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이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김 사장은 자살보험금 미지급과 관련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아 연임이 불투명했으나 전액 지급을 약속한 뒤 제재수위가 낮아지며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3년이다.


고비는 넘겼지만 김 사장 앞에는 굵직한 이슈가 많이 놓여있다. 삼성생명 지주사 전환을 추진해야 하고 신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등으로 급변하는 보험시장에서 안정적인 자본확충 및 신시장 개척에도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그가 올해 자살보험금 징계를 딛고 ‘맏형 리더십’을 선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지주사 전환·IFRS17 대비 앞둔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을 고려 중인 삼성생명은 이번 김 사장의 연임으로 한숨 돌린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 금융계열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온 금융일류화추진팀이 삼성생명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계열사 간 경영전략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진 것. 그 중심에 있는 삼성생명의 수장이 연임돼 지주사 전환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생명·화재 등 삼성금융계열사의 총자산(3월 말 기준)은 390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그룹 총자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이다. 또 삼성생명은 그동안 꾸준히 금융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며 지주사 전환요건을 충족해왔다. 현재 삼성화재(15%)와 삼성증권(30%)·삼성카드(72%) 등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생명은 사실상 자회사들을 관리하는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김 사장은 이제 연임 리스크에서 벗어나 금융계열사 맏형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미뤄왔던 삼성생명의 조직개편도 그의 연임으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 지주사 전환 행보의 걸림돌은 불안정한 그룹 분위기다.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상태여서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가 지연되는 상황이다. 만약 이 부회장이 실형이라도 받게 되면 대주주 결격사유가 돼 지주사 전환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김 사장이 의욕적으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고 싶어도 큰 흐름에서 그룹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아 당장 실행에 나서기도 어렵다. 삼성생명 관계자도 “현재 금융지주사 전환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안이 나온 것은 없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전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사진제공=삼성생명

IFRS17 도입을 앞두고 김 사장의 자본확충전략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관심사다. 일단 김 사장은 판매상품 변화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는 지난달 24일 정기주총에서 “올해는 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 도입으로 보험산업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할 것”이라며 “판매상품의 포트폴리오를 균형 있게 확대하고 원가 혁신을 꾸준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IFRS17 도입에 앞서 보험사들은 보장성보험 판매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저축성보험의 보험료는 모두 채무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삼성생명은 다른 보험사에 비해 다소 느긋한 편이다. 김 사장이 부임 초기부터 보장성보험 강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부임 후 2014년 1분기 33% 수준이던 보장성상품(연환산보험료 기준) 판매비중을 1년 만에 51.4%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김 사장은 보장성보험 판매의 핵심인 설계사 확충에도 적극 나섰다. 보장성보험은 약관이 복잡하고 인맥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보험설계사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최근 독립법인대리점(GA)으로 이탈하는 설계사를 붙잡는 것도 김 사장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사’ 역량 업고 ‘보험맨’ 우뚝 서다

1982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김창수 사장은 30여년간 ‘상사맨’으로 재직, 전형적인 ‘금융맨’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2012년 삼성물산 상사부문 부사장을 맡던 그가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될 당시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그는 삼성물산에서의 상사업무 경력을 토대로 삼성화재 사장 재직 시절 해외성과에 크게 기여하며 금융역량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2005년 설립된 삼성화재의 중국법인은 2012년 3월 영업수익이 1326억원에 불과했지만 김 사장 부임 후 중국 내 자동차책임보험 인허가를 따내는 등 2013년 12월 영업이익을 2921억원으로 끌어올렸다. 그가 그해 CEO 성과평가에서 손해보험업계 최고점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어 부임한 삼성생명에서도 호실적이 이어졌다. 그동안 삼성생명이 달성하지 못했던 당기순이익 1조원시대를 활짝 열기도 했다. 

이처럼 성공시대를 걸어온 김 사장에게 올해는 위기이자 기회다. 삼성생명은 김 사장의 부임 후 당기순이익이 2014년 1조3370억원, 2015년 1조2112억원, 지난해 2조1300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삼성카드 등의 지분매입으로 발생한 1회성 이익(1조1924억원)을 제외하면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결국 올해 김 사장은 다소 부진했던 손익구조를 견실화해야 하는 중요과제를 떠안았다. 하지만 자살보험금 관련 제재조치로 앞으로 1년간 금융당국의 허가가 필요한 신사업 진출이 어렵게 된 점은 김 사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 그가 평소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상사맨으로서 현장에서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의 노하우가 투영된 말이다. 

창립 60주년을 맞은 삼성생명은 올해를 시작으로 ‘100년 삼성생명’으로 나아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김 사장이 6년간 선보여온 ‘보험맨’으로서의 리더십이 올해 더욱 필요한 이유다. 김 사장이 올해 당면한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프로필
▲1955년 출생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1982년 삼성물산 수입관리과 입사 ▲1993년 삼성물산 동남아 본사 경영지원팀 담당부장 ▲2003년 삼성에스원 특수사업기획실 실장 ▲2007년 삼성물산 상사부문 기계플랜트본부장 ▲2010년 삼성물산 상사부문 부사장 ▲2012년 삼성화재 대표이사 ▲2014년 삼성생명 대표이사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