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업계가 잇단 ‘악재’로 깊은 시름에 빠졌다. “지급결제시장에서 카드사 도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뼈 있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수익원인 신용카드 가맹점수수료 인하 이슈에 정부가 최근 부가가치세 대리납부제와 신규가맹점 우대수수료 환급제 도입을 추진키로 하면서다.



◆가맹점·카드사 모두 반대
정부가 일부 업종을 대상으로 카드사 부가가치세 대리납부제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카드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맹점수수료율 인하만으로 연간 3500억원가량의 손실이 예상되는데 이 제도가 시행되면 손실액 추산조차 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부가세 대리납부제는 가맹점의 부가세를 카드사가 국세청에 대신 납부하는 방식을 뜻한다. 부가세는 상품·서비스 판매 시 매기는 세금으로 가맹점주는 판매액의 10%를 부가세로 납부한다. 소비자가 1만원짜리 물품을 사면 가맹점주는 10%인 1000원을 국세청에 내야 한다. 이때 세금은 국고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행정편의상 사업자가 대리징수해 매년 1월과 7월에 일괄 납부한다. 정부는 행정소모를 줄이고 사업자는 자금유동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한 장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가세 탈루가 발생함에 따라 세수확보와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카드사가 부가세를 대리납부토록 한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예컨대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신용카드로 물품을 결제하면 카드사는 그 대금을 카드결제 발생일 후 2일 내 가맹점주에 보내는데 이때 부가세를 제외한 금액만 가맹점에 건넨고 결제액의 10%(부가세)를 카드사가 직접 국세청에 내는 식이다. 이 시스템이 정착되면 연간 10조원 이상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가세 탈루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부가세는 근원적인 조세 인프라를 마련하는 세목으로 소득세보다 우선된다”며 “원천징수 형식을 활용해 부가세를 빠짐없이 징수하면 세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원칙을 확립할 수 있어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관련 인프라 구축과 제도시행에 드는 비용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국민의 세금징수 과정에 민간회사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라는 게 카드업계의 입장이다. 여기에 가맹점주의 현금유동성이 현저히 떨어져 가맹점주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드사 관계자는 “가맹점수수료 인하로 각사마다 비용을 줄여 악화된 수익을 보전하려 하는데 세금 대리납부 시 관련 인프라 구축·운영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또 “비용도 문제지만 카드사가 세금 징수과정에 개입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카드사 책임도 피할 수 없을 텐데 (이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가맹점으로선 현금 유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출의 10%면 상당한 수준인데 도산하는 곳이 속출할 수 있다”며 “세원확보 차원이더라도 반기인 정산주기를 한달로 줄이는 등 단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국세청이 할 일을 민간기업에 떠넘기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우대수수료 환급… 형평성 논란

우대수수료 환급제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가맹점수수료율은 전년도 매출실적을 기준으로 영세(2억원 이하)·중소(2억~3억원 이하)·일반(3억원 초과)가맹점으로 나눈 후 각각 0.8%, 1.5%, 최고 2.5%로 책정된다. 그런데 새로 문을 연 가맹점의 경우 전년도 실적이 없어 업종별 평균 수수료율(2.0% 내외)이 적용된다. 매출실적은 1년에 두번(6월 말, 12월 말) 국세청이 추산하는데 그 이후 영세 또는 중소, 일반가맹점으로 판별되는 셈이다.

우대수수료 환급제는 신규가맹점이 영세·중소가맹점으로 정해지면 이들이 매출 추산 전 지급했던 수수료 차액을 카드사가 돌려줘야 하는 제도다. 이를테면 2월에 창업한 자영업자가 6월 말까지 판매액의 2.0%를 카드사에 납부했는데 영세가맹점(수수료율 0.8%)으로 확인되면 5개월간 지급한 차액(1.2%포인트 분)을 카드사가 환급해주는 방식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수수료환급 방안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카드업계는 반발한다. 환급제를 도입하면 추징제도도 신설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영세·중소가맹점이 매출 확대로 일반가맹점이 되면 해당 가맹점이 우대수수료율을 적용받아 생긴 초과이익분을 카드사가 받을 수 있어야 형평성이 맞다는 것.

수수료 소급적용의 관점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고객이 은행에서 돈을 빌렸는데 금리가 떨어졌다고 해서 그간 냈던 이자차액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가맹점수수료 자체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돼야 할 부분인데도 영세·중소가맹점엔 복지 차원에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지 않느냐”며 “신규가맹점엔 업종별 평균수수료율을 책정하는 게 논리적으로도 타당하다”고 말했다.

윤종문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다음달부터 우대수수료율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 영세·중소가맹점 비중이 전체 가맹점의 90% 가까이 늘게 된다”며 “수수료율 인하와 소액결제 증가로 카드사는 영세·중소가맹점에서 수익을 거의 못 내는 상황인데 환급제까지 시행되면 우대수수료율 체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내비쳤다.

한편 정부는 다음달부터 가맹점 우대수수료율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 영세가맹점 기준을 연매출 2억원 이하에서 3억원 이하로, 중소가맹점의 경우 3억원에서 5억원 이하로 늘린다. 금융당국은 2억~5억원 구간의 소상공인이 연 80만원가량의 부담을 덜고 소상공인 전체(45만여명)에서는 연간 3500여억원의 수수료 절감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카드사로선 그만큼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7호(2017년 7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