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지금 통장에 300만원 정도는 있으시죠? 이 자리에서 바로 스마트폰뱅킹으로 계약금 송금해주시면 분양가 할인해드리고요, 일주일 안에 700만원 더 보내주시면 돼요. 중도금대출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주부 김씨는 최근 신도시에 있는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러 갔다가 분양회사 직원의 집요함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김씨는 “꼼꼼하게 둘러보고 고민해보기도 전에 계약서부터 들이미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며 불쾌해했다.


몇년 후 은퇴를 앞둔 회사원 이씨는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씨는 일산의 오피스텔 모델하우스를 구경하다가 얼떨결에 300만원을 입금하고 최종 분양까지 받았다. 그는 “계약금 낸 게 아까워 대출도 받고 한번 투자해보자고 마음먹었는데 몇달째 부인에게 성급하게 결정했다며 원망을 듣는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뭔지 아세요? 계약금 낼 때 집사람도 같이 있었다는 거예요. 자기도 직원 말에 현혹됐으면서 이제 와 저를 탓하는 거죠.”(한숨)

/사진=이미지투데이

◆계약금 300만원에 무이자대출 ‘파격조건’
건설사들이 파격적인 분양조건을 내세우며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 미분양이 6만가구를 넘는 등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묻지마 분양’을 조장하는 것이다.

최근 건설사들의 분양조건을 보면 계약금 300만원 정액제, 중도금대출 무이자 등 이례적인 사항들이 눈에 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300만원 정액제 실시 후 문의전화가 10배 이상 늘었고 모델하우스 방문객도 부쩍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계약조건이 실수요자에게 도움을 주기보단 불필요한 투기를 유발한다는 데 있다. 정부당국의 관계자는 “실수요가 아닌 투기수요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적절하게 단속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이씨의 사례만 봐도 수억원대 부동산을 사면서 계획적이지 않고 즉흥적으로 투자한 면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취소 안되는 계약, 대응방법은?

심지어 계약취소 의사를 밝혀도 이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생긴다. 일반적으로는 분양자가 계약서에 서명해야 정식계약이 성사됐다고 보지만 상황에 따라 계약금을 지급했거나 일종의 가계약만으로 법적 효력이 있다. 본계약 시 조건이 달라질 수 있지만 ‘계약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판례에서는 대금이나 잔금지급 등에 대한 합의가 있을 경우 가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본다. 즉 잔금지급 시점 등을 명시한 문서가 있으면 계약금을 돌려받기 어렵다. 반대로 특약조항을 명시해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증거를 남겨두면 이러한 피해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윤지해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책임연구원은 “계약금을 돌려받으려면 문서를 작성하거나 구두약속한 녹취를 남겨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이렇게 부동산 해약금과 관련한 분쟁이 많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계약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 당초 계획에 없던 수억원대의 부동산을 떠안는 것보다는 낫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