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증세 없는 복지’는 허상에 불과했다. 박근혜정부 4년을 평가한다면 ‘증세 넘친 정부’로 요약된다. 장미대선을 앞둔 차기 대선주자들은 박근혜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국민은 증세하더라도 적재적소에 세금이 쓰이길 원한다. 보다 효율적인 국가 가계부가 필요한 시점이다. <머니S>가 대선정국을 맞아 세금정책을 긴급 진단했다. 대선주자별 세금공약을 살펴보고 법인세와 서민세의 효과적 대안 등을 짚어봤다.<편집자주>
‘2016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과세대상 근로자 한사람이 낸 근로소득세는 평균 300만원을 경신했다. 1인당 근로소득세는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200만원을 돌파한 뒤 2년 만에 300만원대에 진입했다.
지난해 근로소득세 증가율은 14.6%로 임금인상률(4%)과 경제성장률(2.7%)의 3~6배에 달한다.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직장인들이 한숨짓는 이유다. 차기정부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사진=이미지투데이
◆13월의 ‘세금폭탄’ 된 연말정산
근로소득세가 늘어난 배경은 2014년 연말정산방식이 일부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영향이 컸다. 과세대상 소득을 정하기 전 전체 소득에서 법적공제액을 빼주는 대신 소득별로 다른 세율을 적용한 후 개개인의 산출세액에 따라 공제액을 빼는 방식이다.
세액공제전환에 따라 근로자의 공제혜택이 축소됐다. 정부와 정치권은 세법 개정을 통해 종합소득 1억원 또는 근로소득 1억2000만원 이상인 경우 개인연금 공제한도를 연간 400만원(퇴직연금 합산 7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줄였다. 10년 이상 장기저축성보험 비과세한도도 2억원에서 1억원으로 축소됐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올해까지 2년 더 연장하기로 했으나 일몰기한을 두고 찬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지난해 보육지원금도 감축했다.
세액공제의 경우 고소득자 세율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확대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소득이 훤히 드러나는 근로자의 세금만 쥐어짠다는 비판과 함께 근로소득세를 한푼도 안 낸 근로소득자가 전체의 절반 가까이 급증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은 면세자는 2015년 810만명으로 전체의 46.8%에 달했다. 반면 세금을 낸 근로자에게 더 많은 세 부담이 돌아간 탓에 과세자의 1인당 납부액은 늘어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과세형평을 높이고자 도입한 의료비·교육비 등의 세액공제전환이 저출산대책과 상반되게 다자녀·영유아자녀 가구의 세 부담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벌이로 두자녀를 키우는 회사원 김모씨는 “부양가족이 많아지고 연봉은 동결됐는데 연말정산 때 내는 세금은 계속 늘어나 정부가 세수입을 늘리려고 월급쟁이 주머니를 턴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 결과 직장인에게 연말정산은 ‘13월의 보너스’가 아닌 ‘공포의 세금폭탄’으로 변했다. 2015년 환급세액은 1인당 47만2700원인 반면 세금을 토해낸 근로자는 1인당 76만7400원을 빼앗겼다. 환급받은 근로자는 1140만4900명, 징수당한 근로자는 284만3500명이다. 급기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과한 ‘연말정산 파동’ 이후 정부가 정치권과 여론에 등 떠밀려 보완대책을 내놓았지만 세액공제혜택이 다시 확대되면 면세자가 더 증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며 딜레마에 빠졌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지난해 국회 공청회에서 “재원 확충을 위해 배당·이자 같은 금융소득세율을 인상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병욱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회복지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비 취약한 데 반해 일부 소득공제·세액공제가 특정계층에 집중된 것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근로소득세의 또 다른 문제는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법인세 등 다른 세목에 비해 증가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법인세수는 2012년 45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51조4000억원으로 12% 증가한 반면 근로소득세는 같은 기간 19조6000억원에서 29조1790억원으로 49%나 늘어났다. 올해도 근로소득세는 정부추산 30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2월8일 흡연자단체 ‘아이러브스모킹’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담뱃세 즉각 원상복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박지혜 기자
◆늘어난 서민세… 정부 불신 팽배
대표적인 서민세로 꼽히는 담뱃세와 주세 역시 인상돼 국민의 반발을 샀다. 박근혜정부는 2015년 1월 흡연율을 낮춘다는 명분으로 담뱃값을 2000원 인상했다. 담뱃세 인상으로 걷힌 세수는 2014년 7조원에서 지난해 12조4000억원으로 77% 급증했다. 같은해 국내 소주업계 1위 하이트진로는 소주 출고가를 3년 만에 5.62% 인상했다. 소주 출고가의 절반 이상이 주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이다.
