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거대기업 도시바가 원전사업 실패로 인한 수조원대 손실을 처리하기 위해 ‘알짜’ 반도체부문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반도체업계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 2위인 도시바 반도체부문을 인수한다면 단박에 업계 수위로 뛰어오를 수 있어서다. SK하이닉스, 웨스턴디지털(WD), 마이크론, 훙하이정밀(폭스콘), TSMC, 메이디, 칭화유니그룹,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쟁쟁한 기업들이 인수자로 거론된다.
지난해 12월27일 도시바는 미국 원전사업에서 수조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손실은 자회사 웨스팅하우스(WH)가 2015년 말 인수한 스톤&웹스터에서 발생했다. 스톤&웹스터는 WH가 건설 중인 원전 4기의 토목건설공사를 하청받은 기업이다. 문제는 이 회사의 자산평가 과정에서 거액의 손실이 감춰졌다가 뒤늦게 드러났다는 것.
도시바 측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원전관련 손실규모는 무려 7125억엔(약 7조16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가 자본보다 1912억엔(약 1조9200억원) 많아 도시바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달 말까지 부채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도쿄증시 1부에서 2부로 강등이 유력하다.
◆반도체 매각, 20%에서 100%까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도시바 경영진이 내놓은 해법은 그룹의 최대 수익원인 반도체부문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 마련이었다. 반도체부문을 분사해 신회사 ‘도시바메모리’(가칭)를 설립한 후 경영권은 유지하면서 지분 19.9%만 팔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주거래은행 등의 압박이 거세지자 도시바는 지분 50% 이상을 팔겠다며 입장을 바꿨고 급기야 100%를 매각하고 경영권도 넘길 수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인수전의 양상도 달라졌다. SK하이닉스, WD, 마이크론 등 낸드플래시분야 경쟁사들과 투자펀드 베인캐피탈 등만 인수 의향을 내비치던 초반과 달리 훙하이정밀, TSMC, 메이디, 칭화유니그룹 등 대만·중국 기업들이 강력한 인수 의지를 드러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거대 IT기업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전 구도다.
도시바 측이 평가한 반도체부문의 지분가치는 20% 약 3조원, 50% 약 10조원, 100% 약 25조원이다. 25조원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 금액이다. 도시바는 오는 30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반도체부문의 분사를 결의하고, 다음달 1일 분사시킬 예정이다. 반도체부문 지분매각과 관련한 우선협상 대상자는 6월에 선정할 예정이며 당국의 반독점 조사 등 승인절차를 거친 후 내년 3월 말까지 매각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도시바 측이 평가한 반도체부문의 지분가치는 20% 약 3조원, 50% 약 10조원, 100% 약 25조원이다. 25조원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 금액이다. 도시바는 오는 30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반도체부문의 분사를 결의하고, 다음달 1일 분사시킬 예정이다. 반도체부문 지분매각과 관련한 우선협상 대상자는 6월에 선정할 예정이며 당국의 반독점 조사 등 승인절차를 거친 후 내년 3월 말까지 매각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대만·중국, 인수 의지 강하지만…
가장 강력하게 인수를 원하는 기업은 단연 대만의 훙하이정밀이다. 궈 타이밍 훙하이그룹 회장은 지난 1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디스플레이공장 착공식에서 “반드시 (도시바 반도체부문) 입찰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훙하이는 이미 일본 IT기업 ‘샤프’를 인수한 전력이 있다.
최근 일본 및 대만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훙하이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기업인 TSMC와 컨소시엄을 결성해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훙하이와 TSMC의 현금성자산은 각기 13조원, 14조원으로 단독 입찰은 무리지만 컨소시엄을 결성하면 충분히 인수가 가능해진다.
중국 메이디그룹도 도시바 반도체부문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도시바의 가전사업을 약 5000억원에 인수한 바 있다. 최근 메이디그룹의 지주사 메이디홀딩스의 위안리췬 부총재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시바 반도체부문 출자 의욕을 강하게 드러냈다.
중국정부를 등에 업은 반도체시장의 큰손 칭화유니그룹도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된다. 이 회사는 최근 신규 반도체공장 건립에 84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막강한 자금력을 과시했다.
반면 SK하이닉스의 인수전 참여는 원점에서 재검토되는 분위기다. 원래 SK하이닉스는 올 초 도시바 반도체부문 지분 20% 인수를 통해 경영권 확보가 아닌 연구개발(R&D) 협력 및 도시바가 보유한 지적재산권(IP)에 대한 접근을 노렸다. 하지만 도시바가 말을 바꾸면서 매각가가 급증해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SK하이닉스가 조달 가능한 현금성자산은 4조원 내외라 단독 인수는 무리다. 그 이상의 자금을 마련하려면 컨소시엄을 결성하거나 재무적투자자(FI)를 물색해야 하는데 이 경우 리스크에 비해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게 문제다.
반면 SK하이닉스의 인수전 참여는 원점에서 재검토되는 분위기다. 원래 SK하이닉스는 올 초 도시바 반도체부문 지분 20% 인수를 통해 경영권 확보가 아닌 연구개발(R&D) 협력 및 도시바가 보유한 지적재산권(IP)에 대한 접근을 노렸다. 하지만 도시바가 말을 바꾸면서 매각가가 급증해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SK하이닉스가 조달 가능한 현금성자산은 4조원 내외라 단독 인수는 무리다. 그 이상의 자금을 마련하려면 컨소시엄을 결성하거나 재무적투자자(FI)를 물색해야 하는데 이 경우 리스크에 비해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일본정부 “미국에 넘기고 싶다”
대만과 중국기업들이 ‘닭 쫓던 개’가 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본정부와 업계가 가진 중국·대만·한국에 대한 뿌리깊은 경계심리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 경제산업성의 한 간부는 “샤프는 대만에 넘겼지만 도시바는 대만, 중국기업보다는 애플 등 미국기업에 넘기고 싶다”며 아시아 경쟁국을 가급적 피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일본 경제계 역시 비슷한 입장이지만 미국기업들이 입찰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낮다. 자금력이 충분한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인수 시너지가 크지 않고, WD, 마이크론 등이 인수하기엔 매물의 덩치가 너무 크다.
국내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 논리를 배제한다면 중국과 대만기업이 인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일본정부는 유일한 반도체기업을 중화권에 넘기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자국 내에서 지원을 통해 되살리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런 상황이 우리에겐 나쁠 게 없는데 과거 JDI(재팬디스플레이)처럼 국부를 소진하면서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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