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도전, 소통의 아이콘’.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고 회사 조직 내 낡은 관행을 과감하게 철폐하는 경영자로 유명하다. 금융권에서는 유일무이한 유형의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금융회사 CEO들은 대부분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금융규제의 장벽이 높아 ‘튀어나온 못은 망치로 얻어맞는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이는 고객이 원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대체로 고객은 변화보다는 안전을 추구한다. 자칫 경영진의 판단 미스로 금융회사가 영업손실을 기록하면 자신이 맡긴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불안해서다. 따라서 대다수 금융회사 CEO는 혁신보다 금융환경의 트렌트를 천천히 따라가는 방식을 추구한다.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부회장. /사진제공=현대카드

하지만 정 부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담는 데 주력했다. 이로 인해 초기엔 무리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지적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대신 ‘합리적인 경영’과 ‘소통’을 방패로 삼았다. 그 결과 논란은 금세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그의 경영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젠 시장이 그를 인정하고 선호하기 시작했다. 변화와 혁신, 소통에 따른 두려움을 ‘믿음’으로 바꾼 셈이다.
◆혁신 아이콘, 유럽에서 일냈다

그런 그가 또 한번 혁신과 도전의 아이콘이란 수식어에 걸맞은 성과를 공개했다. 현대캐피탈이 지난 10월17일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현대캐피탈 뱅크유럽’(Hyundai Capital Bank Europe) 설립 최종승인을 받은 것.

정 부회장은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자리 잡은 현대캐피탈뱅크유럽은 현대캐피탈의 HQ(본사·본부)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번 라이선스 획득은 유럽에서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과정이 제법 험난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말처럼 비유럽 금융회사가 ECB로부터 은행 설립을 인가받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특히 현지 금융사와의 합작이 아닌 독자적인 유럽진출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정 부회장 역시 “그동안 해외진출은 외국기업과 합작형태로 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동안 쌓인 경험을 기반으로 독자 진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로써 현대캐피탈뱅크유럽은 할부와 리스, 딜러금융, 보험중개는 물론 수신업무와 은행업 부수업무까지 할 수 있다. 덩달아 현대·기아차의 판로도 확대됐다. 현대캐피탈뱅크유럽은 자본금이 6710만유로(약 850억원)로 현대캐피탈과 기아자동차가 각각 전체 지분의 80%, 20%를 출자했다. 금융회사는 물론 산업계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분석이다.

◆‘기다림의 미학’ 범유럽 금융사와 경쟁

물론 진행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현대캐피탈이 독일에서 사무소를 연 시기는 2007년. 당시 현대캐피탈은 연간 1600만대 규모의 유럽 자동차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시장을 조사·분석하는 데 열중했다. 이후 2010년 유럽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금융회사 산탄테르소비자금융과 손을 잡고 합작법인 ‘현대캐피탈 독일’을 설립, 운영했다. 당시 현대캐피탈 독일은 현지기업에 금융컨설팅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펼치는 데 주력했다. 이때만 해도 독일진출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그러나 2014년 현대캐피탈이 독일금융당국청(바핀·BaFin)에 제출한 현지법인 설립 최종심사 승인이 계속 지연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현대캐피탈은 단독으로 현지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바핀으로부터 주주적격성 심사와 사업성 심사를 받고 최종인가를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정 부회장은 늦어도 같은해 말쯤 최종승인이 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바핀 측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동안 해외기업에 라이선스를 승인한 선례가 없었던 데다 때마침 ECB에서 라이선스 허가 관련 규제를 변경했기 때문.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현대캐피탈은 최종인가 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독일 금융시장을 파악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했고 더욱 치밀하고 꼼꼼하게 라이선스 획득을 위한 계획을 다시 짰다. 또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과 공조해 결국 설립 승인심사를 받는 데 성공했다.

현대캐피탈 관계자는 “라이선스를 획득하기까지 1년2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며 “오히려 유럽금융당국청과 더욱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었고 유럽 자동차할부금융시장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귀띔했다.

이제 정 부회장은 본격적인 영업확대에 열중할 방침이다. 물론 로드맵도 완성했다. 일단 현대캐피탈뱅크유럽은 오는 12월 영업 개시를 목표로 상품설계와 금융시스템 구축을 마치고 영업 시작 전에 100명 이상의 현지인력을 채용키로 했다. 또 현지영업은 물론 자금조달과 채권관리 등 모든 업무를 자체적으로 수행하며 독일에서 세계적인 금융사들과 경쟁을 펼칠 계획이다.

정 부회장의 혁신경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독일을 거점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까지 범유럽 진출이 그의 단기목표다. 또 그의 혁신경영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그는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이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문제가 생기면 이를 직시하고 고쳐나가는 유형이라는 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어서다.

“점점 늘어나는 세상의 요구 앞에서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그런데 본인의 불완전성에 세가지 유형의 태도가 형성된다. 불완전성이 본인을 전혀 괴롭히지 않고 편안한 유형, 마음 안에 방어기제를 쌓아서 불완전성이란 이슈를 없애는 유형, 스스로 직시하고 고쳐 나가려는 유형. 첫번째는 당연히 문제지만 두번째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정태영 부회장의 페이스북 게시물)

☞프로필
▲1960년생 ▲서울대 불어불문과 ▲MIT 경영학 석사 ▲현대종합상사 기획실 이사 ▲현대정공 이사 ▲현대모비스 전무 ▲기아자동차 전무, 구매본부장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사장 ▲현대캐피탈·카드·커머셜 사장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대표이사 부회장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