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연체율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기업대출 리스크가 커져 부실률이 상승하는 추세다. 이에 따른 대출시장의 풍경도 확연히 달라졌다. 금융회사는 그간 ‘절대갑’이었던 대기업대출을 꺼리고 중소기업이나 주택담보대출 등 담보를 설정한 안전한 개인대출을 선호한다.

차별받던 계층은 환영할 일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결코 웃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우리 경제의 헤드 역할을 해온 대기업 부실이 크게 늘면서 산업 전반이 어두운 터널 안으로 진입했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7월 기업대출(원화) 연체율은 1.16%로 전월 말(1.04%) 대비 0.12%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동월 대비 0.2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세부적으로는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과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이 0.32%, 0.82%로 소폭 상승한 데 그친 반면 대기업대출은 2.31%로 위험 수준에 접근했다. 전체 기업대출의 연체율이 1.16%인 점을 감안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 연체율까지 끌어올린 셈이다. 이는 STX조선과 한진해운 등 일부 조선 및 해운 관련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건설사도 부동산경기 침체로 위기에 놓인 탓이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고 이 중 집단대출 연체율은 오히려 전월 말 대비 0.01%포인트 하락했다. 올 9월 말 기준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개인대출 연체율 격차는 더욱 벌어졌을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대출해준 채권은행의 피해가 막대하다”며 “대기업 대출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에 따른 손실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다행히 아직 연체율이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며 “하지만 금리가 오르거나 산업계에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지면 연체율이 언제 다시 급등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혹시 발생할지 모를 불확실성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은행권, ‘대기업 대출 줄여라’


모니터링 강화는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8월 말 대기업대출잔액은 72조2535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조원 이상 감소했다.

현 기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저성장 흐름이 지속되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등으로 내수까지 침체된 상황에서 대기업 리스크가 언제 어떻게 확대될지 알 수 없어서다. 설상가상 유럽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제지표도 불안해 수출시장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 흐름을 볼 때 은행 입장에선 리스크가 높은 기업의 대출을 줄이는 게 최선의 리스크 관리인 셈이다.

하지만 무작정 대기업대출 비중을 낮출 수도 없다. 기업의 은행자금줄이 끊기면 최악의 경우 연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 경우 경기 위축은 물론 실업률이 증가해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곳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다. 일반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기업대출 등 위험도가 높은 대출에서 발을 빼면 국책은행이 이를 메꿔야 하기 때문.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 2분기 국내은행은 4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조2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에 비해 최악의 성적표다. 하지만 전체 은행이 손실을 본 것은 아니다. 일반은행은 오히려 1조6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반면 산업·수출입·농협은행 등 특수은행은 2조원의 적자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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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 일반은행 대신 떠안아
대기업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금감원이 발표한 '6월 말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2.17%로 2008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전월 말 1.26% 대비 0.81%포인트 상승했다. 2012년 대기업 연체율이 잠정치로 2.36%까지 오른 적이 있으나 확정치 기준 1.97%로 내려갔다.

당연히 부실채권비율도 위험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국내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은 1.79%로 전 분기 대비 0.08%포인트 하락했다. 건전성부문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6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14.39%로 전 분기 대비 0.41%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수출입은행의 총자본비율은 10.01%로 은행권 최하위에 머물렀다. 산업은행 역시 부실기업에 2조원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상반기 2000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은행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부실률은 대내외 경제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며 “그러나 대기업 경제업황이 부정적이라는 점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은행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과 주택담보대출 등 개인대출은 안전할까. 안심할 수 없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택담보대출금리는 연 1~2%대 초반 수준이다. 이자부담이 낮아 아직 연체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 하지만 본격적인 금리인상기에 들어가면 상황은 곧 반전될 수 있다. 중소기업대출 역시 최근 중금리대출 문이 활짝 열리면서 기존보다 이자부담이 낮은 상황이다. 하지만 대기업 법정관리와 저성장 기조가 계속 이어진다면 중소기업의 연체율 역시 상승추세로 바뀔 수 있다.

은행의 대기업대출 회피는 우리 경제의 위기를 뜻한다. 이는 곧 중소기업과 개인에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이를 보완하는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