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보600 출시행사에서 발언하는 이강수 중한자동차 대표.

지난해 4월 ‘2016 베이징모터쇼’(오토차이나 2016) 현장에서 업계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테슬라도 독일 유수의 완성차업체도 아니었다. 당시 만난 한국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차의 기술력에 놀라움을 표했다. 국내 완성차업계 한 임원은 “3~4년 전까지만 해도 ‘카피캣’에 불과했던 중국업체들이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다”며 “완성차 품질은 이미 국내 브랜드와 큰 차이가 없고 전기차 기술력은 오히려 뛰어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당시 모터쇼에 출시된 중국현지브랜드 자동차는 저가형 SUV에 집중했다. 2.0 가솔린엔진을 탑재한 중형SUV가 10만위안(한화 약 1800만원)이 안됐고 재원상 성능은 부족함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머지않아 중국업체들이 중국시장을 넘어 세계를 넘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 중국차의 공습 매섭다


중국업체의 공습은 생각보다 더 빨랐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산자동차가 한국시장에 첫번째 도전장을 내민 것. 베이징 모터쇼가 끝나고 불과 9개월만의 일이다.

중국 북기은상기차의 국내 독점 수입사인 중한자동차는 지난 18일 국내시장에 처음으로 ‘중국생산 승용차’를 내놨다. 중한차가 내놓은 첫 승용모델 ‘켄보 600’은 많은 사람이 예측했듯 SUV였다. 중국 5대 자동차 메이커 중 하나인 북경자동차그룹과 중공업기업 중경은상실업그룹이 합작해 만든 북기은상기차는 북경자동차의 수출 차량을 전문으로 생산한다.

최고의 강점은 역시 가격이다. 중한차는 싼타페·쏘렌토 급 크기의 켄보600을 1999만원이라는 전략적인 가격으로 출시했다. 북경자동차가 자체개발한 1.5터보엔진에 네덜란드 파워트레인 전문회사의 무단변속기(CVT)를 조합해 147마력의 최고출력과 21.9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몸집에 비해 출력이 낮다는 단점은 있지만 2000만원이 채 안되는 자동차에 오토파킹 시스템과 후방카메라, 크루즈컨트롤 등이 기본 적용된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추가 옵션을 원한다면 2099만원의 럭셔리트림을 선택하면 된다. 운전석·보조석 전자동시트에 제논헤드라이트, 사이드커튼에어백, 차선이탈경고시스템 등이 추가된다. 한국형 내비게이션(51만원)까지 추가한 ‘풀옵션’ 모델이 2150만원이다. 다만 선루프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국내에서 2150만원으로 구매할 수 있는 비슷한 옵션의 차량은 쌍용차의 티볼리나 현대차 아반떼 정도다. 풀옵션을 기준으로 하면 이들 차량이 켄보600보다 오히려 비싸다.

이강수 중한자동차 대표는 “중국시장의 관세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판매되는 S6(켄보 600의 중국명)와 비슷한 가격대에 켄보 600을 들여왔다”며 “소형SUV는 작고 중형SUV의 가격은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켄보 600이 당장 국내시장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전망이다. 우선 제조사로부터 물량 확보가 한정적이다. 중한차 측은 올해 켄보600의 판매 목표를 3000대 수준으로 잡았다.

넘어야 할 산은 더욱 높다. ‘샤오미’처럼 자동차시장에서도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막연한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는 ‘안전’이다. 자동차사고는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저가’보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 온라인 자동차게시판 등에는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불신이 가득하다. ‘세이프티존’은 찾아볼 수 없이 전손된 중국산자동차의 사진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이날 켄보 600 출시행사에서 중한차 측은 ‘안전성’을 가장 크게 강조했다. 중한자동차에 따르면 중국에서 판매된 켄보 600은 중국자동차안전도평가(C-NCAP)의 충돌시험에서 54.8점을 받아 별 5개의 등급을 획득했다. 북경현대차 투싼(55.4점)보다 낮은 수치지만 기아 K3(54.1점), 쏘렌토(52.8점)보다는 높다.

켄보 600 내부(위)와 엔진룸.

이 대표는 “켄보 600의 충돌안전성은 중국내 판매되는 국산차 브랜드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중국의 열악한 도로상황에서 4만여대의 S6가 안전하게 운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중한차의 적극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켄보600의 성공여부를 가를 가장 큰 요인은 여전히 ‘안전성’이다. 업계에서는 충분한 시일이 지나 다양한 검증사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디젤차가 우세한 우리나라 SUV시장에서 가솔린 1.5터보 모델만 출시한 것도 약점이다. 작은 엔진에 차체가 크다보니 연비도 낮다. 켄보600은 신연비 기준 9.7km/ℓ의 복합연비를 인증받았다. 최근 출시되는 가솔린엔진 기반 SUV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떨어지는 수치다. 중한차 측은 “유로6가 적용되는 우리나라의 디젤환경규제에 맞추려면 큰 비용상승이 수반돼 디젤은 들여오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 공습은 이제 시작

켄보600이 당장 시장에 불러올 변화는 크지 않겠지만 중국산 승용차가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한 이상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는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중한차는 당장 올해 연말 중국산 B세그먼트 SUV를 국내시장에 들여올 생각이다. 중형SUV보다 시장규모가 빠르게 성장하고 차량 선택요인에서 가격이 더 크게 작용하는 차급이다. 중한차가 들여올 B세그먼트 SUV는 국내에 출시되는 경차보다 조금 비싼 수준의 가격이 될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한다. 법인구매를 포함해 폭넓은 수요층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 거센 공습은 전기차시대가 본격화되며 시작될 전망이다. 지난해 베이징모터쇼에서 기자와 만난 최종식 쌍용차 사장은 중국업체의 전기차 기술에 주목했다. 그는 “BYD 등 중국현지업체들의 전기차 분야 기술력은 놀라울 정도”라며 “합작회사 중심이었던 중국의 자동차산업 정책이 중국 토종기업 지원으로 바뀌면서 기술 개발 속도가 점차 빨리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사진=우통버스 홈페이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판매하는 중국의 BYD(비야디)는 지난해 10월 한국에 법인을 설립했고 올해 15인승 전기버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영업에 나선다. BYD전기차 수입유통사업을 공식화한 이지웰페어는 이미 제주도 우도사랑협동조합에 20대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빠른 시일내에 e6 등 전기승용차도 도입될 전망이다.
상용차시장의 위협은 더욱 크다. 이미 선롱버스와 포톤자동차 등 몇몇 중국 자동차업체들이 한국에 진출해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여기에 최근 글로벌 1위 버스생산기업인 중국 우통(Yutong)버스의 국내시장 진출 소식도 전해졌다. 우통버스는 오는 8월 국내 인증을 마친 뒤 하반기 시판에 들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