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크라운해태제과 후원으로 만들어진 락음국악단은 국내 최초의 민간국악단이다. ‘즐겁고 행복한 음악 예술’이라는 뜻을 담은 ‘락음’이라는 이름도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직접 지었다. 민간기업에서 우리나라의 전통음악과 관련된 단체를 지원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들의 인연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업인이 잊혀져가는 한국의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김진성 락음국악단 예술감독을 만나 그 답을 물었다.

 

김진성 락음국악단 예술감독. /사진=임한별 기자

◆특별한 인연 그리고 진심

윤 회장과 김 감독의 특별한 인연은 1998년 시작됐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크라운제과가 부도를 맞은 뒤 골프를 그만두고 등산을 시작한 윤 회장은 산행 도중 듣게 된 아련한 피리 소리에 꽂혔다. 소리의 정체가 대금이라는 것을 안 윤 회장은 대금을 가르쳐줄 사람을 수소문하다 김 감독과 처음 만났다.
국악을 사랑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대금에 흠뻑 빠졌던 김 감독은 국립국악고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고 이후 34년을 대금과 함께했다. 국악고 졸업 후 한양대-한국예술종합학교-한양대에서 국악 관련 학사, 석사(전문사), 박사 과정을 차례로 마치고 1996년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인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에서 대금 파트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가 끝나갈 무렵 윤영달 회장을 만나 1년간 대금을 가르쳤고 이후에는 단소도 가르쳤어요. 국악에 매료된 윤 회장은 배움에서 끝나지 않고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4년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법고창신)는 의미를 담은 국악 축제 ‘창신제’도 만들었죠.”


이때부터 매년 1차례 열리는 창신제는 국내 최대 국악 축제로 자리 잡았다. 국악에 대한 관심이 컸던 윤 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07년 국악전문 단체인 락음국악단을 만들었다. 윤 회장의 결정에는 김 감독의 권유가 큰 영향을 끼쳤다.

“윤 회장에게 오페라, 뮤지컬, 연극 등은 다른 대기업에서 후원을 많이 하는데 상대적으로 전통음악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며 남들이 안하는 소외된 문화를 집중해서 지원하는 게 어떻겠냐고 건의했어요. 당시에는 별말씀이 없으시더니 6개월쯤 뒤 윤 회장이 ‘해보자’는 답을 주셨죠.”

이때부터 윤 회장은 문화 관련 사업에서 국악(음악), 조각(미술), 시(문학) 등 각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부문을 골라 지원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생한 락음국악단은 크라운해태제과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100만평 부지에 조성한 문화예술 테마파크 ‘아트밸리’에서 사무실과 연습실, 악기, 음향장비 등을 지원받아 12명의 단원으로 출범했다. 10년이 흐른 현재는 단원 23명을 둔 국내 최대 민간국악단으로 성장했다.

크라운해태제과의 후원으로 출범했지만 운영까지 기대는 것은 아니다. “기업에서 모든 것을 지원하면 자생력이 떨어진다”는 윤 회장의 조언에 따라 창단 이래 총 1000회에 가까운 공연을 전국 각지에서 펼치며 자체 수익도 창출했다.

김 감독은 “올해는 공연이 조금 줄어 운영비 중 후원금과 공연수익 비율이 6대4 정도지만 지난해에는 5대5였다”며 “크라운해태제과라는 큰 언덕을 발판 삼아 자생력을 갖춘 국악단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는 일과 삶의 방식이 모두 다른 기업인과 예술인이 만나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를 물었다.

김 감독은 “윤 회장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국악과 관련된 일을 함께 진행하며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거짓 없이 늘 최선을 다했다”며 “저의 진심을 윤 회장이 알아줘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본인에게 다가온 인연이 좋은 인연인지, 나쁜 인연인지 당시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을 대할 때 늘 진실한 마음으로 계산 없이 최선을 다하면 평생을 함께할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락음국악단 단원들. /사진제공=락음국악단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어느새 10년을 달려온 락음국악단의 정열적 활동이 국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을까.
“재밌는 공연,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지방 곳곳으로 공연을 많이 다녔어요. 정기적인 공연을 자주 하는데 지난해 왔던 관객이 또 공연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아요. 호응이 별로 없던 지역에서도 몇번 공연을 하니 이제는 관객들이 추임새도 넣고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도 많이 쳐주세요.”

국악 공연을 한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보는 사람은 없다. 한번 본 사람은 또 찾게 된다는 게 김 감독이 설명하는 국악의 매력이다. 관객 유형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국악단 설립 초기에는 어르신 관객이 많았지만 이제는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젊은이들, 아이와 동반한 부모들 등 가족단위 관객이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국악은 평생을 함께할 직업으로 삼기는 매우 힘든 직업이다. 국악을 배우거나 전공한 이들 중 사회로 나와 국악을 계속하는 비중이 10명 중 1~2명에 불과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고 락음국악단 같은 민간단체도 있지만 전체 국악인의 수에 비하면 매우 적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단원들에게 국악도 음악적으로 잘 만들면 분명히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며 “국악을 하는 후배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10년보다 앞으로 10년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꾸준히 정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