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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남모씨(여·40)는 3년 전 어머니 김모씨(77)가 가벼운 건망증을 보여 치매보험에 가입했다. 이후 남씨는 어머니가 나날이 기억력이 쇠퇴하고 평소 행동이나 말투에도 변화가 생기는 등 치매증상을 보여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거절당했다. 보험사로부터 남씨는 김씨의 치매증상이 ‘경증’ 치매에 해당돼 보험금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국내 치매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치매보험금 타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치매환자는 전체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약 10%인 65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치매환자가 증가하면서 관련 보험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4년 6월 기준 치매보험 보유계약 건수는 570만8079건이었다. 연평균 50만건씩 가입하는 셈이다.
문제는 지급된 보험금이 전체 보험금의 1%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12년간(2002~2014년) 보험사가 거둔 보험료는 5조5783억원이었지만 보험금 지급건수는 5657건, 지급보험금은 593억원에 그쳤다.
◆경증 보장 상품, 103개 중 5개 불과
이처럼 보험금 지급률이 낮은 이유는 보험사들이 손해율 상승을 이유로 대부분 약관에 '중증 치매'만을 보장하고 있어서다.
치매는 확진 시 CDR(임상치매평가척도)등급으로 구분된다. 이 등급에 따라 치매는 경증과 중증으로 나뉜다. 비교적 가벼운 치매 증상은 1~2점을 받아 경증치매로 구분되며 중증은 3점, 매우 심한 중증은 4점, 말기 치매는 5점 등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치매보험 상품 중 치매 증상이 경미한 경증치매를 보장하는 상품은 총 103개 상품 가운데 5개에 불과하다. 판매사도 고작 4개 보험사(동부생명·라이나생명·신한생명·하나생명)에 그쳤다.
5개 상품을 제외한 상품들은 치매에 걸려도 CDR 3점(중증) 이상을 받아야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또 보험사들은 지난해 4월만 해도 치매보험을 80세까지만 보장하는 상품으로 판매했다. 다수 보험사들이 손해율 악화를 이유로 치매보험의 보장기간을 중증치매 발생가능성이 높은 80세 이후에는 보장받을 수 없게 설계한 것.
하지만 치매는 연령대가 증가할수록 발병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65~74세 치매 발병률은 노인 인구 1000명당 12.5명이었지만 85세 이상에서는 87.2명으로 7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5월 치매보험의 보장기간을 80세 이후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발표, 보험사에 상품별로 만기연령을 100세까지 확대하라는 권고조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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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설계사가 계약 당시 치매보장범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했는지도 미지수다. 소비자원은 최근 3년(2013년 1월∼2016년 6월)동안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치매보험 관련 소비자 불만 99건 중 치매보장 범위 등 상품 설명이 부족하거나 계약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등 불완전판매로 인한 불만이 45건(45.5%)으로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보험가입자들은 일단 치매보험 가입 권유를 받으면 경증이나 중증에 대한 개념인식이 낮아 치매에 걸리면 대부분 보험금을 탈 수 있다고 여긴다"며 "설계사들이 경증치매의 경우 보험금을 탈 수 없다는 설명을 생략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증 치매 진단의 높은 벽
보험사들이 치매보험을 경증까지 확대하지 않는 이유는 손해율 상승 우려 때문이다. 현재 국내 치매환자의 85%는 중증이 아닌 전단계인 경증치매 상태로 분류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칫 80% 이상의 치매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는 것이다.
경증과 중증을 나누는 CDR등급이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CDR등급은 기억력과 지남력, 문제해결능력, 사회활동 등 종합적인 면을 평가해 분류된다. 기억력 감퇴와 함께 일상적인 생활에 불편함을 겪을 정도(전화기 사용불가 및 문 단속)의 장애는 경증치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보험금 지급기준인 중증치매는 단순 기억력 감퇴수준을 넘어 스스로 대소변을 보지 못하거나 보호자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등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로 기준이 높은 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치매가 중증상태에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면 보험가입률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보험사들이 경증과 중증별로 세부 지급기준을 다시 세워 보다 현실화된 치매보험 상품 출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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