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시작된 SUV 열풍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레저 수요의 증가로 인한 ‘메가 트렌드’라는 분석도 있고 자동차업계의 기술발전으로 승차감‧정숙성 등이 상향평준화되며 공간활용성이 우수한 SUV가 주목받는다는 견해도 있다.
두 시각은 모두 SUV의 인기가 장기화될 것이란 점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완성차업계의 신차 경쟁도 SUV에 집중되는 모양새다. 브랜드 별로 1~2개 차종에 불과하던 SUV의 종류가 늘어나는 추세다. 완성차업계는 소비자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함과 동시에 정체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SUV에 신차 개발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G4 렉스턴. /사진제공=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코나 티저 이미지. /사진제공=현대자동차
◆B세그먼트 SUV시장 각축… 현대차도 가세
지난 3년여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뜨거웠던 차급은 B세그먼트 SUV다. 국내에서 이 세그먼트를 주도하는 모델은 쌍용차의 티볼리와 한국지엠의 트랙스, 르노삼성의 QM3 등이다. 2013년 트랙스가 첫 출시될 당시 1만1998대에 불과했던 이 세그먼트의 판매량은 지난해 10만4936대로 늘었다. 불과 3년만에 775% 성장한 것. 특히 티볼리(티볼리 에어 포함)는 쌍용차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회사의 흑자전환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승차감과 정숙성 등의 ‘상향 평준화’ B세그먼트 SUV의 인기요인 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실 이 차급은 험로주행용 차량을 말하는 SUV의 개념과는 동떨어져 있다. 지상고가 그리 높지 않거니와 서스펜션이나 차체 등도 일반 세단에 가깝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심형유틸리티차량(CUV)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존 준중형 세단에 비해 연비와 주행성능, 정숙성 등에서 부족하지 않으면서 공간 활용성에서 우위에 있다는 게 이 차급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여기에 기존 세단과 차별화된 디자인이 더해지면서 사회초년생과 여성소비자에게까지 인기를 끌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 가운데 국내 자동차시장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현대차가 뜨거운 이 시장에 신차 ‘코나’를 내놓기로 하며 업계의 판도변화가 예상된다. 현대차는 해외에선 크레타(인도·브라질·러시아)나 ix25(중국)란 이름으로 소형 SUV를 판매했지만 국내에선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형 SUV가 특유의 공간 활용성으로 기존 중형세단 소비자까지 흡수하기 시작하며 출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현대차는 올 상반기 중 코나를 출시할 예정이며 울산 1공장에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존 소형SUV들이 공간 활용성과 디자인만을 강조한 반면 코나는 최고 수준의 동력성능과 안전성까지 갖춘 완성형 SUV로 개발할 방침”이라며 “코나를 통해 국내 SUV시장의 판도를 재편하고 나아가 세계 SUV시장까지 주도한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기아자동차 모하비. /사진제공=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티볼리. /사진제공=쌍용자동차
◆ 공유경제 시대, 소유할 차는?
올해는 소형뿐 아니라 대형 SUV의 각축전도 벌어질 전망이다. 티볼리를 통해 경영정상화에 한발 다가선 쌍용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G4렉스턴’이 불을 지핀다. 쌍용차가 42개월 동안 3800억원의 개발비용을 들여 만든 차다.
완성차업계가 대형SUV에 집중하는 이유는 소형SUV와 다르다. 지난 3월 서울모터쇼 프레스데이 현장을 찾은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그룹 회장은 “앞으로 자동차시장은 가성비 좋은 친환경차 중심 공유경제 자동차시장과 소유에 중점을 둔 프리미엄차시장으로 양분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을 기반으로 쌍용차는 프리미엄차시장을 노린다는 목표를 세우고 G4렉스턴을 개발했다. 티볼리는 가성비를 전담하며 앞으로 공유경제용 자동차로 집중하고 G4렉스턴은 개인의 ‘소유’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하지만 G4렉스턴에서 드러난 쌍용차의 프리미엄 전략은 외산 명품브랜드나 현대차의 고급브랜드 제네시스 등의 ‘럭셔리’와는 다른 개념으로 이해된다. 쌍용차의 프리미엄 전략은 ‘특화된 레저수요에 걸맞은 양산차’라고 이해하는 것이 알맞다. 현재 자동차시장에서 기아차의 모하비가 출시 이후 8년동안 단 한번의 풀체인지 없이 꾸준한 판매를 구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수요가 분명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실제 공개된 G4렉스턴은 외관부터 고급스러움보다는 단단함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다. 모노코크 방식의 차량이 대세인 현재 자동차업계에서 ‘프레임 바디’를 택한 점도 쌍용차의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쌍용차는 일상에서의 업무나 출퇴근 등의 수요는 대중교통과 카셰어링이 대체하고 G4렉스턴은 레저활동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준다는 청사진을 그린다.
이런 상황에서 쌍용차는 모순적인 개념일 수 있는 가성비와 프리미엄을 공존시켰다. 모하비에 버금가는 가치를 주면서도 가격대는 싼타페와 모하비의 중간 정도로 책정한 것. 현대‧기아차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가성비는 G4렉스턴 최대의 무기다. 맹진수 쌍용차 마케팅팀장은 “싼타페나 쏘렌토를 타던 사람들이 차량을 교체할 수요가 현재로선 모하비와 수입브랜드 뿐인데 이 수요를 상당히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2만대, 연간 3만대 판매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쌍용차의 가성비 프리미엄 전략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가 과시용 재화의 특성을 강하게 띤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성비와 프리미엄이란 가치를 공존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자칫 이도저도 아닌 모델로 기억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