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은 우리에게 아픈 역사를 남겼다. 제국주의와 사람들의 욕망은 이 도시를 바쁘게 움직였다. 화려하게 변모하는 도시와 민초들의 고통이 거짓말처럼 공존하던 곳, 인천개항장에서 그때를 상상해 본다.
개항박물관
◆인천개항박물관
인천은 조선 최초의 개항장이다. 아시아 대부분의 개항장이 그렇듯 수탈이라는 아픈 역사를 품었다. 동시에 120년 전 국제도시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일본, 미국, 프랑스, 중국, 영국 등 이 작은 나라로부터 이권을 챙기려고 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인천으로 들어왔다. 한양과의 핫라인을 만들고, 주요 인사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이면에는 민초들의 비참한 삶이 존재했다. 한편 선교사와 학자 등 문명과 종교, 개화를 이끈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절의 인천은 복잡했고, 다양했고, 호화롭지만 참담했다.
인천개항박물관 금고
개항박물관에서는 개항장 인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건물은 원래 1883년 국내에 진출한 일본 제1은행의 사옥이었다. 근대유산이 된 건물을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는 것이다. 박물관이 과거 은행이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관람해 본다. 건물 자체가 주요 전시물이기 때문이다.
제1전시실은 이 건물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과거 은행의 객장에 해당한다. 이곳이 주 전시실로 인천항을 통해 소개된 근대문물과 인천항에 설치됐던 최초의 해관, 주요 기관과 관련 자료, 최초의 통신관련 자료 등이 전시됐다. 인천에서 교통·통신이 발달한 것은 결국 한양과의 소통이 목적이었다. ‘미두취인소’는 미곡 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설립한 쌀 거래소다. 일본은 곡물 가격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 했고 이곳에 투기꾼들이 몰렸다고 하니 이익을 보는 이들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제2전시장은 한국 철도사를 전시했다. 이 또한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의 공식 아니겠는가. 그렇게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가 완공됐다. 제3전시장에서는 개항기 인천의 풍경을 모형과 영상물로 볼 수 있다. 호텔·은행·상점이 밀집된 중심지와 그 이면의 서민 생활이 그려져 있다.
제4전시실은 입구가 특이하다. 본 건물 출입문에 이어 짧은 복도를 지나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해야 작은 방이 나온다. 건물 밖에서 보아도 본 건물에 방을 덧대어 만든 모양새다. 이 은밀한 공간은 원래 은행의 금고였다. 4개의 공간 중 가장 작은 이 방에는 개항기의 금융기관 관련 자료와 유물을 전시해 놨다.
◆근대건축전시관
인천개항장에는 ‘최초’가 많다. 우리나라 근대 우편업무의 시작인 인천 우체사, 우리나라 근대초등교육기관의 효시인 영화학당,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만국공원,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 이곳이 국내 최초의 개항장이고 세계 각국에서 이곳으로 왔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때로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때로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도로와 공원, 건물을 지었고 이들이 인천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근대건축전시관 역시 1890년 개설한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이다. 일본이 영국과 한국 간의 면직물 중개무역으로 이익을 거둔 후 이곳에 지점을 개설했다. 본점은 나가사키에 있었다. 이처럼 개항 이후 조선에는 일본에서 진출한 은행이 7개, 보험사가 13곳이나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조선 금융계를 지배하고자 했다.
이 박물관에서는 그때의 여러 건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근대 초기의 건축물과 개항 당시 국내외 정세, 인천항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현존하는 건축물과 소실된 건축물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재현된 건축물 디오라마를 보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호화롭고 장식적인 집들이 있다. 더욱 놀라운 건 파울바우만 주택, 존스톤 별장, 오례당 저택 같은 것들은 개인 소유였다는 점이다. 혼란의 시기에 이 작은 나라의 개항장에 와서 엄청난 부를 누렸던 외국인들의 흔적이라 생각하면 씁쓸하고 답답한 체증이 올라오는 듯하다. 힘 없는 나라였던 우리는 땅과 자원과 인력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주었고, 그들에게 이곳은 참 좋은 놀이터이자 풍족한 곳간이었을 것이다.
