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의 시세가 ‘억’ 소리를 내고 있다. 1년에 1000만원이 넘는 대학등록금을 내고 전셋값이 1억원 이상인 원룸에 사는 대학생들은 이중고를 겪는다. 2학기 개강을 한달여 앞두고 찾은 신촌·홍대·왕십리 등 대학 인근 원룸 골목은 한산했지만 ‘억’ 소리 나는 시세는 당당하다 못해 뻔뻔했다.
/사진=김창성 기자
◆신촌·홍대 인근 원룸 전셋값 2억
지난 7월18일 서울 대학가 중 가장 번화한 곳인 신촌 연세대·이화여대 일대 원룸 골목을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이대입구역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원룸, 오피스텔, 하숙집 등이 즐비했다. 골목 외곽은 신축 오피스텔들이 자리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람산 자락의 높은 언덕에 원룸, 하숙집, 일반 주택 등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혼자 살 만한 방을 구하는데 주변 시세가 어느 정도인가요?”
“작은방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이고 큰 방은 90만원 정도 합니다.”
“전세는요?”
“전세는 찾기 힘들어요. 있어도 최소 1억5000만~2억5000만원은 생각하셔야 돼요.”
골목 초입에 자리한 한 공인중개업소에 들러 인근 원룸 시세를 묻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월세 60만~90만원은 전용면적 16~30m² 정도의 작은 방이다. 전세의 경우는 복층을 포함해 16~40m²의 크기가 1억5000만원이 넘었다.
같은날 도보 15분 거리의 홍익대 인근 원룸 골목도 찾았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의 매물 현황을 보자 전용면적 18.1m² 신축 원룸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5만원이었다. 근처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에서는 29.7m² 원룸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이었다.
신촌과 마찬가지로 홍대 역시 전세는 '억대'를 형성했다. 전용면적 36.6m²는 1억3000만원이었고 월세로 돌리면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70만원이었다. 신축원룸 역시 전셋값이 2억원을 넘는 곳이 있었고 23.1m² 원룸 중 반전세로 보증금 7000만원에 월세 15만원인 곳도 있었다.
“홍대 하면 알아주잖아요. 번화가라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홍대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들러 비싸다며 좀 더 싼 매물이 없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한양대 인근, 월세 50만 이상·전세는 ‘억’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60만원이 기본이에요. 이 주변은 역세권이고 번화가라 어디가나 마찬가지예요.”
다음날 찾은 서울 한양대학교 인근 원룸 골목의 A공인중개사 대표는 인근 원룸 시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가 말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60만원은 전용 15m² 정도 크기의 작은 원룸. 사람 1명이 누울 공간과 약간의 생활용품 등이 들어서면 꽉 차는 크기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조회 결과 지난 5월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성아파트 전용 43.28m²가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5만원에 거래됐다. 인근 주공2단지(32.39m²)와 다세대 빌라(38.08m²)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에 계약이 성사됐다. 교통과 인근 상권 등 입지 조건이 달라 단순 비교는 무리지만 방 크기만 놓고 봤을 때 약 2~3배 크기임에도 구로동 주택 가격이 비슷하거나 쌌다.
자리를 옮겨 인근 다른 공인중개업소에 올라온 시세도 살펴봤다. 비슷한 크기의 원룸이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35만원, 투룸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85만원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원룸도 있었지만 방 크기가 더 작거나 반지하 혹은 옥탑방이라 주거 환경이 나빴다.
“전세 물량은 가격이 어떤가요?”
“전세는 찾기 힘들어요. 있어도 1억원 이상은 생각하셔야 돼요.”
대학가 원룸 골목의 전세도 거의 씨가 마른 가운데 그나마 있는 물량은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났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5곳을 둘러본 결과 원룸 전셋값은 적게는 5500만원, 가장 비싼 곳은 2억1000만원이나 됐다.
/사진=김창성 기자
◆‘역세권+번화가’ 업고 ‘시세등등’
신촌·홍대입구·한양대 인근 원룸 골목의 공통점은 ‘역세권+번화가’다. 이곳의 공인중개업자들은 하나같이 이 부분을 강조하며 어쩔 수 없는 시세라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수요가 대학생이고 일부는 직장인도 있다.
하지만 월세 90만원, 전세 2억대 원룸은 1년치 대학등록금이 1000만원이 넘는 대학생들은 물론이고 직장인들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시세다. 그야말로 ‘울며 겨자 먹기’지만 해당지역 공인중개업자들은 우수한 입지조건에 풍부한 대학생 고정 수요까지 더해져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요새 학생들은 사생활 보호다 뭐다 해서 하숙집은 꺼려요. 규율이 심한 기숙사도 마찬가지구요.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에 혼자 사는 직장인들까지 더하면 고정 수요가 넘칩니다. 게다가 주변에 젊은 친구들이 놀기 좋은 번화가가 있잖아요. 싸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연세대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의 말이다. 신촌 인근 상권이 타 지역 신흥 상권에 밀려 예전보다 많이 죽었다고 하지만 연세대·이화여대에 인근 서강대 수요까지 더하면 매물을 내놓기 무섭게 문의가 빗발친다는 것.
여기에 서울 종로·을지로 등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직장인 수요도 상당하다고 설명한다. 주변에 널린 모텔들이 거주환경을 해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어차피 대학생도 성인인데 대형아파트 단지라면 모를까 학생들은 별 신경 안쓴다”고 말했다.
한양대 인근 공인중개업소 대표 역시 같은 시각이다. 그는 “사실 학생 상대로 하는 장사치고 가격 거품이 많이 끼긴 했지만 역세권에 번화가라서 수요자들이 비싼 가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다”며 “학생이나 직장인이 감당하기 버거운 비용이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는 어차피 아쉬운 건 그들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동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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