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모터사이클 시장규모는 연간 10만대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그나마 회복된 게 이 정도”라고 말한다. IMF외환위기 이전 연간 30만대 이상 팔리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부정적이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 판매량은 182만대를 넘어섰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155만대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4년부터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었다. 그 배경엔 최근 몇년간 이어진 수입차업체들의 적극적인 공세가 있었다. 소비자 입맛에 맞는 다양한 신차를 들여오고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펼친 결과 판매량이 늘었다. 이에 맞선 국산차업체들의 몸부림도 긍정적으로 작용해 시장이 커졌다.
모터사이클시장의 최근 흐름도 이와 유사하다. 2009년만 해도 90%에 달하던 국내업계의 시장점유율이 2014년에는 75%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해외업체들은 다양한 신제품을 앞세워 국내시장에 진출했고 ‘올바른 모터사이클 문화 알리기’에도 앞장섰다.
성숙하지 못한 문화가 이륜차시장 성장을 막은 점이 수입차회사들에겐 오히려 기회로 작용했다. 결국 비싸고 배기량이 큰 고급제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났다. 이에 고무된 해외업체들은 보급형 모델을 시장에 투입해 국내브랜드와 가격경쟁을 벌일 정도로 성장했다.
현재 우리나라 모터사이클업계의 리딩 브랜드는 BMW와 혼다를 꼽을 수 있다. 두 회사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을 모두 만드는 회사라는 점에서 닮았다. '문화'를 앞세워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꾸준히 내놓은 것도 공통점이다. 그 결과 BMW는 대형차시장에서 1위, 혼다는 소형차시장에서 두드러진 실적을 내며 수입브랜드 1위에 올랐다.
모터사이클 업계를 이끄는 리딩브랜드 두곳의 사업책임자를 지난달 31일 '2016 서울모터사이클쇼’가 열린 서울 코엑스 현장에서 만났다.
◆"제품과 라이프스타일 접점 찾아야"
- 이상훈 BMW 모토라드 이사
“모터사이클이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좋은 차, 빠른 차보다는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소비자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려고 합니다.”
이상훈 BMW 모토라드 이사의 말처럼 BMW는 문화를 팔아 우리나라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BMW가 주력하는 500cc 이상 모터사이클시장은 2005년 1833대가 팔렸지만 2014년엔 5599대 규모로 3배 이상 성장했다. 이 시장에서 BMW 모토라드는 지난해 총 2002대를 팔아 1위에 올랐다. 이는 2014년(1677대)보다 약 20% 성장한 수치다. 2012년 ‘마의 고지’라 여겨지던 ‘1000대 이상 판매’를 최초로 달성한 후 3년 만에 2000대를 넘어선 것이다.
이 이사는 그동안 성장세를 이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발전하려면 ‘제품력’과 함께 ‘문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어요. 처음엔 제품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은 라이프스타일에 맞추고 있거든요. 제품 특성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토라드 데이즈’와 같은 커다란 축제를 통해 가족들이 함께 모터사이클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어 ‘다양성’을 중시하는 BMW만의 제품전략도 언급했다. “고성능 라인업인 슈퍼스포츠부터 오프로드용 엔듀로, 다목적 어드벤처 등 다양한 성격의 제품을 갖추면 그만큼 다양한 성향의 소비자들이 브랜드 안에 섞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BMW가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죠.”
고급차를 많이 파는 BMW지만 시장이 양극화된 점은 고민거리다. 고가제품 판매가 적지 않지만 체형이 맞지 않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그는 “양적성장을 이루려면 조금 더 현실적인 제품을 들여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BMW모토라드는 GS310R 모델을 하반기 국내 출시한다. 성장가능성이 가장 큰 300cc급 모델을 내세워 기존 주력모델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모터사이클을 대중화시키고 싶죠. 그러려면 누구나 위험하지 않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유럽은 모터사이클을 차로 인식해 자동차와 밸런스가 맞아요. 앞으로 캠페인 같은 것도 준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장 키우려면 제도 바꿔야"
- 서정민 혼다코리아 모터사이클사업부 전무
“고급모델을 연간 5000~6000대 판다고 모터사이클 문화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형 비즈니스모델을 도입했고, 스텝-업 하는 고객 모두 혼다팬을 만들 계획입니다.”
서정민 혼다코리아 모터사이클사업부 전무는 국내 모터사이클시장의 ‘체질개선’에 주목했다. 누구나 쉽게 탈 수 있는 소형모델을 앞세워 규모를 키우고 상위모델로 갈아탈 수 있는 시장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지속성장이 가능하다고 봤다.
“소형제품을 투입하는 건 큰 딜레마였지만 결과적으로 혼다는 외형적으로 많이 성장했고 유통망도 크게 개선됐습니다. 제품력 덕인지 ‘3S’(Sales, Service, Spare-parts) 정책이 통했거든요. 처음엔 판매점들이 믿지 않았지만 판매량이 늘고 소비자들의 서비스만족도도 높아지면서 신뢰도가 쌓인 게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혼다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약 1만4500대의 모터사이클을 팔았다. 대림, KR모터스에 이어 3위며 수입브랜드 중에선 1위다. 실용적인 소형제품과 취미로서의 대형제품이 주는 각각의 가치에 주목했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들여온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판매와 서비스정책을 개선해 고객만족으로 이어지도록 만들 계획이다.
서 전무는 혼다 플래그십 모터사이클 ‘골드윙’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이 모델이 모터사이클 문화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고 지금은 혼다의 상징처럼 자리했기 때문이다.
“플래그십모델인 골드윙은 우리나라에서 연간 180~200대가 팔립니다.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 250대가 팔리니 국내 판매량이 엄청난 겁니다. 특히 골드윙 타는 분들의 문화는 아주 잘 정착됐습니다. 매년 열리는 골드윙 페스티벌은 가족과 함께 하는 행사로 고령 참가자가 많아요. 자부심과 열정이 대단합니다. 지난해엔 부산에서 페리호 타고 일본 규슈까지 가서 라이딩 즐긴 다음 공장견학도 했거든요.”
그는 모터사이클시장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시장이 더 커지려면 제도변화가 뒷받침돼야 하며 각 업체들도 힘을 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지금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이 바람직하지만 제도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예전처럼 시장이 커지기 어렵다고 봅니다. 앞으로 모터사이클이 고속도로에서도 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