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평촌에 사는 A씨(61)는 최근 10년 넘게 살아온 전용면적 135㎡ 아파트를 팔고 74㎡의 아파트로 이주했다. 두 자녀가 결혼과 지방 취직으로 독립한 뒤 더 이상 넓은 집이 필요 없어져서다. 대출자금을 갚고 나니 남는 돈은 없지만 이자와 관리비 부담이 줄어 만족스럽다.
# 신혼부부인 B씨(33)와 C씨(30)는 지어진 지 1년 남짓 된 59㎡의 소형아파트를 분양받았다. B씨의 부모는 “나중에 아이 낳고 오래 살려면 20평대는 돼야 한다”며 돈을 보태줄 테니 중형 평수의 집을 구하라고 했지만 실제 집을 방문한 후에는 “살만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혹은 수도권에 위치한 중대형·대형아파트는 베이비붐세대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수년 전만 해도 집의 평수는 사람들에게 부의 척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중산층은 더 이상 넓은 집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집’에 눈독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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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만 팔린다… 분양시장도 소형 바람
‘작은 집’ 선호현상은 규모별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을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감정원이 시세조사를 시작한 2012년 1월부터 올 7월까지 전국 주택의 월별 가격동향을 조사한 결과 전용 60㎡ 미만 소형아파트의 매매가격 상승률이 10.4%로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중소형아파트(전용 60~85㎡ 미만) 매매가는 5.8% 상승했다. 중대형아파트(전용 85~135㎡)와 대형아파트(전용 135㎡ 초과) 매매가는 각각 1%와 7.1% 하락했다. 작은 평수일수록 상승폭이 컸고 넓은 평수일수록 하락폭이 컸다.
소형·중소형아파트가 매매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높아졌다. 2012년 이뤄진 71만6714건의 아파트 매매거래 중 전용 85㎡ 미만 아파트거래 건수는 58만7577건으로 전체의 81.5%를 차지했다. 이 수치는 올 상반기 87.2%로 5.7%포인트 올랐다. 올 상반기 아파트 전체 거래량 50만4967건 중 44만1169건이 전용 85㎡ 이하였던 것.
분양시장에서도 작은 집 선호현상이 뚜렷하다. 부동산114가 올 상반기 서울·수도권에서 분양된 아파트의 평균 청약경쟁률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용 60㎡ 이하가 7.97대1로 경쟁률이 가장 높았고 전용 60~85㎡가 5.97대1, 85㎡ 초과가 2.90대1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도 중소형 공급에 열심이다. 최근 분양시장에서는 모든 가구를 중소형으로만 구성한 단지 공급이 늘어났다. 올 상반기 서울에서 분양한 21개 단지 가운데 절반가량인 10곳이 중소형으로만 구성된 아파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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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가구 증가·공간특화설계 영향
작은 집 선호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로 인구구성의 변화를 들 수 있다. 4~5인 가구 중심이던 주택시장이 1~2인 가구와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소형의 인기가 꾸준히 상승한 것이다.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가구원 수는 2.53명으로 직전 조사인 2010년 2.68명보다 0.15명 감소했다. 평균 가구원 수는 1990년 3.77명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5년 2.88명으로 3명 미만으로 떨어졌고 이후 2명 중반대까지 줄어들었다. 1인가구(27.2%)와 2인가구(26.1%)는 전체 가구 수의 절반을 넘어선 지 오래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가구 구성원 수가 변하면서 중소형 평수의 거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베이비붐세대의 주택 다운사이징이 가속화함에 따라 중대형아파트의 매물이 늘고 중소형 거래수요가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구 구성원 수의 변화가 현재의 주택 소형화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중소형화의 진행이 1~2인 가구 증가세보다 빠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부동산업계는 가구 구성원 수의 변화와 더불어 기존의 3~4인 가구에서도 중소형 평수를 선호하는 현상이 확산된 것으로 분석한다.
특히 최근 공급되는 중소형 평수의 경우 각 건설사의 경쟁적 공간특화설계 등을 통해 기존 중대형에 버금가는 기능을 갖추며 소비자를 유혹한다. 기존 중대형 평수에서나 볼 수 있었던 4베이 설계를 적용하고 서비스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집안 구석구석 수납시설을 만들어 공간활용을 극대화한다. 또 공용창고 등을 설치해 공용공간 활용이 가능하도록 한다.
경기도 평촌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오래된 중대형아파트에 살던 3~4인 가구가 이사할 때 85㎡ 미만의 중소형을 많이 찾는다”며 “지어진 지 얼마 안된 아파트단지의 경우 발코니 확장과 빌트인가구, 효율적인 공간설계 등을 통해 이전에 비해 주거여건이 확연히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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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 선호현상은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주택산업연구원은 ‘미래주거트렌드’ 세미나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변화할 주거트렌드로 ‘주택규모 축소’와 ‘실속형 주택의 인기’를 꼽았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에코세대가 주택시장의 구매수요를 이루면서 그 이전 세대보다 주택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주거비 절감형 주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고소득자여도 고급주택보다 가격대비 성능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개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책임연구원은 “실속을 강조하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보편화되며 가족수에 적정한 규모의 주택을 소비하고 실용성을 중시할 것”이라며 “주택의 가치가 단순한 규모가 아닌 첨단기술을 통한 주거가치 향상으로 변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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