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뜨겁다. 촛불을 들고 모인 국민들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촛불혁명’으로 불릴 올 겨울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며 ‘광장’이란 공간에 집중한다. <머니S>는 2016년을 마무리하며 ‘광장’을 돌아봤다. 촛불정국뿐 아니라 일상에서 광장이 삶에 어떻게 기능했는지 살펴봤다. 세계사의 중심이 됐던 각국의 ‘광장’도 되짚어봤다. 이를 통해 광장이 가지는 경제·정치·사회적 의미를 재조명했다.

지난 10월28일 퇴근길, 청계광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시민단체가 연대한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기자는 국정농단 사태에 분개하는 마음에 잠시 서서 구경하다 이내 저녁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광화문광장. /사진=임한별 기자

다음날인 29일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청계광장에서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촛불집회’를 열었다. 촛불 물결의 첫 시작이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5만명이 모였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지난달 12일 열린 3차 집회에는 100만명이 넘는 인파가 참여했고 지난 3일 6차 집회에는 232만명이 전국의 광장들을 메웠다.
이어 지난 9일 국회에서 234표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이후 퇴진행동 측은 “광장의 위대한 촛불이 이룬 성과”라고 평가했다. 시민사회와 정치권, 언론의 반응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퇴진행동 측은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박 대통령 퇴진이 확정될 때까지 촛불집회를 계속 열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12일 서울 청계광장 연등 행사. /사진=뉴스1 최현규 기자

◆2016 광장의 목소리… 외침의 공간
국내 수많은 언론사가 광화문 일대에 모여있다. <머니S> 사무실도 청계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청계천변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 공간에서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년간 광화문-청계-서울(시청 앞)광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국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거쳐가는 관광지이자 많은 샐러리맨의 주생활공간이다. 청계천변엔 관광객의 셔터소리가 가득하고 점심시간이면 직장인들이 식당 앞에 길게 줄을 선다.

그러나 이 광장은 직장인과 관광객만의 것이 아니다. 할 말이 있는 사람에겐 ‘외침의 공간’이다.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억울한 사람들이 대중에게 주장을 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올해 광화문광장을 가장 오랜 기간 지킨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이다. 2014년 세워진 세월호 천막에서 이들은 세월호특별법 개정과 특검 도입 등을 요구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지난 8월24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면 단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황기선 기자

사회적 소수자들은 광장에서 소신을 밝힌다. 지난 4월 광화문광장에 모인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정한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은폐시킨다는 것. 6월엔 서울광장에서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제17회 퀴어문화축제’에는 6만여명의 시민이 모여 성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고 이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비판했다.
한편으로 이 광장은 ‘축제의 공간’이기도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매주 이어진 다양한 행사들은 시민들의 주말 발길을 끌어모았다. 예술작품은 미술관을 나와 광장에 설치됐고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예술을 향유할수 있었다. 맛있는 먹거리와 함께 계절의 변화를 즐기는 가족의 공간이자 바자회 등이 열리는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전문가들은 광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사회구성원 간의 가치와 기억의 ‘공유’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성기문 한국교통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동체가 해체되는 현대사회에서 광장이란 공간은 세대간의 집단적 기억과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를 통해 공유된 가치가 도시 곳곳에 스며들고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17회 동성애 퀴어축제’. /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정부 통제에서 시민의 광장 되기까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의 압도적 국회 가결을 이끌어낸 시민들의 광장. 하지만 이 광장이 온전히 시민의 것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정부는 도심 집회를 규제했다. 정부는 ‘광장 통제’를 통해 민감한 집회들을 ‘불법’으로 정의하고 통제했다. 당시 서울 도심의 광장에서 집회를 열려면 장소사용허가를 받아야 했다. 정부는 민감한 집회가 예정되면 이를 불허하고 경찰을 통해 차벽으로 광장을 둘러싸는 등 제재를 가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광장’이라는 공간의 통제에 의해 억압됐던 것이다.

서울광장에서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서울광장조례 개정이 공포되면서다.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바꾼 이 조례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의회 의장 직권으로 공포됐다. 신고제 전환 이후 서울광장에서는 문화행사는 물론 다양한 집회와 시위가 열렸다. 서울시에 따르면 조례 개정 전 1년간 144건이던 행사(집회 포함) 건수는 개정 1년 후인 2011년 179건, 2012년 195건으로 매년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이 조치가 현재 촛불시위를 ‘평화시위’로 유지되게 한 배경이 됐다고 말한다. 집회 이전에 신고만 하면 경찰 또한 안전에 위해가 가지 않는 이상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화문광장은 아직도 허가제로 운영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광화문광장 세월호 유족들의 천막농성마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서울 광화문광장 7차 촛불집회.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시의회는 2012년 광화문광장조례를 개정해 역시 신고제로 전환을 시도했으나 부결됐다. 집회와시위에관련한법률(집시법) 상 외교기관이 100m 이내에 있을 경우 집회에 허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광화문광장 주변에는 미국대사관이 있다. 많은 집회가 커다란 광화문광장이 아닌 주변 청계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이유다.
다만 집시법 11조에는 대사관 자체가 시위 대상이 아닐 경우나 휴일에는 상관이 없다고 명시돼 주말에 이뤄지는 촛불집회가 가능했다.


나아가 촛불집회 주최 측은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집회를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허가받았다. 광화문광장 홈페이지를 보면 촛불집회가 열리는 토요일 행사일정으로 국민주권 문화제, 나라걱정 문화제, ‘국민이 주인이다’ 문화제, 송년맞이 국민문화제 등의 이름으로 허가가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는 도심광장을 ‘관의 것’이 아닌 ‘시민의 것’으로 유지하기 위해 광장 운영의 원칙을 세웠다. 서울시는 2009년 광화문광장 조성 이래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광장위)를 통해 광장운영 전반을 결정한다. 9명으로 이뤄지는 광장위는 서울시 행정국장이 당연직으로 임명되고 학계 3명, 시민단체 3명, 시의원 2명이 위촉된다. 광장위 측은 “안전을 해치거나 일정이 겹치지 않는다면 시민 누구에게나 광장을 열어놓는다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규제가 아닌 조율을 통해 광장이 시민의 공론장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설명이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