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여신에 빨간불이 켜졌다. 조선과 해운 등 산업계 구조조정 후폭풍이 은행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일각에선 가계(대출)에서 번 돈을 기업(대출)으로 까먹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국민·산업·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대우조선해양·한진중공업·현대상선 등 조선과 해운업계 구조조정으로 쌓아야 할 충당금은 2조5000억원에 이른다. 가뜩이나 저금리 기조로 마진이 줄어드는데 대기업 부실까지 겹쳐 여신관리에 비상등이 켜진 것.
특히 농협은행의 부실규모가 상대적으로 컸다. 농협은행의 올해 1분기 NPL(부실채권)커버리지비율이 81.34%로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낮았다. 물론 다른은행도 안심할 수 없는 수치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각각 126%, 121%에 불과하다. 다만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의 NPL커버리지비율은 각각 167%, 156%를 기록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나타냈다.
NPL커버리지비율은 충당금(대손충당금+대손준비금) 적립액을 고정이하여신으로 나눈 수치다. 100%를 기준으로 할 때 NPL커버리지비율이 100% 미만이면 추가로 쌓아야 할 충당금이 많다는 의미고 100% 이상이면 그 반대다. 금융당국은 120% 이상의 NPL커버리지비율을 권고한다.
문제는 앞으로다. 은행들은 올해 1분기 충당금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본다. 다만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6월까지 진행되면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충당금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은 은행권 여신부문을 집중 점검하고 나섰다. 금융당국은 지난 6일부터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기업은행 등 6개 은행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담보대출 업무적성검사에 착수했다. 혹시 발생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달초부터 시중은행 여신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점검에 나섰다"며 "조선과 해운 등 구조조정작업이 아직 진행중인 만큼 당분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당금 폭탄, 대기업 대출 줄이는 은행들
은행들의 여신관리가 깐깐해지면서 다른 대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이 대기업 대출을 축소하기 시작한 것.
실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시중은행 대기업 대출태도지수는 -6이었지만 올해 1분기에는 -16까지 추락했다. 대출태도지수가 낮으면 은행권의 대출심사가 엄격했다는 뜻이다.
은행별로는 농협은행이 지난해 4월 14조5000억원에서 올 4월 13조109억원으로 대기업 여신을 5500억원가량 줄였다.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은 "농협이 제때 부실채권을 정리하지 못한 점을 인정한다"며 "여신심사와 감리체계를 개선해 부실 예방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KEB하나은행도 지난해 9월 초부터 올 4월말까지 4조2200억원가량의 여신을 줄였다. KEB하나은행은 앞으로도 위험부담이 큰 대기업 여신을 줄일 방침이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에서 올해 4월 말 현재 5857억원을, 우리은행은 같은 기간 3000억원을 줄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기업 부실에 대한 충당금을 쌓아야 하고 시장환경도 당분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대출시장이 더욱 축소될 것"이라며 "당분간 기업보다는 가계대출 영업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