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진씨(28)는 A보험사의 상품에 가입하라는 마케팅 전화를 자주 받는다. 텔레마케팅으로 의심되는 번호가 뜨면 거절 버튼을 누르지만 하루에도 2~3통씩 반복되는 전화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박상우씨(26)는 최신 휴대폰을 개통하라는 B통신사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정중히 가입을 거절하고 화도 내봤지만 며칠 후면 똑같이 가입을 권유하는 탓에 이골이 난 상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텔레마케팅은 주로 고객이 금융상품에 가입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최근 은행들이 보험·카드사를 비롯해 통신사·항공사 등과 손을 잡으면서 고객의 개인(신용)정보가 기업에 대거 공유되고 있다. 고객은 은행 한곳과 거래할 뿐이지만 사실상 2~3개 기업의 마케팅 대상이 되는 셈이다.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 은행, 고객정보 공유 너무 많아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개인정보공유업체를 조사한 결과 평균 2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휴업체는 카드·보험 등 금융사부터 주요 통신사·항공사·헬스케어서비스회사까지 업종이 다양하다.
신한은행이 제휴한 금융사는 현대해상·동부화재·KB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미래에셋자산운용 등 10곳이며 SK플래닛·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기업 6곳을 포함하면 총 16개 업체에 이른다. 최근 신한은행이 출시한 ‘T 주거래적금’은 인터넷데이터를 이자처럼 적립해주는 상품으로 SK텔레콤과 SK그룹에 고객의 성명, 생년월일, 휴대폰 번호, 고객번호(은행용)가 제공된다. 개인정보는 거래종료 후 5년까지 SK텔레콤과 공유한다.
우리은행은 삼성화재·KB손보·삼성증권·현대캐피탈 등 금융사 9곳을 비롯해 16곳의 각종 기금과 공단 등 총 25개 업체와 고객정보 제휴를 맺었다. ‘우리사랑가득찬적금’, ‘우리잇적금’ 가입 고객은 삼성화재에 개인정보가 공유되고 각각 상해보험과 여성암보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받는다.
KEB하나은행은 동부화재·더케이손해보험·미래에셋자산운용·하나UBS자산운용 등 금융사 10곳과 LG유플러스·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 기금 18곳의 손을 잡았다. KEB하나은행은 대고객 이벤트를 실시할 때 미래에셋·하나UBS자산운용에 이벤트 고객의 개인식별정보를 공유한다.
KB국민은행도 동부화재·현대해상·미래에셋자산운용 등 7곳의 금융사와 기업 17곳 등 총 24곳의 제휴사에 고객정보를 제공한다. 최근 인기를 끈 ‘KB아시아나ONE’ 통장은 고객의 생년월일, 회원번호, 마일리지, 거래일자 등이 아시아나항공에 공유된다. ‘가족사랑자유적금’과 ‘와인정기예금’ 고객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이메일주소, 계좌번호가 헬스케어서비스업체 유비케어에 전달된다.
◆ OO페이 대전, 공유 확대 예고
최근 삼성페이가 모바일결제시장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은행과 전자기업, 이동통신사 간 제휴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 은행은 OO페이 기업을 위탁사업자(채널)로 지정하고 고객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지만 관련 서비스 개발을 위해 ‘제3자 정보제공’을 활용한 고객정보 제휴가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사와 제3자 정보제공업체는 개인정보보호법 제30조에 따라 고객에게 제휴사실을 서면으로 동의받아야 한다. 전자금융에서 공인인증서를 통해 전자서명을 받으면 금융정보를 ▲금융거래 ▲상품 및 서비스 홍보 및 판매 권유 ▲회원가입 및 관리 ▲온라인거래 관련 목적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삼성페이와 은행 간 ATM 협력사업에 고객정보 제휴를 제한했다. 특히 삼성페이의 은행 ATM서비스 중 잔액조회 기능은 ‘금융실명법상 고객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고객이 삼성페이로 ATM에서 잔액을 조회하면 개인정보가 노출돼 삼성전자의 마케팅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지난 3월11일 삼성페이는 제휴은행에 서비스 연기를 요청하고 금융당국의 새로운 유권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은행이 삼성페이를 단순한 플랫폼으로 이용하면서 위탁사업자 계약을 맺으면 금융당국이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며 “조만간 은행에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페이의 은행서비스가 원활히 이뤄지면 LG유플러스의 ‘LG페이’도 은행과 제휴를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LG유플러스의 LG페이는 스마트폰에 여러 종류의 신용카드정보를 입력한 후 결제할 수 있다. 마그네틱 보안전송(MST), IC칩, 근접무선통신(NFC) 결제방식을 모두 지원하며 조만간 시범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다.
◆ 획기적 결합상품, 그러나…
은행의 고객정보 제휴는 획기적인 결합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고객의 정보유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킨다. 통상적으로 금융상품은 개인정보 제휴업체에 일정기간 고객정보를 공유한다. 결합상품은 만기 후 5년까지, 경품이벤트는 경품을 제공한 날부터 1개월까지 고객정보가 마케팅에 활용된다.
비금융사의 전자지급서비스는 해킹 등 사이버침해사고, 정보시스템 및 내부프로세스 결함, 운영인력 실수 등으로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고 다수 금융사의 금융정보를 보유·이용하면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높다.
윤태길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차장은 “비금융사의 전자지급시스템은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발전이 저해되지 않도록 당분간 규제를 정비하고 서비스제공업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케팅 전화를 막기 위해 은행에 ‘전화 수신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법도 있다. 고객은 은행 영업점을 방문하거나 고객센터에 전화해 금융회사나 제휴업체가 상품·서비스에 대한 전화 마케팅을 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다. 단, 배우자 등 가족 및 제 3자는 신청할 수 없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은 개인정보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밀번호는 암호화로 저장·관리하고 중요한 데이터는 파일 및 전송데이터를 암호화하거나 파일 잠금기능을 사용한다”며 “정보보안은 안심해도 되지만 마케팅 전화가 부담스럽다면 전화 수신거부권을 활용하라”고 권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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