근대건축전시관
전시실에는 옛 건축물에서 나온 자재와 소품도 전시됐는데 중화요리집 ‘공화춘’으로부터 나온 것들이 많다. 1905년 ‘산동회관’ 이란 이름으로 문을 연 현재의 공화춘은 우리나라 최초로 짜장면을 만들어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차이나타운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인천차이나타운
인천역 건너편에 커다란 패루가 있다. 여기서부터가 차이나타운으로 개항기에 중국인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인과 함께 온 40여명의 군역 상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1884년 ‘인천화상조계장정’이 체결되면서 지금의 선린동 일대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지고 청국 영사관도 세워졌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차이나타운이다.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계단이 있는데 이 길을 경계로 한쪽은 중국인이, 다른 한쪽은 일본인이 터를 잡았다는 것이 재미있다. 남아있는 옛집을 보면 중국식과 일본식이 확연히 구분된다. 이후 일본인은 돌아갔지만 중국인들은 이 땅에 남아 뿌리를 내렸다. 이왕 차이나타운에 왔으니 오래된 집들을 찾아보자. 청국 영사관이었던 자리에 건립된 화교중산학교, 해안천주교 교육관, 청일조계지와 공자상, 선린문 등이 옛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흔적들이다.
차이나타운 입구
차이나타운은 오후가 될수록 활기를 띤다. 신기하게도 차이나타운에서 만날 수 있는 상당수의 외국인관광객은 중국인이다. 여행자들은 바깥 세상을 구경하러 온 것일 텐데 왜 굳이 차이나타운에 왔을까. 고개가 갸우뚱하면서도 한편 이것이 이 민족의 특징이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중국인의 그런 성향이 세계 각국에 차이나타운을 만들지 않았을까.
길에서는 무언가를 먹기 위해 늘어선 줄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붉게 칠한 건물들은 저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중화요리집이고, 포춘쿠키, 월병, 공갈빵, 화덕에 굽는 만두 같은 것들이 이곳의 길거리 음식이다. 요즘은 ‘양꼬치 앤 칭따오’의 인기가 많아 ‘길맥’(길거리에서 맥주 마시기) 한잔을 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이 거리에선 손에 무언가 먹을 걸 들고 있어야 자연스럽다. 먹고 떠드는 에너지가 있어 오늘도 차이나타운은 활력이 넘친다.
[여행 정보]
개항박물관 가는 법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 봉수대로 - 경명대로 - 경서삼거리에서 ‘북항, 청라국제도시’ 방면으로 좌회전 - 중봉대로 - 중봉지하차도 - 원창고가교 - 중봉대로 - 우회전 - 송현로 29번길 - 좌회전 - 수문통로 - ‘동인천역, 화도진공원’ 방면으로 우회전 - 화도진로 - 화평사거리에서 ‘동인천역’ 방면으로 좌회전 - 송화로 - 좌측 9시 방향 - 홍예문로 - 우회전 - 송학로 - 좌회전 - 자유공원남로
[대중교통]
지하철1호선 인천역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인천개항박물관: 검색어 ‘개항박물관’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23번길 89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검색어 ‘근대건축전시관’ 검색하여 인천 주소 선택 /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23번길 77
인천 차이나타운: 검색어 ‘차이나타운공영주차장’ /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44번길 28-12
인천개항박물관
문의: 032-760-7508 /http://www.icjgss.or.kr/open_port
관람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연중무휴)
관람료: 일반 500원 / 청소년 300원 / 어린이 200원
근대건축전시관
문의: 032-760-7549 / http://www.icjgss.or.kr/architecture
관람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연중무휴)
관람료: 일반 500원 / 청소년 300원 / 어린이 200원
인천 차이나타운
문의: 032-760-7860
http://www.ichinatown.or.kr
● 음식
진흥각: 차이나타운이 아닌 신포시장 가는 길에 있는 현지인들의 맛집이다. 짬뽕밥을 주문하면 공기밥이 아닌 볶음밥 한접시가 푸짐하게 나온다.
간짜장 5500원 / 짬뽕 5500원 / 짬뽕밥 6500원 / 굴짬뽕 7500원 / 탕수육 1만9000원
032-772-3058 / 인천광역시 중국 신포로 23번길 20
● 숙박
하버파크호텔: 월미도 앞에 위치하고 차이나타운, 개항장과 가까워 여행하기 편하다.
032-770-9500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17 하버파크호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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