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여행자가 모르는 ‘무엇’이 있다. 그 ‘무엇’ 때문에 여행은 탐험이 된다. 통영의 강구안, 항남동에는 무엇이 있을까. 따스한 기억을 안겨주는 골목 여행을 떠나본다.
강구안 골목
◆시인과 대장장이가 있는 강구안 골목
잔디노래방 - 스트레스 풀러 오이소 → 금잔디미용실 - 30년 이상 경력 → 시민탕 - 소박하지만 정겨운 목욕탕
골목 입구 표지판에 써 있는 문구가 재미있다. 시민탕에서 목욕을 하고, 금잔디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면 되겠다.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어볼까. 그 전에 술을 한잔 해야겠구나.
집집마다 가게를 소개한 주인장의 안내 문구가 달려 있다. 자신의 짧은 인생사 소개는 소박하면서도 정이 가는 내용들이다. 한집 한집 다 들어가서 말하고, 듣고, 맛보고, 즐기고 싶어진다.
골목에는 백석 시인의 시가 자주 보인다. 통영 여인을 사랑해 이곳까지 찾아온 그는 사랑의 상처만 안고 서울로 돌아갔다. 상처가 독이 됐는지, 약이 됐는지 그는 통영에 대한 아름답지만 쓸쓸한 시를 여러 편 남겼다.
‘… 나는 가난한 아버지를
가진 것과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그렇게도 살들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
그는 가난했고,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랑했던 여인 ‘란’을 얻지 못했다. 백석은 절친이던, 그러나 백석과는 달리 부유했던 동료 기자 신현중에게 여인을 빼앗겨 사랑과 우정을 모두 잃었다. 돈도 없고, 여자도 없고, 친구도 잃은 남자…. 후에 그는 ‘자야 부인’ 김영한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통영에 왔던 그 순간만큼은 불행의 나락이었을 것이다.
골목길 끝에는 오래된 대장간이 있다. 칼과 끌,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연장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자니 “두들길 때 왔어야지!” 라며 대장장이 어르신이 말을 건네신다. 바닷가의 대장간이다 보니 고기잡이와 관계된 물건들을 많이 만드셨다. 뜨거운 불 앞에서 수백만번을 두드리셨을 것이다. 이곳에서 50년을 넘게 어구와 농기구를 만드셨다는 이평갑 어르신이다.
이평갑옹
무뎌진 식칼 두개를 가져온 손님이 있어 금방 대화가 끊긴다. 칼 가는 일쯤은 전기 숫돌이 해낸다. 안전안경을 쓰고 ‘징~’하며 불꽃을 튀기는 어르신의 손놀림에 긴 세월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화가와 인력거꾼이 있는 항남동
이제 옆 블록으로 골목을 옮겨보자. 모르고 보면 그냥 오래된 골목길이다. 옛날식 가정집과 여관, 술집, 식당이 섞여 있는데 건물들이 그리 높지 않다. 아니, 조금만 더 살펴보면 쓰러져 가는 가옥이 몇채, 빈 집도 몇채 보인다. 아니,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일제시대 적산가옥들이다. 생각해보니 포항, 군산, 대구 인천 등 여러 지역에서 ‘근대 문화 거리’라는 이름으로 일제시대 가옥들을 복원하고 그 의미를 이야기 하기 바쁜데 여긴 별다른 ‘메이크업’을 안해놨다. 소위 ‘관광상품화’가 안돼 있다. 어떤 집은 텅 빈 채 고양이 놀이터가 됐다. 두 동으로 된 이 집은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두 건물의 양식이 달라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그저 문이 굳게 잠겨 있을 뿐이다. 어떤 창고는 벽에 사선으로 나무를 댄 모습이 독특하고 실내에 충분히 빛이 들어오는 것도 신기하다. 이곳 역시 고양이가 자리를 잡고 새끼를 낳았다.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원래 모습대로, ‘레알’ 적산가옥들이다. 모르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김구 선생이 다녀갔다는 여관은 동양모텔로 바뀌었는데 후에 3층을 증축한 흔적이 특이하다. 이중섭 화가가 지내던 집도 있다. 공예가 유강열과의 인연으로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데셍을 가르쳤다는 이중섭은 통영에서 '흰 소', '황소', '도원' 등 그의 대표작을 완성했다.
인력거 투어
이 골목길의 속살을 살펴보는 여행은 토박이 이승민씨의 인력거투어로 할 수 있다. 바로 이곳 항남동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승민씨는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할 텐데도 골목을 설명할 때마다 신이 나는 모양이다. 슬쩍 자기 집터도 보여준다. 집터가 다 공원으로 바뀐 것으로 보아 이 동네에서 꽤 '빵빵한' 집안이었나 보다. 벽 한쪽이 허물어지고 다 쓰러져 가는 2층 목조건물은 자신이 어렸을 때 과외공부를 받던 집이라며 지금은 들어가 볼 수 없는 내부 구조를 자세히도 설명해 준다. 걸음을 뗄 때마다 동네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기 바쁘다. 안내문이나 책자에는 나오지 않은 골목의 진짜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마주할 수 있으니 좋다.
