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사금융 없애고 '금리단층' 해소 우선돼야
저신용자에게 적용되는 법정 최고금리가 꾸준히 낮아졌지만 정작 제도금융권에서 서민이 설 자리가 줄어들어 역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남동을)은 지난 5일 대부업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연 27.9%에서 연 25.0%로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부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윤 의원은 “여전히 대부업 금리는 서민에게 큰 부담”이라며 “서민의 이자 부담 완화를 위해 법정 최고금리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신용도와 상환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만큼 법정 최고금리를 내려 서민의 이자부담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 대부업의 법정 최고금리는 66%에 달했다. 최고금리는 2002년 10월(66%), 2007년 7월(49%), 2010년 7월(44%), 2011년 6월(39%), 2014년 4월(34.9%)을 거치면서 지난 2월 27.9%까지 하락했다.
이는 대부업계에 적잖은 변화를 일으켰다. 최고금리가 낮아지면서 소형대부업체가 도태됐다. 고객에게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려면 그만큼의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본이 부족한 소형저축은행이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최고금리가 연 66%였던 2007년 대부업체 수는 1만8000개를 넘었으나 지난해 6월 기준 8500여개로 줄었다. 반면 자산 100억원 이상의 대형대부업체 수는 2010년 말 100개사에서 2014년 말 165개사로 늘었다. 대부업계의 ‘교통정리’가 진행된 것이다. 이를 두고 대부업을 이용하는 서민의 무리한 대출이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고객관리능력이 떨어지는 소형저축은행이 설 곳을 잃으면서다.
실제 대부잔액은 2010년 말 7조5655억원에서 2014년 말 11조1592억원으로 늘었는데 이는 대형대부업체 잔액 증가 영향이 컸다. 지난해 금감원이 시행한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대부업의 잔액 증가분은 같은 기간 93.8%(3조3692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대형대부업체를 이용한 고객 수 또한 197만명에서 227만명으로 31만명(16%) 증가했다. 반면 소형대부업체를 이용한 고객 수는 줄었다. 이처럼 대부업계가 교통정리되면서 대부시장을 이용하는 고객은 보다 합리적인 금리를 적용받게 됐다.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서민
문제는 제도권이 아닌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서민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소가 지난 3월 발표한 ‘금리상한 인하에 따른 저신용자 구축 규모의 추정 및 시사점’에 따르면 대부업계가 취급한 평균 신용등급은 점차 하락했다. 최고금리가 연 39%일 때 고객의 평균 신용등급은 7~8등급이었지만 연 34.9%로 내린 후 고객의 평균 신용등급은 7.3등급으로 강화됐다.
반면 4~6등급의 중위 등급자의 비중은 같은 기간 31%에서 42%로 증가했다. 대부업체의 고객군이 우량고객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저신용자 서민이 의지할 만한 합법 금융기관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이재선 한국대부금융협회 사무국장은 “현행 최고금리(연 27.9%)가 시행된 지 반년도 안돼 현행 체계에서의 고객 평균 신용등급을 추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올해 말쯤 자료가 나올 것”이라며 “6등급대로 떨어질 것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업을 이용하는 고객이 우량화된 가장 큰 이유는 대부업체가 대출심사기준을 강화해서다. 최고금리가 낮아진 만큼 대부업체는 고객 리스크 관리를 더욱 까다롭게 할 수밖에 없다. 심사기준이 되는 고객의 상환능력이 기존의 최고금리일 때보다 좋아야 대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대부업체에서 서민이 설 자리를 잃고 있는 이유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고객이 우량화되면서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린 서민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한국대부금융협회와 한국갤럽이 지난해 6월 실시한 불법 사금융 이용현황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5026명)의 0.82%(41명)가 ‘최근 불법 사금융을 이용 후 완제했거나 이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평균 이용금액은 3209만원, 평균이자는 연 114.6%로 집계됐다. 협회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약 33만명이 총 10조5000억원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면서 대부시장에서 배제될 것으로 예상되는 저신용자를 최소 35만명에서 최대 74만명으로 추정했다. 대부업 고객을 6~10등급으로 가정하고 각각의 신용등급자에 대한 대부업체의 손익분기점을 대손율(11~15%)에 따라 추정한 수치다.
◆“금리인하, 최우선순위 아니다”
이에 법정 최고금리를 내리기 전 중금리시장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부업 최고금리에 가깝게 대출하는 중신용자가 많아질수록 저신용자는 제도권에서 설 곳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금리단층’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10~15%의 금리구간에 해당하는 개인신용대출 비중은 5.1%에 불과했다. 5~10%의 금리로 개인신용대출을 받은 비중이 24.9%, 15~20% 구간의 경우 14.9%인 점을 감안하면 중금리 신용대출이 현저히 낮은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제도금융권에서 중금리대출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점이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의 평균대출금리는 4.4%, 저축은행은 25.5%였다.
물론 1년 전의 상황과 단순 비교하기엔 어렵다. 지난해엔 법정 최고금리가 현재보다 7%포인트 높았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부 대형저축은행이 중금리 개인신용대출상품을 활발히 판매 중이다. P2P(개인간)대출업계도 성장세를 보이며 중금리시장을 노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중금리 정책상품을 마련했다. 지난달 시중은행이 중금리 개인신용대출상품인 ‘사잇돌’을 선보인 데 이어 저축은행도 다음달 이 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미 굳어진 금리단층을 해소하기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또 이를 해결하기 전에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할 시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리를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가 잘못됐다. 불법 사금융을 없애고 단층된 중금리시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며 “단순히 최고금리만 인하하면 오히려 더 많은 서민이 사금융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