조기대선에 도전하는 후보들은 앞다퉈 담뱃세 관련 공약을 내놓았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난 세금을 어린이 병원비와 흡연관련 질병치료 등에 사용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심 후보는 “당초 정부는 담뱃값을 인상해 흡연율을 낮추겠다고 밝혔지만 그 취지는 사라지고 국가재정만 늘린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들도 대선공약으로 담뱃세 인하를 검토 중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담뱃값을 한꺼번에 인상한 건 횡포”라며 “서민에게 부담을 주는 간접세를 내리고 직접세를 적절히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박근혜정부의 담뱃세 인상은 흡연율을 낮추는 효과가 아닌 ‘서민증세’를 위한 꼼수였다”며 담뱃세 인상 철회의 뜻을 밝혔다.
한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14년 6월 발간한 ‘담배 과세의 효과와 재정’ 보고서에서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할 경우 소비량이 34%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담배 판매량은 2014년 43억6000만갑에서 가격 인상 첫해인 2015년 33억3000만갑으로 주춤했다가 지난해 36억6000만갑으로 다시 증가했다.
◆OECD, 한국 면세자수 축소 등 해법 제시
올해도 정부 세수입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3월10일 기획재정부의 ‘재정동향 3월호’에 따르면 지난 1월 국세수입은 33조9000억원으로 전년대비 12.6% 증가했다. 경상성장률은 4%대에 불과한데 세수는 3배 넘게 늘어난 것. 깊은 불황에 사적연금·신용카드 공제혜택과 보육예산 등이 줄어드는 상황에도 정부만 ‘나홀로 호황’을 누렸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늘어난 재정으로 세금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한 조세전문가는 “경기침체에도 정부 세수는 증가한 상태”라며 “늘어난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회복하고 실업급여 지원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과세형평을 위해서는 현재의 왜곡된 조세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OECD는 한국의 면세자 수를 줄일 것을 권했다. OECD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사회복지 지출재원이 증가한 만큼 과세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면세자비율은 OECD 평균보다 최대 3배나 많다. 주요 선진국의 면세자비율은 일본 15.4%, 독일 16.4%, 미국 35.8% 등이다.
고액체납자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월급쟁이들은 세금을 꼼짝없이 원천징수 당하는 처지인 반면 고액체납자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5년 출국금지된 5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는 1518명으로 1년 새 50.7% 급증했다. 출국금지상태인 전체 고액체납자는 3596명으로 전년대비 21.2% 증가했다.
[Tip] 주민세·재산세 할인받는 법
대다수의 지방자치단체는 공과금을 자동이체하거나 이메일·문자메시지로 고지서를 신청하면 할인혜택을 준다. 세금절약뿐 아니라 맞벌이나 출장 등으로 잊어버리기 쉬운 경우 이용하면 편리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용하지 않는다.
공과금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최대 5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주민세·재산세·취득세·자동차세 등을 은행 자동이체로 납부하면 고지서 1장당 150원의 세액을 공제해준다. 또 고지서를 이메일·문자메시지로 신청하면 고지서 1장당 350원을 추가 할인받을 수 있다. 다만 지방세법에 따라 별장·골프장·고급주택·오락장 등을 구입한 데 따른 재산세는 감면대상에서 제외된다. 1년치 자동차세를 한꺼번에 납부하면 10%를 할인받는 서비스도 있다. 서울시 세금납부 앱이나 인터넷 이택스·위택스 사이트에서 지방세 할인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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