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죄인, 어른들께도 죄인,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 계속할 거면 결혼하지 마. 영이씨.”
tvN 드라마 <미생>의 선지영 차장이 후배 안영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기는 커리어우먼이라는 겉모습과 달리 선 차장의 속사정은 고달프다. 친정어머니나 베이비시터 등 또 다른 여성의 희생 없이는 직장에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워킹맘의 현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고 보육문제도 만만찮아 결혼과 출산 자체를 포기하거나 기피하는 ‘결혼파업’, ‘출산파업’ 현상으로 이어진다.
가장의 무게는 또 어떤가. 대한민국 가장을 대변하는 오상식 차장은 매일 과다한 업무로 인한 야근과 회의, 회식 등으로 눈이 벌겋게 충혈돼 집으로 들어간다. 아내는 그를 허구한 날 술에 찌들어 온다고 타박하지만 그는 왜 술을 먹는지, 왜 야근을 하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치킨을 사 들고 가는 것뿐. 주말이 되면 소파에 누워 졸기 바쁘다. 오 차장은 직장에서 주인공 장그래의 멘토였지만 가정에서는 그가 좋은 남편, 괜찮은 아빠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가장과 워킹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쁘기로는 어느 직업에 뒤지지 않는 기자엄마와 기자아빠들이 한자리에 모여 육아 참여 현주소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tvN 드라마 <미생>의 선지영 차장이 후배 안영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기는 커리어우먼이라는 겉모습과 달리 선 차장의 속사정은 고달프다. 친정어머니나 베이비시터 등 또 다른 여성의 희생 없이는 직장에 다닐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워킹맘의 현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렵고 보육문제도 만만찮아 결혼과 출산 자체를 포기하거나 기피하는 ‘결혼파업’, ‘출산파업’ 현상으로 이어진다.
가장의 무게는 또 어떤가. 대한민국 가장을 대변하는 오상식 차장은 매일 과다한 업무로 인한 야근과 회의, 회식 등으로 눈이 벌겋게 충혈돼 집으로 들어간다. 아내는 그를 허구한 날 술에 찌들어 온다고 타박하지만 그는 왜 술을 먹는지, 왜 야근을 하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치킨을 사 들고 가는 것뿐. 주말이 되면 소파에 누워 졸기 바쁘다. 오 차장은 직장에서 주인공 장그래의 멘토였지만 가정에서는 그가 좋은 남편, 괜찮은 아빠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가장과 워킹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바쁘기로는 어느 직업에 뒤지지 않는 기자엄마와 기자아빠들이 한자리에 모여 육아 참여 현주소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사진=임한별 기자
<좌담회 참석자>
▷김노향 기자: 35세. 부동산 담당. 남편과 맞벌이. 딸(생후 5개월)을 키운다.
▷박찬규 기자: 36세. 자동차 담당. 외벌이. 슬하에 아들(12개월)이 있다.
▷허주열 기자: 34세. 재계 담당. 부인 육아휴직 중. 아들(11개월) 육아에 참여한다.
◆“깊게 잘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
- 아이를 낳은 후 사회적 여건이 만만찮을 텐데 어떻습니까. 이전과 달라진 일상이 궁금합니다.
▷김노향 기자(이하 김)= 저는 생후 2개월 만에 복귀했어요. 사람들은 아이가 세살이 될 때까지 곁에 엄마가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둘이 벌어야 생활이 되니까 일을 안할 수가 없었어요. 더군다나 3년 뒤 재기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해 보였고요. 제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면접을 보러 다녔고 그때마다 면접관들이 제게 물었어요. 아이가 어리니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떤 취재원은 제가 독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런 말들과 시선이 무서웠어요. 사실은 회사 일이 가능하겠냐는 의미가 담겨있을 테니까요. 당연히 회사 입장에선 일에 올인하기를 바라죠. 그래서 더 악착같이 일할 수밖에 없어요.
▷박찬규 기자(이하 박)= 제 아내는 몸이 많이 약해서 임신하고 회사를 바로 그만둬야 했어요. 저는 일간지에 있다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곳에 오기 전 비교적 여유로운 월간지를 다녔고요. 하지만 당시 월급만으론 아이 키우는데 턱없이 부족하더군요. 결국 시간에 대해 체념하게 되고 지출을 줄이려다 보니 인맥도 많이 놓게 됐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외벌이인 만큼 금전적인 부담이 크고 식솔들이 저만 바라보는 상황이니까요. 요즘은 주말에 방송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부담이 커지는 만큼 해야 할 것도, 포기해야 할 것도 많아요.
▷허주열 기자(이하 허)= 저도 아들이 태어난 후 모든 생활이 아이 중심이 됐어요. 예전엔 야구장도 가고 영화도 종종 보러갔는데 지금은 취미생활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죠. 직업 특성상 밤늦게 집에 들어가니까 아내와 아이한테 늘 미안해요. 잠들기 시작하면 그때쯤 아이가 깨요. 아이가 새벽에 자주 깨니까 언제부턴가 숙면을 취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아침에 비몽사몽인 상태로 눈 떠서 아이 얼굴 잠깐 보고 출근하는 거죠.
