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자’는 누구일까.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나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을 떠올리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미국 <포브스>의 2017년 세계 부자 순위에 따르면 1위는 빌 게이츠(860억달러), 2위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756억달러), 3위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728억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2위 부자인 워런 버핏은 만 87세(1930년생)의 고령임에도 여전히 금융시장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버크셔해서웨이의 지분 37.4%를 보유한 대주주이자 1970년부터 CEO를 역임해온 워런 버핏을 만날 수 있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열렸다.필자는 이 행사에 직접 참석해 여러가지를 보고 느꼈다.
◆시골마을 오마하가 붐비는 이유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는 매년 미국 중부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에서 열린다. 오마하는 인구 45만명의 작고 조용한 도시다. 오마하로 도착하는 국제선 비행기는 거의 없다. 미국 내에서도 작디작은 도시가 1년에 딱 한번 바빠진다. 전세계에서 4만~5만명에 달하는 버크셔해서웨이 주주들이 오마하로 몰려드는 것이다.
야후를 통해 주주총회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 중계되지만 의외로 그 먼 길을 달려가 직접 참석하는 주주가 많다. 필자도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미국 오마하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워런 버핏의 말을 직접 듣고 그와 함께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주주총회에 참석한 다른 주주들에게 물었더니 역시나 비슷한 대답을 들려줬다.
주주총회에는 가족단위 참석자가 많이 보였다. 주주 한명당 입장 티켓을 4장까지 제공하며 가족단위의 참여를 유도해서다. 갓 돌이 지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주주가 눈에 띄어 참석하게 된 이유를 물어봤다. 초등학생 시절 본인도 부모님과 함께 주주총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며 그때의 소중한 경험을 자신의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1999년부터 워런 버핏은 매년 ‘자신과의 점심 한끼’라는 경매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경매 낙찰액은 전부 빈민단체에 기부된다. 지난해에는 점심 경매 가격이 345만달러에 낙찰되기도 했다. 워런 버핏과의 짧은 대화를 위해 대략 4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는 셈이다. 하지만 버크셔해서웨이 주주가 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하루종일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주주총회는 6일이지만 전날과 다음날에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많은 기업들의 쇼룸 행사, 주주들의 기부를 위한 단축마라톤 대회 등도 열렸다.
주주총회 당일도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만 86세 할아버지가 랩을 하는 영상으로 시작한 주주총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미국 인기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주인공 브라이언 크랜스톤이 워런 버핏을 위한 헌정 영상에 코믹한 모습으로 출연해 주주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아마존·구글 투자 안한 것 잘못”
4만5000명이 새벽부터 줄을 섰던 주주총회장에 오전9시30분 워런 버핏과 파트너 찰리 멍거가 등장하면서 본 행사가 시작됐다. 지난 1년간의 영업실적을 짧게 보고한 뒤 오후 4시30분까지 주주 50여명의 질문과 이에 대한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대답이 이어졌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무려 6시간가량 질의응답이 이어진 것.
워런 버핏의 평생 동반자인 찰리 멍거는 만 93세(1924년생)지만 힘든 기색 없이 유머도 섞어 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털어놨다. 찰스 멍거는 워런 버핏의 훌륭한 조언자로 알려졌다. 워런 버핏이 주주들의 질문에 막히는 부분이 있거나 보충 설명이 필요할 때 찰스 멍거에게 답변을 유도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우리나라 언론에도 단편적이나마 일부 내용이 전해졌지만 이번 2017년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오간 질의응답과정 중 독자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몇가지만 소개하겠다.
먼저 워런 버핏이 왜 아마존이나 구글에 투자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이 던져졌다. 그는 “아마존이나 구글이 이렇게 성공할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고 쿨하게 인정했다. 이어 “이들 기업의 실적이 대단했으며 삶의 질을 크게 개선시켰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그는 “아마존과 구글 등에 투자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과거의 결정에 후회하지는 않는다”며 “주식투자에서 과거에 대한 미련은 의미가 없고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기회에 잘 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워런 버핏이 투자를 시작한 애플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애플은 더 이상 IT기업이 아니라 필수소비재”라며 “확실한 포지셔닝을 통해 전세계 소비자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도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카콜라가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애플의 아이폰과 앱스토어는 소비재상품의 대표주식”이라며 “안 살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에는 중국인도 많이 참석했다. 워런 버핏은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성장성이 미국보다 크지만 성장률 자체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 아직은 선진화된 시장이 아니기에 주가의 등락이 크고 현재 중국시장에서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철학에 부합하는 주식을 쉽게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단기매매를 통해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투자가에게 제언했다. 그는 보유 주식이 조금 오르면 팔고 떨어지면 사는 기술적 매매에 대해 “타이밍을 잘 포착해 매매하는 것은 단순한 투기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장기적으로 좋아질 만한 주식을 꾸준히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투자와 투기의 차이를 명확히 알려준 일침이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