◆할머니 김밥과 꿀빵
통영에 오면 김밥을 먹는다. 보통 ‘충무 할매 김밥’이라 불리는 이 김밥에는 ‘충무’라는 옛 지명과 밥을 만드는 ‘할머니’가 있다. 뱃사람들이 빨리 먹을 수 있도록 생김에 밥을 손가락만하게 말고 석박지와 오징어무침을 곁들였다. 투박하고 단순한 맛인데 희한하게 중독성이 있다. 김밥이 쉽게 상할까봐 김밥 안에는 다른 재료를 넣지 않았고 옻칠한 그릇에 담아 이것을 할머니들이 머리에 이고 포구에 나가 팔았다고 한다.
꿀빵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중앙시장에서 문화마당까지 이어지는 상점들은 꿀빵의 각축장이다. 팥소를 넣은 동그란 빵을 기름에 튀기고 시럽을 묻혔는데 팥의 단맛과 설탕의 단맛 사이로 고소한 튀긴빵이 경계를 만든다. 단호박꿀빵, 찹쌀꿀빵, 완두콩꿀빵, 크림치즈꿀빵 등 다양해진 ‘단맛’ 때문에 단순하고 소박했던 김밥 맛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다. 길을 따라 걸으며 주는 대로 먹었더니 입은 달고 배는 찼다.
꿀빵
문화마당 앞 포구에는 조선군선 3대가 정박해 있다. 이순신 장군을 상징하듯 뱃머리 장식은 어김없이 거북이 머리다. 이 머리는 갈매기들의 인기 있는 쉼터다. 용맹한 표정의 근엄한 거북이 머리와는 대조적으로 갈매기는 통영의 물결과 바람처럼 평화롭기만 하다. 강구안 포구는 항아리를 닮아 아늑하고 바다의 물결은 호수 같다. 사투리는 푸근한 맛이 있고 사람들은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여운과 감성이 느껴진다. 바로 이곳이 갈매기도 시를 쓸 것 같은 예향의 도시, 통영이다.
[여행 정보]
통영 강구안 가는 법
경부고속도로 - 통영대전고속도로 - 통영IC에서 ‘통영, 한려해상국립공원(통영지구)’ 방면으로 우측 - 남해대안로 - 미늘삼거리에서 ‘시민문화회관, 시청’ 방면으로 좌회전 - 통영해안로 - 정량안길 - 비석1길 - 동문4길 - 동문로 - 중앙시장2길 - 통영해안로 - ‘미륵도관광특구, 케이블카승강장, 여객선터미널’ 방면으로 좌회전 - 통영해안로
[대중교통]
통영종합터미널 - 101번 승차 - 문화마당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강구안: 검색어 ‘강구안’, ‘통영 문화마당’ / 경상남도 통영시 통영해안로 328 관광안내소
통영관광포털
문의: 055-650-0580 / http://tour.tongyeong.go.kr
통영 인력거여행, 뚜벅이여행
문의: 010-3226-7731
이용시간: 일출~일몰 (예약에 따라 유동적)
인력거 투어 요금: (A코스) 1인 2만원 / 2인 3만원
(B코스) 2인 1만6000원 / (C코스) 2인 1만2000원
뚜벅이 투어 요금: 5인 기준 (1인) 1만5000원 / 10인이상 (1인) 1만원
조선군선관람
문의: 055-645-3805 / 매주 월요일 정기 휴장
이용시간: (3~10월) 오전 9시 ~ 오후 6시 (11월~2월) 오전 9시 ~ 오후 5시
관람요금: 일반 2000원 / 중·고등학생 1500원 / 초등학생 700원
● 음식
한일김밥 본점: 통영 김밥 중 대표적인 브랜드다. 본점에서 먹으면 김밥 식판이 멋스럽다. 김밥이 빨리 상하지 않게 하려고 7번 옻칠한 것이라고 한다.
김밥 4500원
055-645-2647 / 경상남도 통영시 항남동 79-15번지
멍게가: 멍게음식 전문점이다. 꽃잎을 올린 멍게 비빔밥은 보기에도 침샘이 솟는다. 멍게의 식감을 잘 살린 비빔밥으로 보아 멍게를 잘 다룰 줄 안다는 것도 알겠다. 여행자를 위한 멍게컵밥도 획기적이다.
멍게비빔밥 1만원 / 멍게요리세트 (1인) 2만3000원 / 멍게비빔컵밥 6000원 / 멍게전 1만5000원
055-644-7774 / 경상남도 통영시 항남동 239-42
● 숙박
통영거북선호텔: 통영대교 앞에 위치해 객실에서 보는 야경이 아름답다. 통영의 옛 지도와 통영 출신 예술가들의 사진으로 꾸민 호텔, 객실에 비치한 통영 관련 책들을 보면 작은 통영 갤러리를 보는 느낌이 든다.
055-646-0710 / 경상남도 통영시 미수동 957-3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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