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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는 인류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여겨졌던 바둑에서 인간대표 이세돌이 무릎을 꿇었고 충격에 빠진 일부 사람들은 무력감과 우울증을 호소했다.
알파고 쇼크 이후 AI에 대한 관심은 열병처럼 번졌다. AI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IT시장 조사업체 IDC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AI시장 규모는 2016년 80억달러에서 2020년 47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최근 AI는 보다 다양한 분야로 손을 뻗치고 있다. ‘아론’, ‘딥드림’으로 대표되는 그림 그리는 AI는 물론 작곡하는 AI ‘플로우 머신’ 등 인간 고유의 활동으로 일컬어지던 분야로 거침없이 진출했다. 인간의 생사를 좌우하는 의학 분야도 그 중 하나다.


◆AI, 인간의 생명 손에 쥐다

미국 IBM과 MSK암센터가 공동 개발한 암 진단 및 치료 AI ‘왓슨포온콜로지’(이하 왓슨)는 의학 관련 AI 중 단연 독보적이다. IBM 클라우드에 기반한 왓슨은 빅데이터를 활용, 2만5000건의 환자 사례와 약 1500만 페이지 이상의 의료정보를 학습했다. 의사가 환자의 데이터와 ‘술을 얼마나 자주하는지’, ‘몇기의 암환자인지’ 등 15~20가지의 질문을 입력하면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한다.

지난해 9월 가천대 길병원에서 암 진단 및 치료에 왓슨 도입을 발표하면서 한국 의학계도 AI시대를 맞았다. 길병원 측은 매주 15명 내외의 환자들이 왓슨을 통해 진료받았으며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진단을 내린 의사와 왓슨의 치료법이 약간 달리 나오는 경우 환자들은 일말의 여지 없이 왓슨의 치료법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가천대 길병원이 지난해 9월 ‘왓슨포온콜로지’를 도입하면서 한국 의학계도 AI 시대를 맞았다. 사진은 왓슨포온콜로지를 사용해 진료하는 모습. /사진제공=가천대 길병원

지난 12월 대장암 3기로 복강경수술을 받은 A씨(61·남)는 왓슨의 치료법을 선택했다. A씨는 “인간인 의사가 학습하고 경험한 양보다 왓슨이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인간의 경우 주변 상황과 심리적인 영향으로 오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AI가 더 안정적인 진단을 내렸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립선암 3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인 B씨(63·남)도 AI의 손을 들었다. B씨는 “항암 치료에 사용하는 약물용량에 대해 의사와 왓슨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며 “적은 차이긴 하지만 항암제를 많이 사용하면 몸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아 적은 용량을 제시한 왓슨의 치료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왓슨의 진단이 정확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선택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닥터 AI, 아직 보조자일뿐

1950년 앨런 튜링에 의해 학문으로 태동된지 반세기만에 AI는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랐다. 왓슨의 진단 정확도는 90%에 가깝다. 오진율이 40~50%인 의사와 비교하면 놀랄 만큼 높은 정확도다.

논란은 다른 방향에서 제기된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스스로 학습하며 성장하는 AI의 위험성은 그간 SF영화 등의 창작물을 통해 널리 알려져왔다. 이 때문에 완벽한 AI일수록 인류에 위협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왓슨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왓슨은 인류의 취약점인 병(病)에 관해 학습한다. 윤리적 관점에서 인간의 생명을 AI에 맡겨도 괜찮은 지에 대한 찬반의견이 날선 대립을 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측은 왓슨을 자율주행차와 비교한다. 자율주행 중 교통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이 왓슨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왓슨의 진단 정확도는 100%가 아니다”라며 “아무리 정확한 판단을 내릴지라도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기계에 맡긴다는 것은 윤리에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인류의 병을 스스로 학습하는 왓슨의 특성을 감안하면 미래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반면 왓슨에게 진단을 맡겨도 문제없다는 측은 “왓슨이 100%는 아닐지라도 인간보다 확연히 효과적인 진단을 내리는 것이 사실”이라며 “AI가 번역, 작곡, 그림과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처럼 의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병을 다루는 문제에 관해서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일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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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왓슨을 발전된 의학교과서 개념으로 본다. 왓슨의 진단은 최종 결정권자인 의사와 환자의 ‘보조자 역할’이라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평소 의사들이 진단과 처방을 내릴 때 관련 서적과 논문 등을 참고하는 것과 같은 성격으로 봐야 한다”며 “의료법 상 왓슨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오진이 발생했을 경우도 책임소재는 왓슨이 아닌 의사에게 있다는 의미다.
한편 여기에 또 다른 입장도 존재한다. 아직 우리가 AI 윤리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한 AI 전문가는 “AI의 윤리적인 책임은 그것을 만들 능력을 가진 국가들이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라며 “우리가 합의를 도출해낸다 해도 흐름에 변화를 줄 수 없다. 지금은 윤리를 논하기보다 개발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 그래야 윤리를 논할 자격이 생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