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지점 늘었지만 '속빈 강정'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해외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사와의 과열된 경쟁으로 빠진 수익을 해외에서 채우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몇년 새 자산운용사의 해외지점수가 늘어난 상황이다.
그러나 해외진출이 대형사 위주여서 자산운용업계를 아우르는 긍정적인 전망을 기대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에는 대형사의 움직임도 소극적이다. 속도가 붙는 듯했던 자산운용사의 해외진출에 제동이 걸린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이미지투데이
◆두배 늘어난 해외지점수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08년 14개였던 자산운용사 해외지점수는 지난 1분기 말 기준 31개로 늘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12개로 가장 많았고 에셋플러스자산운용(5개), 삼성자산운용(3개), 한국투자신탁운용(2개)이 뒤를 이었다. 이밖에 동양자산운용, 하이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등 9개사가 1개씩 해외지점을 보유했다.
7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현지법인 설립 형태의 해외진출이 두배 이상 증가한 만큼 자산운용사의 해외영업수익 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또 자산운용사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시장확대 노력은 장기적 성장성 마련을 위한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신흥국 중심이었던 자산운용사의 해외진출 지역도 점차 선진국으로 확대됐다. 이에 따라 전체 해외지점 가운데 브라질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중국·홍콩·베트남·싱가포르·호주·대만·인도) 비중은 61.3%로 2008년 78.6%보다 크게 줄었다. 해외진출 자산운용사도 두배 가까이 늘었다. 2008년 7개였던 해외진출 자산운용사는 지난 1월 말 기준 13개사로 증가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2007년 해외펀드 비과세 혜택 도입 등의 영향으로 해외펀드에 투자하는 국내투자자가 늘어나자 자산운용사도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외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려는 자산운용사가 일부 대형사에 집중된 점은 문제로 지적됐다.
◆자산운용업계의 불균형
일부 대형사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해외부동산펀드에서 엿볼 수 있다. 해외부동산펀드는 지난해 2분기 금융당국이 NCR(영업용순자본비율) 규제를 완화하면서 급증했다. 하지만 일부 대형사가 해외시장을 독식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자산운용사는 총 87개사다. 이 가운데 해외부동산펀드를 설정한 곳은 32개사에 불과하다. 이 중 두자릿수 펀드설정 실적을 가진 곳은 8개사다. 대형사인 이들 자산운용사의 총 자산규모는 11조3045억원으로 전체의 77.4%를 차지한다.
중소형사들은 정부가 관련 규제 완화에 머물지 말고 관련법을 개정해 인력을 키워야 국내 자산운용업계가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금리·저성장시대에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소형사 역시 해외진출을 고려해보지만 투자여력과 전문인력이 부족해 쉽지 않은 실정이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는 규제 개선과 간접적 지원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자금기관이 자산운용사에 인색한 것도 업계의 불균형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2000년 후반 이후 영업이익률과 ROE(자기자본이익률) 등이 부진한 상황에서 자산운용사의 해외진출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서브프라임사태 이후 정책기금은 투자를 꺼린다.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있는 대형사가 해외진출에 나서기 유리한 상황을 키운다는 얘기다.
◆희미해진 해외진출 동기
최근에는 대형사마저 해외진출에 소극적이다. 해외진출로 수익을 창출하려는 대형사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현지자금 유치로 해외개척에 성공한 미래에셋자산운용만 눈에 띈다.
자산운용사의 해외진출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국내투자자가 국내 자산운용사를 통해 해외에 투자하는 개념과 해외투자자가 자산운용사를 통해 국내에 투자하는 개념이다. 대부분 대형사들은 해외지점이 있더라도 국내투자자의 운용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할 뿐 해외투자자의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예컨대 미국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프랭클린 등은 전체 운용자산 규모 중 해외투자자의 자산비중이 각각 38.4%, 27.0%다. 스코틀랜드 에버딘에셋도 해외투자자 비중이 42%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국내 고객의 운용자산을 본사로부터 위탁받아 운용한다. 심지어 일부 대형사들은 영업활동을 할 수 없는 사무소 위주로 해외지점을 운영하는 처지다.
이들 대형사가 해외시장에서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위험부담 때문이다. 국내영업만 해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어서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해외시장에 진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대주주가 금융지주, 보험사, 증권사 등 대형금융그룹인 만큼 해외시장 진출에 한발짝 물러난 자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대주주로부터 안정적인 일임계약 자산이 들어오는데 굳이 해외진출이라는 모험을 감행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삼성자산운용의 대주주는 지분 96.5%를 가진 삼성생명이고 한화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대주주는 각각 한화생명, KB금융지주, 한국투자증권”이라며 “자산운용사가 장기적인 성장을 목표로 새로운 시장 발굴에 나설 때 해외진출의 필요성이 인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주식시장이 글로벌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가 약 1.5%로 알려졌다”며 “한 국가에만 투자하면 위험도가 높아지겠지만 투자처 확대 입장에서 자산운용사의 해외진출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해외시장 진출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력과 지원이 부족하다”며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되기 위해선 리서치, 네트워킹, 리스크 관리, 투자자 지원 등에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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