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 걸러 한 집이 편의점인 시대. 자고 일어나면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의점의 성장세는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급증하는 시장만큼 경쟁도 당연히 치열할 터. 때문에 5대 편의점 가맹본부는 ‘기존 가맹점사업자로부터 250m(도보통행 최단 거리 기준) 내에 신규 가맹점 및 직영점을 개설하지 않는다’는 영업지역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점주들은 과연 이 제도에 따라 상권을 보호 받고 있을까.

“250m의 덫이죠. 겉으론 점주들의 상권을 보호하는 조항인데 실질적으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점주들 피해만 커지는 거죠.” (수도권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

“250m라는 숫자는 가맹점주들간 서로의 상권을 확보해주되 신규 가맹점 개설 시 이 정도는 안 된다고 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 아닙니까? 250m를 기준으로 정한다는 말 속에 딱 250m만 벗어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가 있을 줄은요….” (지방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


부산에 위치한 C씨의 점포

무늬만 출점제한… 점주만 ‘울상’
최근 편의점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신규 출점 거리 제한(도보 250m)을 두고 본사와 점주들과의 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은 모호한 거리 기준. 본사는 “거리제한을 넘겼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점주는 “측정 방식이 모호한 엉터리 제도”라는 입장이다.

부산에서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점주 C씨는 가게 문을 연지 2년 쯤 됐을 무렵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자신의 점포 인근에 다른 세븐일레븐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편의점 계약 시 약속돼 있던 출점거리 제한 조항을 철썩 같이 믿었던 C씨는 직접 자신의 점포와 해당 점포 사이의 거리를 측정했다. 당시 C씨가 측정한 두 지점의 최단거리는 약 230m. 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측정한 양 점포의 벽과 벽 사이 기준거리는 최소 245m~최대 252m 였다.


C씨는 “최소 거리인 245m는 벽을 따라 보통 사람이 걷는 루트를 반영한 측정방식이고 최대 거리인 252m는 대기업 가맹본무의 측정 방식으로 길의 중간을 수직으로 가는 방식이었다”며 “우여곡절 끝에 거리를 측정한 공정위의 최종 입장은 정확한 측정 기준이 없어 판단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C씨는 결국 법원에 해당 건을 의뢰했다. 1심 법원은 본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건물간의 거리를 측정한 결과 최소 246m~251.5m”라며 “계약 위반에 해당된다고 보여지기는 하나 이 사건은 가맹계약서 상의 중대한 불신행위로 보여지지 않는다고 여겨진다”고 판결했다.


현재 C씨 편의점 내부모습

현재 C씨는 법원의 1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소한 상태다. C씨는 “2년여동안 싸움을 이어오면서 재정상황은 엉망이 됐고, 가게 문은 닫은 지 반년이 넘어간다”며 “단순히 1~2m 정도의 유치한 숫자싸움이 아니라 거대한 대기업 가맹본부가 행한 중대한 불신행위를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원칙 없는 조항으로 피해를 본 사례는 C씨뿐이 아니다. 서울에서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운영 중인 D씨도 몇 년 전 가까운 곳에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들어서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D씨는 “사실상 200m도 안 되는 곳에 동일한 브랜드의 편의점이 생겼다”며 “본사에 항의했더니 길 건너에 있기 때문에 상권이 다르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D씨는 “매출도 줄고 피해가 크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게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건너편에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도 생겨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세븐일레븐 측은 이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C씨 점포 인근에 새 매장을 오픈할 당시 상권조사와 인근 점포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진행했다”며 “당시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는 이면도로로 실측했을 때 C씨의 점포는 280여m, 인근 또 다른 점포는 이보다 더 가까운 270여m가 나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는 새 매장이 출점하면서 C씨의 점포 매출이 떨어진게 아니라는 방증”이라며 “C씨 점포 주변에 있던 대학교가 이전하면서 원룸이 빠져나가는 등 배후상권의 변화가 생겼고 개인 마트와 타 브랜드의 편의점까지 생겨나면서 매출에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사차원에서 여러 가지 지원방향을 제안해 협의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점주의 요구사항과 회사가 지원할 수 있는 지원안의 차이가 너무 커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D씨의 점포에 대해선 “모범거래기준이 생기기 전에 신규출점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며 “당시에는 길 건너 상권이 다르다고 보고 오픈했으나 모범거래기준이 생긴 뒤에는 250m기준을 준수하면서 신규출점을 해왔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250m거리제한의 무용론에 대해 “사실상 기준이 명확치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회사 자체적으로 출입문과 출입문 사이라는 기준을 가맹계약서에 넣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편의점 가맹본부가 적용 중인 ‘영업지역제도’ 자체에 여러 예외 조항이 있어 무부별한 편의점 출점을 막을 순 없다고 지적했다. 편의점 본사들은 상권이 구분되는 지형지물, 특수상권, 10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기존 가맹점 고객들이 옮겨갈 가능성 등을 예외로 두고 있어 사실상 무용지물의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예외조항이 너무 많은데다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편의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제 살 깍아먹기식 경쟁을 하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소관법령을 재정비해 가맹본부와 가맹점간의 갑을관계 병폐 개선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