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낙산구간은 서울 골목 걷기의 대표적인 명소다. 성곽을 중심으로 안쪽에는 이화마을이, 바깥에는 장수마을이 있다. 비슷한 듯하지만 뭔가 다른 분위기, 전혀 다른 맛이 있는 두 동네, 그 골목을 걸어본다.
한양도성
◆한양도성 낙산구간
한양도성은 수도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연결해 쌓은 성이다. 총 18.2㎞다. 낙산구간은 혜화문, 낙산, 흥인지문까지 이어지는 코스로 2.1㎞다. 이 중 낙산공원은 도성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낙산은 그 모양이 낙타의 등처럼 생겼다고 낙타산이라고도 했고 궁중에 우유를 보급하던 목장이 있어 타락산이라고도 불렀다. 풍수지리상으로는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한다. 산이라고는 하나 그리 높지 않다. 완만하게 경사가 이어져 산책 삼아 느긋이 오르기 좋다.
이 공원 최고의 볼거리는 전망이다. 낙산공원에 오르면 서울의 북동쪽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서울 도심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성곽 자체를 살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자세히 보면 성곽의 재료가 조금씩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축성과 보수를 반복하면서 시기별로 다른 재료를 썼기 때문이다. 이런 소소한 지식과 볼거리, 역사, 인물들은 ‘낙산전시관’에 들르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물론 더 재미있고 유익한 방법은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것이다. 사이트를 통해 예약하면 순성 프로그램에 참여해 볼 수 있다.
성곽 안 쪽, 아래에 있는 흥덕이밭도 재미있다. 이 밭은 임금이 하사한 땅이다. 병자호란 후 봉림대군이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있을 때 흥덕이라는 나인이 김치를 담가 대군에게 올렸다고 한다. 봉림대군은 후에 왕위에 올랐고(효종) 그때 김치맛을 잊지 못해 나인 흥덕이에게 낙산 아래 밭을 주고 계속 김치를 담가 바치게 했다고 한다. 그 밭이 이곳이었는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여기서 나온 배추로 담근 김치는 꽤나 맛이 좋을 것 같다.
이화마을
◆벽화의 성지, 이화마을
이화동은 예전 드라마의 ‘달동네’로 단골 등장하던 촬영지였다. 낙후한 동네의 상징이었던 이곳이 2006년 70여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ART in City 2006-낙산 프로젝트’를 통해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여행자들은 카메라를 들고 여행의 추억을 담고 이제는 해외여행자들도 빈티지한 여행을 즐기러 이 골목, 이화마을로 온다. 방송에 등장해 유명해진 소위 ‘날개’ 벽화는 수많은 지자체에 의해 복제됐고 언제나 사진을 찍으려는 줄로 복잡하다. 계단을 수놓은 물고기와 꽃, 하늘을 향해 선 신사의 조형물, 그 사이를 옛날 교복을 입고 여행하는 여행자들…. 한옥마을이나 옛 궁궐에서 한복을 입고 여행하는 것이 유행이라면 이곳의 진풍경은 까만 옷에 하얀 깃을 받친 교복과 빨간 가방, 노란색 ‘선도’ 완장을 찬 여행자들이다.
교복 입은 여행자를 따라가 보니 ‘잘살기기념관’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1965~1987년까지 '잘살기학원', '대명중학'의 이름으로 불우청소년 3600명을 졸업시킨 곳이다. 설립자 마대복 선생은 경희대 3학년 때 학교를 세우기 위해 대학 구내에서 구두닦이를 했다. 이런 미담이 여러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후원자와 기부자가 줄을 이었고 마침내 학교를 설립했다. 평탄치 않았던 그간의 사정과 함께 아름다운 사연들도 많았던 학원의 역사는 이곳 '잘살기기념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이 기념관에서 청소년 상담과 체험학습 등을 하며 ‘옛날 교복입고 여행하기’의 교복 대여 장소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봉제박물관 수작, 이화동마을박물관, 풀무이치공장, 이화동갤러리, 이화동책공방 등 골목을 꼼꼼히 돌아보면 구경할 것도 많고 해볼 것도 많다. 예쁜 카페도 곳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발품팔이의 피곤함도 잠시 달랠 수 있다.
