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6 출시와 함께 한차례 달아올랐던 중형세단 시장이 약 두 달만에 다시한번 뜨거워졌다.
지난해 미국 뉴욕모터쇼에서 공개된 이후 국내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모았던 쉐보레 신형 말리부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지엠이 내놓은 이 차는 지난달 27일 사전계약에 돌입해 영업일수 8일만에 1만대 계약을 달성했다.

중형 세단 경쟁 모델인 르노삼성 SM6와 기아차 K5가 사전계약 1만대 돌파에 각각 영업일 기준 17일, 한 달가량이 걸렸던 것과 비교해 훨씬 빠른 속도로 그만큼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기대가 컸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 중형세단 맞아?

지난 4일 신형 말리부를 실제로 보고 ‘정말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형모델보다 휠베이스가 93mm 늘어났고 전체길이는 60mm 길어졌다. 말리부의 전장길이는 4925mm로 차체 길이만으론 준대형급의 그랜저(4920mm)보다 크다. 차세대 GM의 중형세단 플랫폼인데, 최근 베이징모터쇼에서 본 뷰익의 라크로스와 플랫폼을 공유한다는 게 한국지엠 관계자의 설명이다. 라크로스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준대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9세대 말리부의 디자인은 사진을 통해 많이 접해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8세대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다른 자동차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전면부는 다양한 디자인요소들이 적용돼 자칫 난잡해 보일 수 있는 디자인을 날카롭게 다듬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말리부의 압권은 측면디자인이다. 마치 쿠페를 연상시키듯 날렵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이 측면 디자인을 사로잡는 요소다. 프론트 도어로부터 위아래로 깊게 새겨진 캐릭터라인과 레터링 등의 디테일한 요소도 특유의 ‘늘씬함’을 강조한다. 후면부는 살짝 올라간 트렁크리드가 리어스포일러의 느낌을 주고 범퍼 하단의 듀얼 머플러가 다소 부족했던 남성적 인상을 채워준다.

휠베이스가 길어진 만큼 실내공간 역시 엄청나다. 앞서 LF쏘나타를 타며 이정도 공간이면 준대형에 비교해도 빠지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말리부의 경우는 더 길다. 키 186cm의 기자가 후열에 앉아보니 무릎공간에 주먹이 두 개 이상 들어간다. 물론 운전석도 기자가 앉기 편하게 조정한 상태에서다. 등받이 각도가 세워졌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실제로 앉았을 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시 운전석으로 와 인테리어를 꼼꼼히 살펴봤다. 클래식한 계기판의 느낌과 현대적인 느낌의 센터페시아가 어울리지 않는 듯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센터스크린은 다소 누워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센터페시아의 버튼 조합 역시 직관적이어서 누구나 다루기 좋다. 스티어링휠과 대시보드 등의 재질감도 고급스럽다. 쉐보레의 차를 좋아하면서도 인테리어에 실망한 적이 많은데, 이번만큼은 쉐보레 답지 않다.



◆ 뛰어난 성능에 첨단사양까지
이 날 시승행사에서 기자단이 경험하게 된 말리부는 모두 최고 등급의 모델인 2.0 LTZ 프리미엄팩 사양이다. 차량 기본 판매 가격은 3180만원에 달한다.

자동차 업체는 보통 시승행사를 준비할 때 최고사양의 모델을 준비하게 마련이다. 자동차가 뽑아낼 수 있는 최대의 능력치를 전달해주길 원하기 때문. 그렇지만 올 뉴 말리부의 경우 많은 기자들이 실제로 타보고 싶어한 모델은 1.5 LS 트림(2310만원)이었다. 기본트림임에도 불구하고 아쉽지 않은 옵션들을 모두 갖춘 사양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정도 옵션의 중형세단을 2300만원 대에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

1.5리터 모델을 타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2.0터보 모델의 가속페달을 밟았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즉시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형 말리부는 그랜저보다도 전장이 길지만 무게는 SM6 1.6 터보보다 가볍다. 전작대비 130kg가벼워진 게 특징이다.

고속구간으로 진입해 가속페달을 힘껏 밟아도 우려했던 터보렉현상이나 변속충격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형 말리부는 공개 당시 8속 변속기를 장착한 미국과 달리 한국시장에서 6속 변속기를 장착해 많은 우려를 산 바 있다. 게다가 국내소비자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았던 이른바 ‘보령미션’이다. 물론 전작에 비해 대폭 업그레이드 됐다곤 하지만 타보기 전까지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1.5터보 모델은 시승해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2.0터보 모델에서만큼은 ZEN3 미션에 부족함은 느낄 수 없었다.

시승 당시 많은 비가 내려 와인딩구간에서 적극적인 시험을 하기에 겁이 났다. 하지만 구간을 진행할수록 점차 자동차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 스티어링 감각도 우수하다.

최고사양 모델을 시승하며 좋았던 점은 쉐보레의 첨단사양을 고루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은 정말 편리하다. 국내 타 브랜드의 같은 기술에 비해 훨씬 정교하게 셋팅됐다는 느낌이다. 앞차의 속도에 따라 속도를 유연하게 조절하는데, 조작이 부드러워 이질감이 없다.



특히 자동차의 스티어링 개입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기자로서는 이정도 수준의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선을 이탈하더라도 절대 무리하지 않게 관여한다.
많은 기자들이 드라이빙 모드 선택이 불가능 하다는 점과 토글 변속의 불편함을 이 차의 최대 단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패밀리 세단’이라면 이래도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2.0터보 모델의 주행성능을 만끽하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