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위치한 삼성전자 서초사옥. 삼성타운 특유의 위용을 뽐내며 서초사옥은 강남역 일대 빌딩 사이에서 우뚝 솟아있다. 지난 16일부터 삼성생명 전 직원이 서초사옥 C동(옛 삼성전자동)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오른 직원들의 표정에는 기대감과 피곤함이 함께 서렸다.
태평로사옥 매각 이후 지난달부터 사옥 이전을 진행한 삼성생명이 최근 모든 작업을 마치고 ‘서초시대’의 막을 열었다. 서초사옥으로 둥지를 튼 삼성생명이 올 하반기 삼성그룹 식구들과 어떤 시너지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삼성생명이 금융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는 등 금융지주사 설립을 위한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삼성생명 서초사옥. /사진=박효선 기자
◆삼성 금융계열사 한데 집결
서울 중구 태평로사옥의 주인이던 삼성생명이 32년 만에 세입자가 됐다. 지난 1월 부영과 사옥매각 계약을 체결해 태평로시대를 종료하고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사옥으로 들어간 것. 부영에서 잔금을 완납하면 태평로 사옥매각은 이달 말쯤 최종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경영지원실·기획실·자산운용본부·영업본부 등 본사인력 약 1500명이 한달여에 걸친 이사작업을 모두 마치고 서초사옥 C동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서초사옥에 이사 오기로 한 4개 금융계열사(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자산운용) 가운데 가장 먼저 입주를 마친 셈이다.
삼성생명은 주로 C동 고층부를 사용한다. 21~25층과 32~37층에 입주했다. 기획실은 33층, 고객상품채널전략실은 35층, 경영지원실은 37층을 사용한다. 그 위 40~41층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임직원 약 200명이 사용 중이다. 최고층부인 42층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집무실이 있다.
삼성자산운용 역시 서초사옥으로 이전한다. 삼성자산운용 임직원들은 오는 26일 업무를 마치고 이사한 뒤 29일부터 서초사옥으로 본격 출근할 예정이다. 삼성자산운용은 서초사옥 C동 16~18층을 사용한다.
삼성화재는 을지로사옥 매각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서초동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유력하다. 다만 C동에 삼성화재 전임직원이 다 들어갈지 B동과 나눠 입주할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이를 위해 삼성화재는 현재 을지로 본관 사옥 매각을 진행 중이다. 매수자 등이 확정되면 서초사옥으로의 이전작업을 가시화할 방침이다.
삼성증권의 경우 구체적인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으나 올해 말쯤 서초사옥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 조직개편 시기 등을 고려할 때 연말까지 이전작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태평로 삼성본관빌딩 중 삼성증권이 떠난 자리는 한국은행이 사용할 계획이다. 태평로에는 삼성그룹 금융계열사 중 삼성카드 한곳만 남는 셈이다. 삼성카드는 삼성본관의 20~27층을 사용 중이다.
◆금융지주사 전환설 다시 솔솔
금융업계는 삼성그룹이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으로 집결한 배경으로 금융사업 재편과 발전전략 모색을 꼽는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전자 위주였던 제조와 금융 간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전략이 아닌가 싶다”며 “금융계열사가 한곳에 모이면 의사결정이 빨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초 금융계열사 경영진을 불러 중장기전략과 성장모델 수립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은 올 초 기업설명회(IR)에 직접 참여해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보험사 인수·합병(M&A)과 자산운용 글로벌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특히 삼성그룹이 금융계열사를 서초사옥에 모아 놓고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 금융지주사 전환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삼성생명은 지난18일 이사회를 열고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증권 지분 8.02%(613만2246주)를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증권 지분은 11.17%에서 19.6%로 높아지게 됐다. 삼성생명은 지난 1월에도 삼성전자가 보유했던 삼성카드 지분을 모두 인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은 기존 28.02%에서 71.86%로 늘었다.
이처럼 삼성생명이 금융계열사 지분을 계속 늘리는 것은 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한 수순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올해 통과된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합병회사가 피합병회사의 주식을 90% 보유해야 했지만 원샷법에 따라 80%로 완화돼 합병과 분할이 한결 수월해졌다. 지주사 전환에 따른 지분 처분시한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됐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은 주주와 여론, 정치권 등 상황과 개편방안의 가시성을 살피며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실행 여부와 시기를 예측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요건(30% 이상 확보)을 갖추고 1대 주주 지위에 올라야 한다. 비상장사는 지분 50%를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또한 올 상반기 삼성생명·화재·카드 등 삼성 금융계열사의 실적은 호조세를 보였다. 삼성생명의 당기순이익만 1조5695억원으로 국내 1위 금융지주사인 신한금융(1조4548억원)을 앞질렀다.
이번에 삼성생명의 순이익이 크게 증가한 것은 지난 1월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37.45%(4340만주)를 매입하면서 발생한 9337억원의 일회성 이익이 반영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일회성 요인을 제외해도 이익 흐름이 양호하다”고 덧붙였다. 삼성카드 지분 매입에 따른 일회성 요인에 이어 올 3분기에도 본사 사옥 매각이익 2800억원이 외관상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룹 내에서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차지하는 이익비율도 늘어났다. 최근 2년간 삼성전자를 제외한 15개 상장사의 순이익 중 금융사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58.3%에서 71.6%로 증가했다. 이에 재계 관계자 사이에선 삼성전자를 제외한 금융계열사들이 삼성그룹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가 오간다.
문제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느냐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는 데다 IFRS4(국제회계기준) 2단계 도입을 앞두고 자본금을 쌓아야 해 보험업계 자체의 지속성장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태평로사옥을 팔고 서초사옥에 세 들어 살게 된 이유기도 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