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장수국가 일본에서 건너온 ‘노후파산’이란 신조어가 우리나라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노후파산이란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비참한 삶을 일컫는 용어로 NHK 프로듀서가 방송을 제작하면서 만든 신조어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를 살펴보면 ‘노후파산’이 더 이상 남의 일은 아닌 듯하다.



노후파산의 의미는 2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첫번째는 말 그대로 경제적인 파산이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2월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1727명을 분석한 결과 60대 이상이 428명에 달했다. 파산자 4명 중 1명(24.8%)이 노인이었다. 지난 2006년 노인파산 신청자는 11.5%였으나 10년 새 2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남성의 경우 주로 사업이나 창업 실패로 파산에 이르는 반면 여성은 홀로 어렵게 경제활동을 하다 빚을 진 생활형 파산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번째는 더 넓은 의미의 노후파산이다. 2014년 9월 일본 NHK가 방영한 <노인표류사회-노후파산의 현실>에 따르면 노후파산은 홀로 사는 고령자가 생활보호를 받지 못한 채 연금만으로 근근이 생활하다 병에 걸리거나 돌봄서비스가 필요해지면 생활이 파탄을 맞는 상황이다. 노후파산은 나이를 먹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젊었을 때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았던 고령자들이 일본사회에서 직면한 현실이다.



◆일본의 ‘노후파산’, 타산지석 삼아야
일본에서 노후에 파산한 노인은 약 200만명으로 추정된다. 노후파산한 노인 대다수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40년간 저축과 연금으로 노후를 대비한 은퇴자였다. 그런데 예상보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배우자의 질병,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에서 지출 증가가 커져 노후파산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노후파산이 아주 서서히 다가온다는 데 있다. 일본에서 노후에 파산한 고령자는 대부분 단번에 파산상태에 처한 것이 아니었다. 생활고에 빠져 집을 팔거나 예금을 조금씩 쓴 끝에 최종적으로 노후파산에 처한 것이다.


OECD 발표에 따르면 일본은 전세대 가운데 약 16.1%(2012년기준)가 상대적인 빈곤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65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22%로 고령남성 1인가구는 38.3%, 고령여성 1인가구는 52.3%나 된다. 독거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높고 여성의 경우 절반 이상이 빈곤상태에서 생활하는 모습이다. 수입이 끊기고 충분한 저축이 없는 상태에서 긴 노년기를 버티다 발생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령이 증가할수록 가계자산의 부동산 편중이 심각한 편이다. 다시 말해 현금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특히 60대의 자산구성을 살펴보면 부동산이 78.4%이며 부채를 제외한 순금융자산은 1717만원에 불과해 사실상 노후파산 위험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의료비 부담이 노후파산의 원인이다. 일본의 많은 고령자가 ‘생명에 지장이 없으면 병원에 가지 않는’ 선택을 당연시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들도 대부분 경제적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한다고 응답(46.2%)했다. 이에 따라 유병장수시대에 맞게 은퇴설계 시 의료비를 고려해 ‘건강수명’(전체 평균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는 기간을 제외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기간)을 늘리려는 계획이 필요하다.

부양 역시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이제는 자식이니까 부모를 보살피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아니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고 부모가 나이 들면 자식이 부양하는 선순환구조가 이뤄졌다. 하지만 현재는 캥거루족, 자라족, 연어족 등의 용어가 말해주듯 부모가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한 자식을 역부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경제력이 충분치 않은 자식이 나이 든 부모를 다시 부양하다가 갈등을 겪기도 한다.


이제 부모나 자녀 중 누군가 경제적으로 파산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부모와 자녀세대가 동시에 파산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연금 넘어 의료비 준비해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기초연금 수급자 2000명을 대상으로 기초연금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식비(40.2%)에 가장 많이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주거비 (29.9%)와 보건의료비(26.5%) 순이었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식비 우선지출 경향이 높았지만 소득수준이 낮아질수록 보건의료비에 우선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민연금연구원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2014)를 분석한 결과 노년기 보건의료비가 전체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15.5%로 조사됐다. 아울러 건강보험공단 분석자료에 따르면 70대 이상 노인의 1인당 진료비는 391만8518원으로 전체 평균(114만 9075원)의 3.4배에 달한다.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하지만 소득이 적은 고령자세대는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운 ‘헬스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헬스푸어는 수술비나 입원비·약제비 등 막대한 의료비가 발목을 잡아 생계가 어려워진 상태를 말한다. 소득이 낮거나 충분한 저축이 없으면 은퇴생활에 필요한 은퇴준비자금이 의료비로 대부분 소진돼 헬스푸어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보험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을 통해 헬스푸어에 대비할 수 있다. 부양의 기능과 개념이 퇴색되는 이 시대, 연금을 넘어 헬스푸어를 치열하게 준비해야 하는 때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