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시내에는 ‘채우는’ 여행지 두곳이 있다.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은 감성 충만한 공방과 맛집들이 있어 몸과 마음이 배부르고, 박경리문학공원에서는 정서와 정신이 차오른다. 느긋하게 둘러보며 조금씩 젖어들기 좋은 곳이다.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  

원주에는 오래된 새 시장이 있다. 오래됐는데 새롭다는 건 무슨 소릴까. 1950년대 만들어진 전통시장인데 새로 태어나고 있어서다. 이름은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이다. 이름에 나와 있는 것처럼 미로 같은 골목시장이다. 그렇다고 골목길은 아니다. 보통 ‘시장’하면 넓게 개방된 공간을 생각하는데, 이곳은 1층도 아닌 2층에 골목길이 있다. 

이름이 복잡한 만큼 약간의 사연도 있다. 1992년 이곳에서 원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큰 화재가 있었다. 시장은 회생이 필요했다. 재건축을 하려 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며 기회를 놓쳤다. 겨우 명맥만 이어오던 옛 시장에 2013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예술로 연주하는 중앙시장’이라는 레지던시사업이 시작됐고 2015년에는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차츰 젊은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캔들, 캘리그라피, 컵, 도자기, 액세서리, 가죽 등을 만드는 공방과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곳도 생겼다. 공방, 작업실에서는 강좌도 열고 있어서 여행 길에 간단히 체험하는 프로그램부터 정규 수강까지 단계별로 배울 수 있다. 체험 대상도 어린이에서 성인까지 다양해 한번 왔다가는 관광시장이 아니라 주민들과 공생하며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커피를 직접 볶는 로스터리 카페와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도 있고 멕시칸 타코집이나 수제 청, 잼, 마카롱, 타르트 등 젊은 여행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먹거리도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조화로움이다. 청년 시장을 뚝 떼어 이질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기존의 상점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빈티지하고 소박한 느낌이 서로를 도와준다. 철학관이나 안마시술소가 칙칙하게 느껴지지 않고 옛날 찻집과 이발소도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젊은 맛집만 있는 게 아니라 정겹고 오래된 맛집도 있다. 칼국수, 만두, 보리밥, 해장국, 백반 등 간판만 봐도 내공이 느껴지는 식당들이 포진했다. 시장 중앙에는 라디오 스튜디오도 있어서 어르신 사장님과 젊은 사장들이 함께 어울려 프로그램을 만든다. 

미로시장은 말 그대로 미로여서 지도를 미리 보고 오는 게 좋다. 길을 잃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같은 곳만 뱅글뱅글 돌다 올 수도 있다. 지도를 먼저 보면 관심 있는 곳부터 둘러 볼 수 있으니 여행자의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체험거리도 많으니 미리 계획해서 나만의 기념품을 하나쯤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 

2층 미로시장과 함께 유명한 것은 1층 소고기 골목이다. 일찍부터 소고기 특수부위 전문점들이 들어서서 다양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우를 포식하고 싶다면 소고기 골목을 찾아보자. 

박경리선생 옛집.

◆박경리문학공원과 토지문화관

‘……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 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선생의 시 <옛날의 그 집>이다. 마지막 싯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선생 유고 시집의 제목이 됐다. 

적막뿐이었다는 집은 어떤 것일까. 원주 ‘박경리문학공원’에 가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1980년부터 1998년까지 살았고 소설 <토지>의 4, 5부를 집필했다. 원고지로만 3만매가 넘는다는 대하소설 <토지>가 완결된 곳이다. 그 작업이 얼마나 놀라웠으면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로 완성 시점을 기록해뒀다. 마치 출생 시간을 말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이 산고의 고통이라 하니, 선생은 25년을 산고했고 마침내 이곳에서 역작을 완성한 것이다. 

선생은 농부였다. 이곳에서 밭을 갈고 글을 썼으니 말 그대로 주경야독했다. 공원의 텃밭과 정원수는 원형이 보존됐다. 바위에는 선생의 동상과 선생이 사랑했던 고양이상이 있다. 이곳에는 선생의 옛집, 박경리 문학의집, 북카페가 있고 <토지>를 연상하게 하는 평사리마당, 용두레벌, 홍이동산으로 구성한 작은 공원이 있다. 

