다. 010-XXXX-XXXX”라고 적어놓으면 끝이었다. A씨는 “같은 생명체잖아요. 제가 추위를 많이 타서 알아요. (그 고양이가)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고양이 집' /사진=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제공
길고양이에게 먹이는 때론 사치다. 길고양이는 안전하게 기거할 은신처가 절실하다. 그만큼 도심 속의 길고양이에겐 편히 쉬고 잠들 안전한 장소가 없다. 고양이들은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사람의 평균 체온은 36.5도, 고양이는 38.5도다. 농촌의 고양이들은 그나마 낫다. 헛간, 낙옆더미, 바람이 들지 않는 골짜기 등은 고양이들에게 안식처가 된다. 그러나 도심의 길고양이는 생존을 위해 투사한다. 특히 냉혹한 바람이 부는 겨울이 다가오면 어미 고양이는 새끼를 품고 바람을 막는다. 하여, 아파트 지하의 온수가 흐르는 배관이나 자동차의 채 식지 않은 본넷 상판에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간다. 이를 본 시민들은 고양이를 내쫓는다. 고양이들이 학대받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울시 동물보호과의 올해 생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11월 기준 서울시 길고양이 개체수는 20여만 마리다. 전국의 길고양이는 약 100여만 마리로 알려져있다. 동물보호법시행규칙 제13조에 의하면 중성화하여 포획장소에 방사된 길고양이는 구조·보호조치 제외 동물이다. 길고양이가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로 정의되기 때문에 도심지나 주택가를 고양이들의 서식지로 보는 것이다. 즉, 지리산의 반달곰이 포획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놓아주듯, 도심의 고양이들 역시 시민들과 불편한 동거를 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특히 번식기에 나타나는 발정음 등으로 인한 소음, 고양이들 간의 투쟁 등은 가장 큰 불편사항이다. 때문에 민원은 끊이지 않는다. 2008년 이전 국가는 고양이들을 잡아 안락사 시켰다. 하지만 2008년부터 서울시는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TNR은 길고양이를 포획(Trap)해 불임수술(Neuter)을 시킨 후 제자리에 방사(Return)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고양이들의 번식기에 나타나는 울음소리로 인산 소음, 고양이들간의 투쟁 등이 줄어 시민불편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장기적으로는 고양이의 번식력을 낮춰 전체 길고양이 숫자를 줄어들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 중성화수술 때 예방접종을 병행하기 때문에 세균감염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있다.
길고양이 중성화(TNR) 사업 절차. /자료=서울시 동물보호과
그렇다면 TNR 사업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까.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TNR 담당자인 박아름 활동가는 “현재로선 TNR이 가장 인도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전 안락사를 시킨 것에 비해선 훨씬 나은 방책이란 것이다. 박 활동가에 의하면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영역표시를 하는데, TNR을 시키면 (길고양이가) 배회하는 빈도가 줄어 시민들과 고양이들 모두에게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박 활동가는 길고양이 문제의 대안으로써 ‘입양’에 대해서는 다소 주저했다. 그는 “집 안으로 들이는 것만이 야생고양이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기묘나 유기묘의 새끼 고양이들의 경우 입양을 보내는 경우가 있지만, 야생에서 자란 길고양이의 경우, 오히려 서식지를 잃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딜레마는 여기서 발생한다. 현재의 도심은 고양이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고양이들은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데, 콘크리트 바닥과 건물로 뒤덮인 도심에서 고양이들이 따뜻한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길고양이들은 대개 사람을 피한다. 자동차 아래나 건물 사이, 도심 후미진 곳곳에서 길고양이들은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다.
현재의 도심은 고양이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진=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제공
길고양이의 복지 증진과 길고양이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한 선결 과제로서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고양이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반드시 중성화 수술을 해서 평생 돌보고 함부로 밖에 배회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카라는 “책임지고 평생 돌봄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고양이를 키우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라는 또 “고양이를 물건처럼 사고 파는 사람들이 있는 한, 불임수술과 에방접종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고양이를 배회시키다 거리에 슬그머니 방출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길고양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에 의하면 2008년부터 시작된 TNR 사업으로 시의 길고양이는 연평균 5200여 마리가 중성화 수술을 했으며, 2015년 11월 현재 누적된 개체수는 3만7000여 마리다. 서울시는 내년 TNR사업 목표를 1만 마리로 잡고 있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관계자는 “길고양이 (문제) 해결방법은 TNR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박 활동가 역시 “영역동물인 고양이가 (TNR로써) 자신의 영역에서 최대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양이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TNR로 (소음 등의 시민) 불편을 겪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 시청이나 구청에 제보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활동가는 무엇보다 “고양이들도 도심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양이들도 도심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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