▷김= 제 아이도 새벽에 1시간 주기로 깨요. 한번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방치해두고 잤더니 아이가 자지러지더라고요. 그 뒤 늘 불안한 마음에 선잠을 자게 되고 자다가 혼자 놀라서 깨곤 해요. 그렇게 아침마다 몽롱한 상태로 출근하고 퇴근 후 집에 오면 아이를 또 봐야 하고 결국 피곤이 쌓일 대로 쌓여서 쓰러져 잘 때가 한두번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일에 전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고요. 육아도 일도 다 잘해내고 싶은데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까봐 두렵습니다. 단 하루라도 깊게 잘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아요.
(왼쪽부터) 김노향 기자, 박찬규 기자, 허주열 기자. /사진=임한별 기자
◆주말은 ‘휴일’ 아닌 ‘가사노동의 날’
- 쉬는 날에는 어떻게 보내나요?
▷박= 쉬는 날이어도 쉴 수가 없죠. 저는 저대로 바쁘고 아내는 아이 보느라 한눈팔 새가 없으니 휴일에는 집안일을 해야 해요. 주말엔 방송하고 아이보고 집안 청소하느라 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싸울 틈도 없다 보니 주중에 서로 쌓여있던 감정이 주말에 터지기도 하고요. 언젠가부터 서로 미안한 사이가 돼버렸죠.
▷김= 우리 부부한테 주말은 휴일이 아니에요. 그야말로 ‘집안일’을 하는 날이죠.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계속 치워도 끝이 없어요. 아이 젖병, 기저귀, 빨래 등 집안에 온갖 쓰레기가 쌓여요. 그래서 주말마다 아예 남편이랑 집안일을 분담해서 빨래, 설거지, 청소 등을 해요. 아이도 틈틈이 보면서요. 주말에 하루라도 대청소를 하지 않고 넘어가면 집안이 온통 쓰레기더미가 돼버려요.
▷허= 저는 재계를 담당하다 보니 업체 입장에서 제 기사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주말에 업체에서 전화가 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서로 민망할 때가 많아요. 기사를 놓고 말씨름하듯 통화하는데 옆에서 아이가 울면 순간 ‘멘붕’ 상태에 빠져서 하려던 말이 생각나지 않는 거죠. 상대방도 황당해 하더라고요.
◆자금 부족한 외벌이·지출 많은 맞벌이… 저축 ‘0’
- 저축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허= 제가 버는 돈은 들어오는 족족 전세자금대출, 생활비, 육아비 등으로 전부 빠져나갑니다. 그나마 아내가 육아휴직 중이어서 휴직비와 정부지원비를 합쳐서 50만~70만원가량을 저축합니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이 없죠.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려는데 쉽지 않네요.
▷박= 우린 빚 없이 시작했는데도 늘 부족해요. 육아비, 생활비 외에도 자동차할부금을 갚아야 해서 전에는 60만원 정도 저축했는데 경조사까지 챙기다 보면 저축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예전엔 사람들과 술도 많이 마셨는데 아이 생각해서 술값, 대리비, 택시비를 최대한 줄이려다 보니 저녁약속도 자연스레 줄었고요. 커피 한잔을 마셔도 ‘이 가격이면 아이 기저귀가 몇갠데’라는 생각에 사소한 씀씀이를 줄이게 돼요. 모든 초점이 아이한테 맞춰지는 거죠.
▷김= 저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베이비시터, 외식비, 교통비 등 나가는 비용이 많아서 생각보다 맞벌이 효과를 못 봐요. 베이비시터한테 하루 10시간 정도 맡기고 한달 월급으로 140만원을 줍니다. 베이비시터를 어렵게 구했거든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지원받을 수 있는 어린이집 대신 저축을 하나도 못하는 상황을 감수하고서라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 것은 어린 딸을 안전하게 맡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또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더라도 비용은 비슷할 텐데 연로하신 어머니께 육아까지 맡기고 싶지 않아요. 우리 부부가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요.
◆“현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았으면”
- 그래도 행복할 때가 있을 것 같은데요.
▷허= 아이를 키우는 게 무척 힘들지만 그만큼 행복하기도 해요. 어떻게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지금처럼 건강하게 자란다면 바랄 게 없어요. 다만 아내가 혼자 육아하는 게 안타까워서 남자도 육아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박= 맞아요. 연차와 별개로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면 남편도 육아휴직을 받아 아이를 돌볼 수 있다면 더 효율적이겠죠. 아내 혼자 육아하는 것은 아이한테도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에 너무 바빠서 일주일 동안 아이 얼굴을 못 봤더니 아들이 저를 낯설어하더라고요. 저만 보면 울고. 이상하게 그게 좀 서럽고 슬펐어요. 그래도 언젠가 우리 아들이 크면 제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빠”하고 불러주겠죠?
▷김= 아, 저는 오히려 그때가 안 왔으면 좋겠어요. 현관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는 날이 오는 게 더 두려워요. 아직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데 그런 저를 미워하지 않고 나중에 아이가 “나는 엄마가 일하는 게 좋아”라고 말해준다면 그동안의 모든 고달픔과 서글픔이 말끔히 씻겨 나갈 것 같아요. 훗날 지금이 헛된 시간이 아님을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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