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려는 환율전쟁이 엔화와 유로화 강세로 역풍을 맞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힘을 무력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연초 시작된 '시장 변동성'에 있다.

환율전쟁은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자국의 통화를 가급적 약세로 유지하고자 경쟁하는 것으로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 약세' 유도 경쟁을 말한다. 최근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의 공세가 돋보였다. 두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해 엔화와 유로화를 약세로 몰아붙였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시장 변동성'에 두 중앙은행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시장 변동성은 무엇이며, 아베노믹스는 왜 더 이상 맥을 못 추는 걸까.

◆금융시장의 변동성, 환율전쟁 '역풍' 초래

시장 변동성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통화는 엔화이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120엔을 웃돌던 게 지난 5일(현지시간) 한때 109엔대로 추락했다. 17개월 만에 최저치로 엔화 가치가 그만큼 올랐다는 말이다. 쉽게 설명하면 1달러를 사기 위해서 110엔 필요하던 게 109엔이 됐다는 말로, 일본 엔화 기준에서는 달러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고 달러화 기준에서는 엔화의 가치가 상승했음을 뜻한다.

아베노믹스로 인해 엔저(엔화 약세)에 따른 일본 기업들의 실적 회복에 힘입어 승승장구해온 일본 증시도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통상 위험회피 심리가 고조될 때 안전자산으로 선호되면서 가치가 오른다. 지난 1월 말 BOJ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며 대대적인 돈풀기에 나섰지만,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크게 절상됐다.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을 둘러싼 불안감이 '안전자산'인 엔화 수요를 자극한 게 엔화가 강세로 돌변한 배경이 됐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가 마이너스 금리를 더 낮출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엔화 강세를 막지 못했다. 보통은 마이너스 금리라면 현금이 은행에서 빠져나가 다른 곳에 투자되거나 현금의 가치가 떨어져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다.

◆위험회피 심리 고조, '안전자산' 선호로 '통화가치' 올라


유로화도 올해 들어 강세가 두드러졌다. 달러/유로 환율은 연초 1.07달러에서 최근 1.14달러까지 올랐다. ECB가 지난달에 기대 이상의 추가 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유로 강세 행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재닛 옐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최근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금리인상 신중론(비둘기파)을 강조한 게 달러 약세를 부추겼다.

유럽 역시 올해 초 일본처럼 대규모 부양책을 단행했으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유로존을 위해서라면 필요한 무엇이든 하겠다'는 약발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모습이다. 유로화는 당국의 추가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미 달러화에 대해 오름세를 보였다. 이같이 추세가 바뀐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크게 후퇴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연준 위원들은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가 두 차례 가량 인상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존 네 차례 인상에서 크게 낮아진 것이다. 연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미국이 양적완화를 시행했음에도 불구, 환율전쟁에서 실패한 것에 대한 설복이라는 분석도 있다.

연준은 금융위기 직후 1차 양적완화를 단행하며 달러화 약세 기조에 한동안 수혜를 입긴 했지만, 유럽과 일본의 경쟁적인 부양책으로 달러화가 강세 전환돼 한동안 타격을 입어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과 영국이 복병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금융시장 변동성의 복병, '중국'과 '영국'

중국은 지난해 8월 위안화 가치를 크게 절하시켜 환율전쟁에 동참했고, 영국은 브렉시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러한 환율전쟁 구도의 변화로 일본과 유로존은 더욱 불편한 위치에 놓이게 된 셈이다. 그동안 통화정책(양적완화)으로 이들 나라가 상당한 효과를 봤던 유일한 부문이 통화가치 하락이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된다면 추세가 다시 달라질 수는 있다. 다만,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도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늘린다는 신호는 나타나지 않고 있고, 은행들은 수익 악화에 어려움을 겪는 등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

양적완화로 돈이 풀리면 이들 선진국의 통화가치는 하락하는 반면 넘치는 유동성이 신흥국으로 유입돼 신흥국의 통화가치를 끌어올리게(신흥국 통화의 환율 하락) 된다. 그러나 지금의 외환시장에서 금리 인하는 선진국의 인프라 투자를 촉진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금융위기 이후의 경기 회복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기존의 이론처럼 움직이지 않는 이러한 상황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자국의 이익만이 아닌 상생을 위한 신중한 '통화정책'을 펼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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