입구 쪽의 둥근 건물은 북카페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와서 책을 읽고 쉬어 가도록 꾸며졌다. 1층에는 박경리 선생 관련 서적을, 2층에는 최희응 선생님이 기증한 자료를 상설 전시했다. 상설 전시장의 자료들은 일제시대 교과서를 포함해 약 3000여점이다. 최희응 선생이 전국을 돌며 35년간 모은 희귀 자료로 나라 잃은 백성들이 어떤 수탈과 고통을 겪었는지를 자료를 통해 알리려는 뜻이 담겼다. 

‘박경리 문학의집’은 관람공간 4개층으로 이뤄졌다. 2층에서는 박경리 선생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의 삶의 흐름에 따라 선생이 쓰던 물건, 육필원고와 펜 등을 볼 수 있는데 낡은 호미와 장갑에서 ‘농부’였던 선생이 가깝게 느껴진다. 2층은 소설 <토지>가 주제다. 구성과 인물 관계도, 인상적인 장면들이 펼쳐져 있다. 내용에 맞춰 책을 그을리거나 꽃으로 예쁘게 장식하는 등 글자로 만들어진 책에 이미지를 준 것이 인상적이다. 4층은 <토지> 이외에 박경리 선생이 집필한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고 스터디룸이 마련돼 있다. 5층은 세미나실로 모임과 강연이 이뤄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박경리 선생의 옛집을 조망할 수 있다. 

박경리문학공원에서 차로 20분쯤 가면 ‘토지문화관’이 있다. 선생이 노후를 보낸 집이 있는 곳이다. 분위기는 문학의집과 대동소이하다. 인상적인 것은 선생이 사랑했던 ‘고양이문’이다. 선생은 인터뷰 사진에도 고양이가 등장할 정도로 고양이를 무척 사랑했던 ‘애묘인’이다. 한때 고양이를 20마리까지 돌보셨다는 선생의 집이니 애묘인들의 말로 ‘집사’ 생활을 한 집이다. 선생의 방에는 고양이 물건도 보이고, 여행할 때마다 고양이 물건을 사온다는 고백도 있다. 실제로 선생은 고양이와 관련된 소설과 시를 쓰기도 하고 강연에서 언급도 자주 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선생은 현관문 옆에 항상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작은 문을 만들어 뒀다. 

토지문화관은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인 김영주 선생이 운영하며 학술, 문화행사 연구와 함께 창작자 지원사업을 전개한다. 생전에 선생이 농사를 짓고 사람들을 먹이고 돌봤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창작실을 문인과 예술인에게 무료로 제공해 작년에는 국내 문인 45명, 예술인 22명과 러시아, 스페인, 프랑스 등 5개국 8인의 문인·예술인이 이곳에 머물렀다.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토크콘서트와 낭독콘서트 등도 비정기적으로 진행된다. 

토지문화관.

[여행 정보]

대중교통으로 여행지 가는 법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 버스 34, 51, 3, 5 번 등 승차 – 원일로 중앙시장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 검색어 ‘미로예술시장’  / 강원도 원주시 중앙시장길 6 
박경리문학공원: 검색어 ‘박경리문학공원’ / 강원도 원주시 토지길 1
토지문화관: 검색어 ‘토지문화관’ /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회촌길 79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
문의: 033-747-6082 
http://wjjamk2015.modoo.at/
제1공영주차장: 강원도 원주시 자유시장길 46
제2공영주차장: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23번지 
제3공영주차장: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 213-7  

박경리문학공원 
문의: 033-762-6843 
http://www.tojipark.com
관람해설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1월 1일, 설날, 추석, 매월 넷째주 월요일 휴관) 

토지문화관
문의: 033-762-1382
http://www.tojicul.or.kr

음식
어머니칼국수: 직접 손으로 빚은 만두와 칼국수로 어머니 손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연탄 난로에 끓인 따뜻한 보리차, 사골국 같이 깊은 맛이 나는 멸치육수, 면발은 야들야들하고 만두는 묵직한,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맛이다. 
팥죽 5000원 / 만두 5000원 / 칼만두 4000원 / 칼국수 3500원 
033-742-6989 /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 2층 나동 위치 

숙소
베니키아 비즈인 호텔: 원주 시내에 있는 한국관광공사가 인정한 호텔이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가까워 박경리문학공원, 미로예술 원주중앙시장 등을 여행하기 좋다. 
예약문의: 033-748-0100 / 강원도 원주시 만대로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