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투기 외면하고 엉뚱한 곳 ‘발등에 불’

“내년 봄 결혼을 앞두고 보금자리론으로 신혼집을 마련할 계획이었거든요. 예비신랑과 둘이 모은 자금을 합해도 1억원 이상을 대출받아야 하는데 앞으로는 보금자리론 한도가 1억원 이하로 줄어든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하네요.”


정부가 부동산 대출규제를 강화하면서 무주택 서민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신혼부부 등 소득이 적은 실수요자에게 낮은 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려줬던 ‘보금자리론’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면서 정부가 투기 대신 집없는 서민을 잡는다는 논란이 일파만파 커진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보금자리론·집단대출 “투기 아니라 내집 마련인데…”
2004년부터 시행된 보금자리론은 연 최저 1.7%대 10년 고정금리로 주택자금을 빌릴 수 있는 정책대출이다.

지난 10월19일 정부는 보금자리론 이용자격을 주택가격 9억원에서 3억원으로, 대출한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런 방침이 발표된 것은 시행 닷새 전인 10월14일. 공지 이후 15~18일 나흘 동안 보금자리론을 신청한 사람은 1만2400명으로 평소의 7.5배를 초과했다.

시장이 혼란스러워지자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10월19일 이전 주택매매계약을 체결한 사람에게만 보금자리론을 기존조건에 공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그럼에도 보금자리론으로 내집을 장만하려던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분석 결과 지난 9월 기준 보금자리론 이용자 중 32.1%는 3억원 이상의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KB국민은행 시세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국 주택가격은 평균 3억30만원,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각각 5억1019만원, 3억8871만원을 기록했다.

보금자리론 대신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5년 고정금리로 연 1~2%포인트가량이 높다. 금리변동의 위험이 커지는 데다 1억원을 대출받았을 때 한달 이자가 최대 16만원가량 늘어나는 셈이다.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감수하며 보금자리론을 규제한 이유는 올해 대출금액이 기존한도인 10조원을 넘어섰고 가계부채가 위험수준까지 팽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대출문턱을 낮춰 투기수요에 혜택을 줘놓고 뒤늦게 한도를 빌미로 무주택 서민의 이용자격을 빼앗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시장이 침체되자 정부는 보금자리론 주택가격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렸다. 그 결과 무주택 서민이 아닌 다주택자들이 고가의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 보금자리론을 이용하는 상황이 대거 발생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보금자리론을 받은 다주택자의 대출금은 2조2739억원으로 전체의 15%에 달했다.

또한 정부는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 시 소득심사를 강화하기로 해 일부 분양자에게 타격을 입혔다. 집단대출은 선분양 후 시공사와 시중은행이 계약해 분양자가 별도의 소득심사 없이 주택자금을 빌릴 수 있는 상품인 만큼 심사가 강화되면 저소득층의 피해가 커진다. 

시중은행 집단대출 금리가 지난 8월 2.79%에서 최근 3.1~3.5%까지 뛰었고 일부 아파트의 경우 지방이거나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집단대출 자체를 거부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할 예정인 수도권과 부산 6개 아파트단지도 집단대출이 중단됐다.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분양계약 후 중도금을 낼 시기쯤에 시중은행과 집단대출 약정을 맺는데 이미 분양한 단지도 집단대출을 거절당할 위험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만약 집단대출 대신 분양자가 직접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신청할 경우 소득이나 신용이 낮을수록 금리가 높은 제2금융권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커진다.

서울 강남 아파트단지. /사진=뉴스1 DB

◆강남 투기과열 진정엔 소극적인 정부
또 다른 문제는 최근 서울 강남 등 재건축시장의 투기과열이 심각한 상황임에도 이에 대한 대책은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재건축아파트값은 처음으로 3.3㎡당 평균 4000만원을 넘어섰고 고가아파트에 수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투기차익을 노린 전매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정부가 애꿎은 서민대출만 규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금 부동산시장에 나타나는 과열양상은 강남 등 특정지역의 상황인데 보금자리론은 이 문제의 해법과 거리가 멀다”며 “단 다양한 부동산규제가 거론되는 가운데 정부의 시그널이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투기과열지구(분양규제나 전매금지를 함)를 재지정하거나 분양권 전매제한 기한을 현행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는 등 투기과열을 진정시킬 만한 대책을 검토하는 데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한다. 투기과열지구는 2011년 부동산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해제됐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투기과열지구를 재지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국토교통부는 시장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투기과열지구 재지정이나 수도권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현재로선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 부동산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강남의 투기과열인데도 정부정책은 실수요자의 주택구입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국내경제가 부동산경기로 버티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로선 (강남 투기과열 억제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