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VR, 오큘러스 리프트 등 특이한 고글로 대표되는 VR 기술에 이어 올 여름 ‘포켓몬 고’의 대히트로 AR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AR이 VR을 밀어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MR이라는 신기술이 등장, VR과 AR을 압도할 기대주로 주목받는다. MR은 앞선 두 기술과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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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람객으로 가득한 농구경기장. 갑자기 거대한 고래 한마리가 경기장 바닥에서 솟구쳐오른다. 관람객들이 놀라 탄성을 지르는 가운데 고래는 엄청난 물살과 소음을 남긴 채 사라진다.
#2. 어린아이가 두 손을 펼치자 자그마한 코끼리가 나타난다. 코끼리는 귀여운 울음과 애교를 선보인 후 허공으로 서서히 떠오른다.
#3. 어두운 사무실에서 게임이 시작된다. 천정에 구멍이 뚫리고 로봇들이 내려온다. 사용자는 샷건을 난사해 로봇들의 침략을 무찌른다.
위 상황들은 올 4월 미국의 IT매체 ‘와이어드’가 ‘가장 비밀스런 스타트업’으로 지목한 미국의 벤처기업 ‘매직 리프’(Magic Leap)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볼 수 있는 홍보 동영상의 장면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문 것처럼 보이는 이 회사의 기술은 지난 2년간 소수의 투자자들과 언론인, IT기업 관계자들에게만 공개됐다. 플로리다주 다니아비치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은 방문자 대부분은 놀라운 신기술에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10월 구글과 퀄컴으로부터 5억4200만달러의 1차 투자를 유치하고 이어 안드레센 호로위츠, 클라이너 퍼킨스 등 실리콘밸리의 쟁쟁한 벤처캐피탈들까지 앞다퉈 투자자로 나선 것이 그 증거다.
지난해 3월 MIT는 이 회사의 기술을 ‘올해의 10대 혁신기술’로 선정했고 올 초 워너브라더스, 피델리티, JP모건 등이 참여한 C-라운드 파이낸싱에서는 약 7억9350만달러의 투자를 확보했다. 현재까지 이 회사에 투자된 금액의 총합은 약 14억달러다.
구글의 CEO 순다 피차이, 알리바바의 부회장 조 짜이가 이사회의 일원이며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피터 잭슨은 고문이다. 디즈니와 제휴했고 루카스필름과는 비밀 연구소를 공동운영 중이다.
/사진제공=매직리프 홈페이지 캡쳐
◆VR·AR 강점 살리고 단점 극복
일반적인 의미에서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은 현실과 완전히 차단된 디지털로 구성된 별도의 공간을 말한다. VR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완전히 외부세계와 분리하는 HMD(Head Mounted Display) 기기의 착용이 필수적이다. 오큘러스 리프트, 기어VR, HTC 바이브(Vive), 플레이스테이션 VR 등이 대표적인 가상현실용 HMD 기기들이다.
몰입감이 뛰어나지만 아직은 해상도가 낮아 눈에 거슬리는 게 문제다. 현실감 넘치는 고해상도 화면과 빠른 구동속도를 확보하려면 지나치게 높은 하드웨어 사양이 필요하다. ‘VR멀미’ 등 신체적 피로를 야기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에 부가적인 정보를 표시함으로써 현실세계를 확장하는 기술이다. 포켓몬 고(Pokemon Go)의 게임 화면처럼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스마트폰 등 특정한 기기를 활용하면 현실에 덧입혀진 가상의 캐릭터나 정보를 볼 수 있다.
VR과 달리 멀미 현상이 없고 현실세계를 자유롭게 다니며 여럿이서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VR에 비해 상대적으로 몰입감이 떨어진다.
MR(Mixed Reality, 혼합현실)은 VR과 AR의 장점을 혼합한 기술이다. 융합현실(Merged Reality), 복합현실이라고도 불린다. 현실세계와 CG로 만들어진 가상세계를 융합시킨 화면을 보여준다.
AR과 유사하지만 다른 점은 현실과 가상의 물건들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 이를테면 포켓몬 고의 포켓몬들은 무조건 현실 배경 위의 객체로 나타나지만 MR의 몬스터들은 책상이나 벽같은 현실세계의 객체 뒤에 숨을 수도 있다.
MR 역시 VR과 마찬가지로 고글형 기기를 착용한다. VR에 필적하는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AR처럼 현실세계가 배경으로 보이기 때문인지 VR멀미 현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면 VR과 AR의 단점을 해소하고 장점만 갖춘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아직 기술적 완성도가 높지 않다.
/사진제공=매직리프 홈페이지 캡쳐
◆라이트필드 기술로 현실감 극대화
매직 리프의 CEO 로니 애보위츠(Rony Abovitz)는 외과수술용 로봇 제작기업 ‘마코’(Mako)를 창업해 2013년 17억달러 가치를 인정받은 바이오의료공학·로봇전문가다. 가상현실을 통해 실제 환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하다 매직 리프를 창업했다.
애보위츠는 인간의 안구와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연구한 끝에 기존 VR의 한계로 느껴지던 낮은 해상도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직 리프의 프로토타입 기기를 착용해본 경험자들에 따르면 먼 곳의 물체는 멀게, 가까운 곳의 물체는 가깝게 보인다. 눈앞에 초점이 고정되지 않으므로 픽셀이 두드러져 보이는 현상이 발행하지 않는다.
이처럼 실제와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의 가상 이미지를 현실세계에 배치할 수 있는 기술을 매직 리프는 ‘동적 디지털화 라이트필드 신호’(Dynamic Digitized Lightfield Signal)라고 명명했다.
프로토타입 기기에는 사용자의 시야에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투사하기 위한 여러개의 초소형 프로젝터와 마치 렌즈처럼 생긴 미스테리한 ‘포토닉 라이트필드 칩’이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경쟁자가 있다. 매직 리프와 여러모로 유사한 혼합현실 기술을 보여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HoloLens)는 이미 개발자용 베타 버전을 판매 중이다. 메타(Meta), 더 보이드(The Void) 등도 유사한 신기술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최근에는 인텔도 ‘알로이’(Alloy)라는 융합현실 기술을 공개했다.
현재까지는 매직 리프의 기술이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래는 확정된 것이 아니다. CES 2017이 개막하는 내년 1월쯤이면 이 분야의 진정한 강자가 누구인지 대략적이나마 가려질 전망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5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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