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보행사고의 약 60%가 불법 주정차로 발생한다.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단지에서는 불법주차한 차량 탓에 3세 아이가 택시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송파구에서도 불법주차된 차 때문에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승용차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K군이 치여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불법 주정차 차량은 아파트단지 내 소방차 진입도 어렵게 만든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고층 아파트단지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불법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제때 진입하지 못해 불이 크게 번졌다. 경기도 시흥시의 13층짜리 아파트 화재도 신고를 받고 소방차가 6분 만에 출동했지만 불법주차 차량이 길을 막아 구조활동이 늦어져 일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다세대 밀집 주택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단속 비웃는 주·정차 위반자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법과 질서를 어기면 비난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사람들은 세월호 침몰사고의 근본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당신 자식이면 그렇게 했겠느냐”며 분노한다. 마찬가지로 불법주차하는 사람에게 “당신 자식이 사고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하냐”고 묻고 싶다.
본인이 한 건 ‘작은 불법’이고 다른 사람은 ‘큰 불법’이라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작은 사고가 많이 터지다 보면 큰 사고가 나듯이 작은 불법에 너그러울 때 큰 불법이 일어난다. 내게는 작은 불법이었지만 그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법질서 순위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5위로 하위권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운전자 10명 중 8명은 불법주차 경험이 있으며 동시에 불법주차로 피해를 본 적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서울연구원이 불법 주정차 경험이 있는 시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0%가 ‘주차요금이 비싸거나 주차에 쓰이는 돈이 아까워서’ 불법주차를 한다고 답했다. 또 불법 주정차 목적은 업무 및 영업이 37.5%로 가장 많았으며 ▲거주지 방문 25.3% ▲쇼핑 17.0% ▲친교(식사 등) 16.8% 순으로 나타났다. 불법 주정차 장소는 이면도로 등 4차로 미만의 도로가 79.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불법주차 차량은 화재 시 소방차 진입을 막고 보행자 안전을 침해하며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또 도로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고 교통혼잡을 야기해 사회적 경제손실을 발생시킨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불법주차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쓴다. 주로 단속인력 운용, 단속차량 구입과 유지, 주차단속용 CCTV 구입, 전기료 및 통신료 등에 사용한다. 서울시 불법주차 단속예산은 100억원이 넘는다.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서울시 주차단속 건수는 5000만건, 부과된 과태료는 2조1000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법 주정차단속 건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의 불법 주정차단속 건수는 2015년 294만9895건으로 2011년(266만2479건)보다 10%가량 늘었다. 최근 들어서는 관광객 증가로 대형 관광버스의 불법주차도 종종 눈에 띈다. 서울에서 관광버스의 불법주차 단속과 적발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곳은 강변역 4번 출구, 동서울터미널 주차장, 사직동 주민센터, 서교가든 건너편, 낙원상가 순이다. 이 경우 여행사가 과태료를 대신 내는 사례가 많아 단속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주차 또는 불법정차를 한 차의 고용주에 부과되는 과태료는 승용차 기준 4만원으로 1995년 도로교통법 시행령 개정 이후 22년간 전혀 오르지 않았다. 과태료 통지서에 적힌 기간 내에 자진납부할 경우 20%를 감해주므로 3만2000원만 내면 해결된다.
또한 등록된 자동차(2000만대) 대비 주차장 수가 부족한 점도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공영주차장에 빈자리가 있어도 주변 도로에 불법주차한 차가 많은 점을 감안할 때 주차장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서울 도심의 주차요금은 시간당 6000~2만원이다. 따라서 몇시간 불법주차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 단속에 걸리더라도 3만2000원만 내면 아무 문제없으므로 오히려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선진국 대비 과태료 너무 낮아
과태료가 높으면 비용이 부담돼 불법주차를 안 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 주차금지를 어기면 10만~2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고 영국도 최소 10만원 이상 내야 한다. 오스트리아 빈에 사는 한 한국인은 주차위반 고지서를 받았으나 독일어를 잘 몰라 경찰서에 가지 않았다가 20만원 상당의 벌금을 여러번 내야 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불법주차로 견인되면 지갑에서 30만원이 나간다.
프랑스는 주차위반 과태료가 약 5만~18만원, 두바이는 15만~30만원이다. 프랑스인들은 지정된 장소가 아니면 주정차를 하지 않기 때문에 파리의 도로에 있는 차량의 10분의1은 주차할 곳을 찾아 움직이는 차라고 한다. 파리에 경차와 소형차가 중형차보다 많은 이유는 좁은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기 위해서다. 미국은 주차 미터기 앞에 주차했다가 제한시간을 넘기면 63달러짜리 티켓을 발급받고 2주의 납부기한을 넘기면 175달러로 할증된다. 장애인 전용구역에 주차해 티켓을 받으면 일반 주차위반요금의 10배가 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불법주차 시 벌점을 부과하지 않는데 일본은 장소별로 1~3점을 부과하고 7점이 되면 면허가 취소된다. 싱가포르는 불법주차 벌점이 3점이며 24점이 되면 면허가 취소된다. 단, 2년이 지나면 그간 받은 벌점은 소멸한다. 중국 상하이에서는 불법 주정차를 강력단속하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도로 총 길이의 5%에 해당하는 1200여km에 황색으로 주정차 금지라인을 긋고 위반 시 과태료에 덧붙여 벌점 3점을 부과한다.
불법주차 차량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국가도 있다. 미국에서는 화재 시 소화전 근처에 차량이 불법주차됐을 경우 소방활동을 위해 파손하도록 허용한다. 차량 주인에게 배상은 커녕 소방활동을 지연시킨 책임을 물어 벌금 수십만원을 부과한다.
일본인들은 차를 구입할 때 주차비를 세금이나 보험처럼 기본 유지비라고 여긴다. 외부에 주차할 때만이 아니라 아파트 등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도 한달에 20만~60만원의 주차비용을 낸다. 자동차를 사면 세금, 보험, 휘발유값, 수리비, 유료도로 통행료 등의 지출이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주차비는 아까워하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자동차가 많고 땅값이 비싼 곳에 사는 사람이 차량을 구입할 때는 주차비도 기꺼이 지불한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설합본호(제472호·제4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