장수마을
◆벽화를 지우는 장수마을
장수마을은 이화마을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다. 낙산공원 성곽에는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는 암문이 여러개 있는데 서쪽으로 난 조그만 문을 나오면 그 아랫동네에 장수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정착민의 마을이다. 1960년대 이후 농촌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집값이 싼 성곽 주변·청계천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된, 소위 말해 판자촌이었다. 한때 이런 마을들을 없애고 개발하기 바빴다. 이 마을, 즉 삼선동 일대 역시 뉴타운개발지구였으나 주민투표로 재개발을 중단하고 마을 재생사업을 벌였다. 계단을 정비하고 난간을 만들었으며 도시가스를 놓고 집집마다 시설을 확충했다. 마을 재생사업과 함께 벽화도 그렸다. 그렇지만 지금은 벽화 몇 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떠나기보다는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주민들은 마을의 환경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벽화 때문에 한때 관광객이 휩쓸고 지나가는 시끄러운 동네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쿨하게 벽화를 지우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에는 자연스럽고 푸근한 향수가 흐르는, 옛 골목을 그리워하는 여행자들만 조용히 왔다 갈 뿐이다.
장수마을이란 이름은 주민의 65% 이상이 65세 이상이어서 지어졌다. 어르신 대부분이 이곳에 거주한 지 50년이 넘었다. 이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한양도성 문화재 보존지역이라 함부로 건물을 부수고 신축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골목 사이엔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전시한 ‘마을박물관’이 있다. 규모도 크지 않고 주택을 리모델링했기 때문에 지나치기 쉽다. 그렇지만 이런 매력이 장수마을의 가치일 것이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번듯한 조선시대 기와집이 하나 있다. 이것은 삼군부 총무당이다. 1868년 고종 5년에 지은 것으로 원래는 총무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청헌당과 덕의당이 있었다. 1870년 화재로 청사의 건물 79칸이 소실되고 같은 해 10월에 다시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보병사령부 건물로 쓰이다가 한양도성이 파괴되면서 주변 마을들도 황폐화됐고 마찬가지로 청헌당과 덕의당도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게 소실됐다. 지금은 총무당을 중심으로 쉬어갈 벤치와 어른들을 위한 정자가 있어 마을의 공원 역할을 한다.
바람막이 비닐을 친 정자에 앉아본다. 예쁜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이화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조금은 쓸쓸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여행의 맛이니 오히려 여기가 좋더라’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여행 정보]
낙산공원
골목을 걷는 여행이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차를 타고 온다면 낙산공원 주차장에 주차한다. 다만 주차장의 수용 차량 대수가 충분하지 않다.
주차요금: 5분당 150원
문의: 02-744-4184
[대중교통]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출구 - 낙산공원으로 도보 이동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 - 이화동 - 낙산공원으로 도보 이동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낙산공원: 검색어 ‘낙산공원’ / 서울 종로구 낙산길 41
낙산전시관
문의: 02-743-7985
관람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관람요금: 무료
서울한양도성
http://seoulcitywall.seoul.go.kr/
사이트에서 해설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다.
낙산코스 예약: 평일 오전 10시, 오후 2시, 주말 오전 10시, 오후 2시, 오후 3시
문의: 120 (다산콜센터)
● 음식
돈텐동식당: 수제돈까스·우동 전문점으로 가격이 착하고 맛도 좋다. 돈까스는 직접 만들고 우동 육수도 통영멸치·가쓰오부시로 12시간 이상 끓인 것을 쓴다.
수제돈카츠, 가츠동, 가키아게우동, 가라미소우동 등 모든 메뉴 각 6000원
070-4103-4132 /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길 51
혜화칼국수: 혜화동 로터리에 있는 손칼국수집으로 수십년을 이어온 맛집이다. 진한 사골국물의 안동식 ‘국시’가 별미인데, 최근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국시(칼국수) 8000원 / 수육 1만5000~2만8000원 / 바싹불고기 1만5000~2만8000원
02-743-8212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35길 13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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