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PC방을 방문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게임을 즐기는 걸 볼 수 있다. PC방 게임 순위에서 부동의 1위인 ‘리그오브레전드’다. 많은 유저가 미국게임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게임의 개발사는 2006년 미국에서 설립된 라이엇게임즈인데 2011년 중국 텐센트에 인수됐다.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이 즐기는 스마트폰게임 ‘캔디크러쉬’ 역시 국적이 애매하다. 이 게임의 개발사인 영국의 킹디지털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11월 미국의 액티비전블리자드에 인수돼서다. 그렇다면 미국게임으로 봐야 할 것 같지만 현재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최대주주는 24.9%의 지분을 보유한 ASACII 투자그룹이다. 이 투자그룹에는 역시 중국의 텐센트가 포함돼 있다. 게임산업의 ‘국경’이 흐려지고 있는 셈이다.
◆플랫폼 변화 타고 춘추전국시대 개막
이 같은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전세계 게임업체에 ‘춘추전국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변하면서 누구나 전세계의 유저를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국경이란 틀에 갇혀 내수 소비자만 바라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90년대 말 등장해 우리나라를 강타한 패키지 PC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려보자. 당시만 해도 게임 유통구조는 단순했다. 미국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해 LG소프트와 한빛소프트라는 ‘중간자’를 거쳐 한국에 수출한 형태다.
국내게임회사들은 이후 게임산업의 패러다임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큰 발전을 거뒀다. ‘부분유료화’와 ‘퍼블리싱사업’을 통해 사업성을 극대화했고 폭발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진출까지 도모했다.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유럽과 대만, 동남아시아 등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시기에 한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 등의 게임산업이 크게 성장하며 미국, 일본 일변도였던 게임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게임시장의 주류가 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스마트폰)게임으로 바뀌면서 글로벌 정세에 다시 ‘대격변’이 일어났다. 애플의 ‘앱스토어’와 구글의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저비용으로 개발한 게임이 쉽게 인기를 구가했다. 굳이 게임강국에서 기술과 자본을 집결해 만든 ‘대작’이 아니어도 참신한 아이디어와 재미가 있으면 누구나 글로벌시장을 뒤흔들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 대표적인 예가 핀란드 로비오엔터테인먼트의 ‘앵그리버드’다. 핀란드의 게임시장 규모는 보잘 것 없지만 앵그리버드는 단순하고 통쾌한 조작만으로 전세계 게이머의 사랑을 받았다.
2009년 말 핀란드 앱스토어에 출시된 앵그리버드는 북·동유럽에서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불과 5개월 뒤 미국 앱스토어에 올라가자마자 10위권 안에 들면서 대히트를 쳤다. 인기는 꾸준히 이어져 안드로이드에서도 출시됐고 이후 다양한 OS로 확장됐다. 그 뒤를 이어 다양한 국가의 많은 회사가 ‘대박행진’을 이어간 것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역시 핀란드에서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모바일게임업체 슈퍼셀의 질주에 세계의 시선이 쏠린다. 이 회사는 지난해 3종의 모바일게임만으로 매출 2조8000억원을 달성했다. 2012년 6월 첫 게임 ‘헤이데이’를 출시한 이후 불과 4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달성한 성과다. 이밖에 러시아의 게임인사이트 등이 주목받는 회사로 떠올랐다. 중국 게임업체 역시 이전의 ‘카피캣’의 모습을 벗고 이제는 게임을 수입하던 한국, 미국, 일본 등에 역수출을 하는 상황이다.
국내업체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수출강화에 더욱 집중하는 모양새다. 기존 대형업체들은 물론이고 스타트업업체도 내수가 아닌 해외시장을 노크 중이다. 모바일 RPG(역할수행게임) ‘크루세이더퀘스트’를 개발한 로드컴플릿의 경우 이미 해외에서 80%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국경을 넘어선 게임전쟁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게임업계에서 주목하는 곳은 단연 중국이다. 떠오르는 게임회사를 찾아봐도 중국자본이 들어간 기업이 수두룩하다.
◆게임산업에도 몰려드는 차이나머니
중국의 해외투자는 기업 M&A를 통해 선진기술과 경영기법을 한번에 가져올 수 있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특히 텐센트의 행보가 단연 눈에 띈다. 텐센트는 미국계 라이엇게임즈와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지분을 인수한 것은 물론 게임 관련 뉴스사이트 잼네트워크와 에픽게임즈의 지분도 인수했다. 이뿐 아니라 필리핀과 남미 1위 게임퍼블리셔인 레벨업인터내셔널홀딩스, 베트남 선두 게임업체인 VNG, 대만 게임퍼블리셔 가레나 등 게임서비스사의 지분도 확보했다.
이밖에 알리바바는 미국 게임사 카밤에 1억2000만달러를 투자했고 게임이용자를 위한 모바일메신저업체 탱고에도 2억8000만달러를 투자했다.
국내업계도 마찬가지다. 국내게임회사에 중국자본 투입이 늘어나며 위기감이 돌고 있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웹젠 지분 679만5143주(지분율 19.24%)를 펀게임(HK)리미티드에 2039억원에 양도키로 했다. 펀게임은 이번 거래를 위해 중국 게임사 아워팜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다.
앞서 카카오에 720억원을 투자한 텐센트는 2014년 3월 넷마블게임즈에도 5330억원을 투자하며 지분율 28%의 3대주주로 올라섰다. 같은해 9월에는 네시삼십삼분에 1300억원을 라인과 공동투자한 데 이어 파티게임즈(200억원), 카본아이드(100억원) 등에도 투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중국자본이 한국 게임산업에 투자를 늘리는 것은 만성적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국내 게임업계에 자금이 조달되는 것은 물론 중국시장 진출에도 긍정적인 요소”라며 “하지만 중국자본이 국내 콘텐츠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기술이 무작정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경계하는 한편 투자를 활용한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시장에서 동반 성장하는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