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은 가난한 노후의 공포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다. <머니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연중기획 ‘노후빈곤, 길을 찾다’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 세번째로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문제점을 조명하고 앞으로 닥쳐올 고령화사회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봤다.<편집자주>

#1. 직장인 이모씨는 1%까지 떨어진 퇴직연금 수익률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은퇴 후 퇴직연금으로 편의점을 창업하려 했으나 예상보다 수령액이 적어서다. 그는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할지 고민이다. 

#2. 은퇴자 김모씨는 지난해 퇴직연금을 일시수령해 아파트를 구입했다. 아파트값이 오르면 시세차익에 따라 노후소득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부동산시장 침체로 매매가격이 떨어져 불안하다.


직장인의 노후자금인 퇴직연금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퇴직연금은 2005년 도입 후 지난해 말 기준 사업자 50개, 운용금액 147조원 규모로 성장했으나 1%대로 떨어진 수익률, 부실한 상품구조로 노후생활을 위한 연금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장 심각한 건 수익률이다. 최근 8년간 평균 연간수익률은 3.63%, 5년간 수익률은 2.83%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1.58%까지 내려갔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같은 기간 은행의 평균 수신금리가 1.56%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상품으로 매력이 크게 떨어진다. 여기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제 수익률은 사실상 마이너스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돼 많은 직장인의 직업은퇴가 소득은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은퇴자들이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 퇴직연금을 적극 활용하지 않으면 많은 은퇴자가 노후빈곤을 겪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점쳐진다.


◆DB형 원금보장에 쏠려… 수수료 비교해야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오랫동안 저금리가 이어진 영향이 크다. 가입자들이 퇴직금을 원금보장 위주로 굴린 탓에 줄어든 이율만큼 수익률도 떨어졌다.

퇴직연금의 종류는 확정급여(DB)형, 확정기여형(DC)형,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가입액의 64%가 DB형인 원금보장상품에 투자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우리나라보다 30년 더 일찍 퇴직연금을 도입한 선진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퇴직연금의 상품구조, 운용수수료 기준을 가입자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입자가 퇴직연금을 굴려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공격적인 상품구성을 늘려야 한다는 것.

퇴직연금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미국은 퇴직연금 기대수익률이 5~8%에 달한다. 가입자가 퇴직금의 80% 이상을 채권이나 주식, 펀드 등 실적배당형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결과다. 호주도 가입자가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해 5년간 수익률이 9.5%로 국내보다 3배나 많다.

가입자들이 퇴직연금에 가입만 하고 은퇴하기 전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행태도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은 기업과 금융회사가 계약을 맺는 ‘계약형’으로 가입자가 직접 우수한 금융회사를 선택할 수 없고 운용에 적극 참여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가입자가 스스로 퇴직연금 수익을 관리하고 금융회사도 사후관리에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마련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글로벌컨설팅업체 머서코리아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입자 중 90%가 “자신이 가입한 퇴직연금이 어떤 것인지 안다”고 답했지만 70% 이상이 “운용상황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기업도 “퇴직연금의 사후관리가 필요하지만 무엇을 할지 모른다”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와 관련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금융회사가 아닌 별도의 수탁법인에 퇴직연금을 맡기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마련을 국회에서 추진 중”이라며 “수탁법인은 금융회사보다 운용수수료가 저렴하고 가입자가 상품운용에 적극 참여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퇴직연금 종합안내사이트 ‘파인’에서 퇴직연금 상품별 운용수수료, 펀드수수료 등을 계산해 총비용부담금(총 수수료)을 공개한다. 금융회사가 가져가는 퇴직연금 운용수수료를 줄이기 위해선 가입자 스스로 상품을 비교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금감원 연금금융실 관계자는 “퇴직연금 수익률과 수수료에 대한 불만이 제기돼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적정성 여부 등 전반적인 운영실태를 점검할 계획”이라며 “금융회사가 자발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하도록 퇴직연금 종합사이트에서 공시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연금퍼즐 현상, 수령방식 다양화해야
퇴직연금을 수령하는 방식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퇴직연금 가입자의 93%가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했다. 사실상 회사에서 퇴직금을 한번에 받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연금으로서의 기능이 무색해지는 ‘연금퍼즐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가입자들이 일시금 수령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파트 구입 등을 위한 목돈마련’(53.8%)이 가장 많았으며 ‘다양한 연금상품 부족’(17.9%), ‘낮은 연금액’(15.4%) 등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을 온전히 노후자금으로 활용하도록 많은 세제혜택을 부여해 연금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현재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으면 30% 세금감면 외에는 추가 세제혜택이 없다.

유럽의 복지국가인 네덜란드는 100%, 스위스는 80%가 연금으로 수령하고 호주 등은 부분연금형태인 소득인출형연금을 통해 퇴직급부를 연금으로 전환한다. 연금으로 전환 시 세제혜택이 늘어나 은퇴자들이 노후자금으로 퇴직연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미국도 50대부터 퇴직연금 세제혜택이 연간소득공제 한도를 벗어나도 추가 소득공제를 부여한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시금을 받은 근로자가 투자실패로 연금재원을 다 써버리면 국가 재정부담 등 고령화 리스크가 사회 전반에 커질 것”이라며 “퇴직연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 받을 때 세제혜택을 더 주고 연금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상품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