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며칠 전 건강보험료 통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건강보험료가 200만원 가까이 청구된 것. 청구금액을 확인해보니 건강보험료와 최근 2년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적용받은 의료비(약 구입비 포함) 공제금액이었다.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는 병원 진료비는 물론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다. 개인소득과 진료받은 병원 규모에 따라 공제금액이 다를 수 있지만 통상 건강보험 자기부담금은 20% 수준이다. 의료비가 1만원이라면 공단이 8000원을 지급하고 가입자가 2000원을 내는 식이다. 그런데 A씨의 경우 특정기간부터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을 받지 못했다.
◆장기연체 시 체납금액 완납해야
원인은 장기연체에 있었다. A씨는 2014년 3월부터 약 1년간 개인 사정으로 직장을 그만뒀다. 일을 구하려고 했지만 재취업 문턱은 생각보다 높았다. 간신히 2015년 2월 새로운 직장을 구했는데 이때까지 수입이 없어 11개월가량 건보료를 연체한 것.
공단은 6개월 이상 건보료를 연체한 체납자를 장기체납자로 분류한다. 장기체납자로 지정되면 공단은 미납금을 모두 낼 때까지 기타징수금(공단부담금)을 가입자에게 청구한다. 그동안 공단 측에서 미납청구서를 보냈지만 A씨는 잦은 야근 탓에 최근에서야 통지서를 확인했다. 그가 내야 할 금액은 11개월 미납분 90만여원과 미납금 110만원 등 총 200만여원이다.
A씨가 건보료 폭탄을 피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타징수금(공단부담금) 자진납부 신고기간에 가입자가 체납된 요금을 모두 완납하면 공단은 기타징수금을 전액 면제해준다. 정부는 3~5년마다 특정기간 동안 체납요금을 납부하도록 체납보험료 자진납부기간을 운영한다. 단 기타징수금을 제외한 보험료 원금과 이자(최대 9%)를 모두 납부해야 한다. 최근 시행된 시기는 2014년이다.
체납요금 자진납부기간은 통상 8월부터 11월까지 약 4개월간 운영한다. 별도의 신청절차 없이 이 기간 내 미납금을 완납하면 되고 일시불 납부가 어려우면 24회 분할납부도 가능하다. 분할납부를 신청한 후 2개월 이상 또 연체하면 소멸된 기타징수금이 다시 부활되니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진납부기간을 기다리며 계속 미납하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체납요금 납부를 계속 미루면 가입자는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마다 기타징수액이 계속 늘 수 있다. B씨의 경우 미납요금을 내지 않고 수년간 건강보험을 이용해 1000만원이 넘는 기타징수금이 청구됐다.
이 경우엔 두가지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 금액이 높지 않다면 미납금과 기타징수금을 한꺼번에 내거나 체납금액이라도 서둘러 납부해 추가 불이익을 막는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기타징수금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미납금을 모두 납부하면 다시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미납금을 모두 납부하는 날을 기준으로 이후부터는 기타징수금을 청구받는 불이익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체자에게 모두 기타징수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며 “미납금을 내면 자진납부기간에 기타징수금은 자동소멸될 수 있다. 기타징수금제도는 연체자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의도일 뿐 책임을 전가하려는 목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자진납부신고 신청기간 일정은 정부가 조율한다. 따라서 정부가 이를 시행하지 않으면 체납금액을 전액 냈다 하더라도 연체된 기간 동안 기타징수액 독촉장이 계속 발송된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정부정책에 따라 운영되므로 자진납부기간 일정이 언제 시행되는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취약계층 장기체납자, 어쩌나
기타징수금제도의 설립목적은 소득이 있고 체납금액을 충분히 낼 수 있는 가입자가 고의로 연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취약계층이다. A씨처럼 재취업에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취업하지 못하거나 취업하기 힘든 취약계층의 경우 기타징수금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제윤경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4대보험 체납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건강보험을 체납한 지역가입 249만가구 중 60%가 월 보험료 5만원 이하였으며 이들 가구 중 48%인 201만가구가 장기체납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료가 월 5만원 이하인 가구는 생계형가구로 분류된다.
중요한 것은 소득이 있는 계층과 취약계층을 어떻게 분류하느냐다. 일단 정부는 미성년자의 건보료 연대납부의무를 면제하는 법안을 지난 3월30일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는 이전까지만 해도 부모가 갚지 못한 건강보험료를 소득이 없는 미성년 아동에게 연대해 책임을 부과했다.
실제 공단은 세월호 참사로 부모를 잃은 7·9세 아동에게 유산으로 받은 집 등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건보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부랴부랴 제도를 재정비해 최근에서야 미성년자 건보료 연대 납부의무 폐지가 확정됐다.
미성년자 연대납부의무가 폐지됐지만 고령자나 10년 이상 연체자, 일을 할 수 없는 계층에게는 여전히 기타징수금을 청구한다. 현재 이에 대해 국회와 공단 결손처분위원회가 심도 있게 논의 중이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제윤경 의원은 “소득이 줄면서 기본적인 국가보험마저 체납하는 일이 늘고 있다”며 “이들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에 걸리면 더 많은 병원비를 부담해야 하고 공단으로부터 연체이자율 상환 압박과 각종 소득압류 등을 겪어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불가능하다. 과감한 상각처리를 통해 경제적 새 출발을 도와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