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머니투데이DB


#. A은행 대관업무부서는 요즘 내부에서 회의하는 일이 잦아졌다. 평소엔 공무원을 만나느라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엔 상황이 달라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접대가 사실상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곤혹스러운 일은  고위공무원을 만나기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동안 담당공무원을 거쳐 고위공무원과 접촉해 공무원대출을 늘리고 주거래통장도 유치했는데 사실상 이 루트가 끊겼기 때문이다. 달라진 법이 모호해 아직까지 뾰족한 해법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해당부서는 외부일정보다는 내부회의로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지 보름이 훌쩍 넘은 가운데 금융권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못해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대관업무를 맡은 영업부서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다. 공무원 대상 주거래통장을 만들고 국고수납 은행 선정 등을 위해선 고위공직자와의 접촉이 필수인데 사실상 지금은 이들을 만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공무원 대상 마케팅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동안 일부 시중은행은 공무원 대상 특별대출금리를 지급하는 행사를 펼쳐왔다. 하지만 이 행사가 김영란법 허용범위에 해당되는지는 아직 명확한 법률해석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만약 누군가 악의적으로 신고할 경우 허용범위를 떠나 해당 은행권이 적잖은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VIP고객 마케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고객 당사자를 비롯해 고객 부부 중 한 사람이 공무원이면 3·5·10법(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위반할 수 있어서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VIP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행사를 펼쳤는데 이젠 하기 힘들어졌다"면서 "행사를 하기 위해선 VIP고객 본인을 비롯해 부부까지 직업 등 개인정보를 알아야 한다. 고객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가는 오히려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공무원 대상으로 특별대출금리를 주는 행사도 중단했다"면서 "내부적으로 법률을 검토한 결과 문제가 없다고 들었으나 권익위원회로부터 아직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받지 못했다. 올해까지 애매한 것은 피하는게 좋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보험사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VIP 혹은 신규고객 유치를 위해 그간 다양한 마케팅을 펼쳤는데 이젠 대체로 행사를 줄이는 상황이다. 대상이 공무원일 경우 보험사는 물론 고객까지 안좋은 여론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다른 실무부서는 조용한데 영업 실무부서가 난처해 하는 표정"이라며 "지금의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하고 논의 중"이라고 귀띔했다.

반면 대관업무가 거의 없는 저축은행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는 분위기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주로 기업이나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영업하기 때문에 김영란법에 대해 별다른 영향이 없다"면서 "다만 대언론을 담당하는 홍보부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반겼다.

이처럼 일부 영업부서는 혼란을 겪고 있지만 다른 실무부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새로운 편법이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분위기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영업부서를 제외한 다른 부서는 김영란법 후폭풍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면서 "우리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금융권이 적용대상이다 보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이젠 사람 영업이 아닌 상품의 질과 경쟁력으로 승부할 때"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 문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모르겠지만 앞으로 새로운 편법이 생길 것 같다. 그게 더 걱정"이라면서 "현재 상황에선 필요한 제도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