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출범한 현대중공업그룹이 15년 만에 다시 지배구조 개편을 앞뒀다. 지난달 27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계획이 통과되며 현대중공업은 조만간 현대로보틱스를 정점으로 하는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될 예정이다.

◆현대로보틱스 중심으로 새출발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오는 4월1일부터 존속회사인 현대중공업(조선부문)과 ▲현대로보틱스(로봇·투자사업부문)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등으로 그룹이 분할된다.


앞서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은 태양광사업을 담당하는 현대그린에너지와 통합서비스사업을 담당하는 현대글로벌서비스를 물적분할했다. 이번 인적분할까지 완료되면 그룹이 사업영역을 기준으로 6개사로 쪼개진다. 

이후에는 현대오일뱅크 지분(91.1%)과 자사주(13.4%)를 넘겨받는 현대로보틱스를 지주사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지주사는 상장사 지분 20% 이상, 비상장사 지분 4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왼쪽)과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사지=머니투데이DB

이 과정에서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66)의 그룹 지배력 강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될 전망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중공업의 지분 구조는 ▲정몽준 이사장 10.15% ▲현대미포조선 7.98% ▲아산사회복지재단 2.53% ▲아산나눔재단 0.65% ▲KCC 7.01% ▲자사주 13.37% 등으로 구성돼 대주주의 실질적 지분이 13.33%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조기대선국면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 3인방(문재인·안희정·이재명)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경제민주화 법안의 일환으로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된다면 정 이사장의 그룹 지배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여기에 아들 정기선 전무(35)로의 지분 승계까지 이뤄지면 지배력 약화는 더욱 심화된다. 정 전무의 현대중공업 지분은 617주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분사 후 현대로보틱스가 지주사로서 법적 요건을 갖추는 과정에서 정 이사장과 정 전무의 지주사 지분을 높이기 위한 주식스와프 등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현대중공업은 주력사업인 조선업황 부진으로 그룹 전체가 구조조정 중이므로 그룹 지배구조 전환도 사업부문의 구조조정과 연계시켜 사업 투명성 확보라는 명분과 실리를 얻으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할 후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 /표=하이투자증권
증권가에서는 정 이사장이 지주사 지배력을 높이면서 지주사 요건도 맞추기 위해 현대중공업 존속법인과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 현대건설기계에 가진 지분 10.15%를 매각하거나 지주사 지분과 교환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주주 일가 안정적 지배력 확보

이 과정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정 이사장은 40%대의 지주사 지분을 갖게 돼 안정적인 그룹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인적분할 후 ‘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로보틱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기 때문에 현대미포조선은 현대로보틱스 지분 7.98%를 팔아야 한다. 이 정도 물량의 지주사 주식이 한번에 장내에 쏟아지게 되면 주가가 급락할 우려가 있고 대주주 지배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정 이사장 일가가 일부 현대미포조선 지분을 매입하고 나머지는 별도의 백기사를 찾아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계 관계자는 “정 이사장의 지배력이 높아지면 아들 정기선 전무로의 승계 과정도 수월해질 것”이라며 “기업분할은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기업지배 투명성 확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