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가계부채 관리방향 및 은행권 여신심사지침’을 확정했다. 가계대출 비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데 따른 조치다.

이번 지침은 대출자의 상환능력 평가를 좀 더 세심하게 살피고 이자만 갚는 방식에서 원금과 이자를 한번에 갚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수도권은 내년 2월1일부터, 비수도권은 내년 5월2일부터 제도가 시행된다. 시행까지 2~5개월가량 남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은행들은 의외로 차분한 분위기다.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줄면서 장기적으론 예대마진 축소가 불가피하겠지만 사전에 충분히 예상했던 만큼 추이를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손병두 금융정책국장의 '주택담보대출 여신심사 가이드라인과 가계부채 대응방향' 브리핑 모습. /사진=뉴시스 박진희 기자

◆새 주담대, 어떤 내용 담겼나
우선 새로운 주택담보대출 지침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살펴보자. 새 가이드라인은 크게 ▲객관화된 소득증빙서류 제출 ▲집을 사는 경우 거치기간 1년 이내 적용되는 분할상환대출 ▲변동금리대출 상승 가능금리인 ‘스트레스 금리’(Stress rate) 적용 ▲채무상환비율(DSR)지표 도입 등 4가지로 나뉜다.

핵심은 대출자의 상환능력 검증강화다. 담보가 있더라도 객관적인 상환능력을 평가해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 또 제도시행 이후 신규로 대출받는 경우 원금과 이자를 같이 낼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했다. 기존대출자의 경우 만기를 연장할 때 비거치식 분할상환으로 유도할 방침이다.

변동금리대출 억제정책도 시행한다. 신규 주택담보대출과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은 앞으로 금리상승에 대비해 스트레스금리를 적용, 상환능력을 평가하도록 했다. 스트레스 DTI(총부채상환비율)가 80%를 초과할 경우 고정금리로 대출받거나 대출한도를 80% 이하로 줄여야 한다.


예컨대 연소득 3000만원인 직장인이 3억원 상당의 주택구입을 위해 만기 10년(금리 2.5%)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2억1000만원을 신청하면 고정금리를 적용받거나 당초 희망금액보다 2300만원 적은 1억8700만원만 대출받을 수 있다.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확실히 가늠하기 위해 DSR지표도 도입된다. DSR은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액과 기타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을 합산해 대출자의 소득대비 부담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기존의 DTI는 기타부채 이자상환액만 고려해 대출자의 실질적인 상환능력을 평가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신규취급 주택담보대출이라 하더라도 3000만원 이하 소액대출은 소득증빙 시 최저생계비로 활용 가능하고 의료비나 학자금 등 불가피한 생활자금은 비거치식 분할상환에서 예외로 적용했다. 또 최근 급증하는 집단대출은 대출의 특성상 획일적 적용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가이드라인 적용에서 제외했다.


/사진=뉴시스 고범준 기자

◆은행 영업점 ‘썰렁’… 고객 반응 덤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됐지만 금융소비자의 반응은 의외로 덤덤하다. 은행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고객문의가 많지 않다는 것.

A은행 관계자는 “내년부터 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문의전화가 오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건수가 많지 않다”며 “이번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명확하게 나온 만큼 새 제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며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B은행 관계자는 “지역별로 반응이 다소 엇갈린다”며 “강남과 서초지역은 거의 문의전화가 없었고 의정부와 수유, 은평, 용인 등 강북과 경기권 영업점에선 새로운 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물어보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C은행 관계자는 “화정과 의정부, 노원, 청담, 청라, 여의도 등 6개 지점의 분위기를 확인했지만 고객의 문의전화가 거의 없다”며 “오히려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초미의 관심사였던 집단대출이 이번 규제대상에서 빠지면서 금융소비자들도 안도하는 것 같다”며 “전체적으로 (대출) 수요가 둔화되는 측면은 있겠지만 (이번 제도가)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제2금융권은 반사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저축은행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20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8000억원에 불과하다. 19조2000억원이 신용대출인 셈. 따라서 이번 규제강화를 계기로 주택담보대출 비중을 높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주담대)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제1금융권 문턱을 넘지 못한 실수요자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이들은 자연스럽게 저축은행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이번 대출규제가 저축은행엔 호재로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은행, 집단대출 마케팅 집중 예상

금융위가 대출규제를 강화한 이유는 점점 불어나는 가계부채가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말 가계부채는 약 1200조원에 달한다. 미국이 12월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7년 만에 제로금리를 벗어났고 장기적으로 우리나라도 금리인상에 나서야 하는데 이럴 경우 가계부채가 대규모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을 까다롭게 적용해 순차적으로 늘어나는 빚을 줄이겠다는 게 금융위의 의도다.

하지만 일각에선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집단대출을 예외조항으로 뒀기 때문. 올해 9월 말 현재 은행권의 집단대출 규모는 104조6000억원에 이른다. 주택거래량의 41.7%에 달한다. 은행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내년부터 집단대출 마케팅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변동금리 억제정책도 마찬가지다. 변동금리 대신 혼합형 고정금리(변동+고정금리)를 선택한다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시중은행의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대부분은 5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로 바뀌는 5년 혼합형 상품으로, 금융당국은 이 상품을 고정금리로 분류한다. 이밖에 주택담보대출이 줄어드는 대신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신용대출이 크게 늘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박원갑 위원은 “정부가 그동안 강력한 대책을 내놨어도 실수요자들은 규제를 피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출을 받았다”며 “이번 규제와 관련해 정부가 예상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