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이하 최순실 국조) 1차 청문회 증인으로 나서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 해체’를 언급했다.

이재용 부회장 외에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총수 9명이 일제히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사실상의 ‘이재용 청문회’라 불릴 정도로 이 부회장이 의원들의 집중 질의를 받던 중 “국민과 의원들께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면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거듭 약속한 것이다.


삼성그룹의 주요 사안을 조율하고 결정하는 미래전략실은 이병철 창업주 시절 비서실로 출발해 2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구조조정본부(1998년), 전략기획실(2006년), 미래전략실(2010년)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삼성의 핵심조직으로 계속 존재해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오전 10시부터 13시간 동안 진행된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공식적으로 각 계열사 최고의사결정 기구는 이사회지만 미래전략실은 사실상의 옥상옥 기구로 운영돼 왔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삼성의 돈이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에게 넘어간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검찰 특별수사본부로부터 수차례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결국 이 부회장이 삼성 관련 의혹의 중심에선 미래전략실 해체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어떤 형태로든 삼성의 컨트롤타워역할을 할 기구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의 지배구조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던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청문회 참고인으로 출석한 자리에서 “삼성은 국내 계열사만 약 60개, 해외법인까지 400여개의 계열사가 있다”며 “이런 거대 그룹이 컨트롤타워 없이 경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조 교수는 이어 “미래전략실 해체 후에는 과거처럼 소속과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 변화하거나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 법적 근거를 갖게 하는 등의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서도 삼성이 미래전략실 규모와 기능을 축소하면서 이름을 바꾸거나 지주사체제로의 전환을 준비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어떤 방식이든 상당한 사회적 반발이 불가피해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래전략실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의 예상치 못한 폭탄 발언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준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7일 오전 서울 삼성 서초사옥에서 열린 수요사장단 협의회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미래전략실 해체가 예정된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며 “나중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