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추세에 인구비중이 늘어난 노인 가운데는 질병을 안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가 많다. 해마다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치솟는 의료비와 보험료 부담으로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들은 ‘의료 빈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는 아직 미흡한 상태다. <머니S>는 연중기획 <노후빈곤 길을 찾다> 일곱번째 시리즈를 통해 노인의 의료빈곤을 야기하는 문제들을 살펴보고 개선과제를 고민해봤다.<편집자주>
기자가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한점순씨·90·가명)를 처음 마주한 건 10년 전 충남 천안의 한 요양병원에서다. 부모님과 친척들은 할머니가 아들딸도 몰라보는 상태니 충격받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의외로 첫째손주인 기자에게는 “이렇게 초라한 모습을 보여서 부끄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담당의사조차 놀라며 “치매환자라도 소중하고 애틋한 사람을 만나면 기억력이 또렷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할머니는 전문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 증상이 호전됐지만 문제는 신체 건강이었다. 그동안 요양병원과 집을 오가며 많은 일을 겪었는데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3차례의 골절과 뇌진탕 사고였다. 이런 일은 간병 과정에서 일어났다. 7명의 자녀가 번갈아 돌보다 각자 가정생활로 바쁜 탓에 간병인을 고용했는데 10년 동안 수십번 바뀐 간병인은 대부분 무책임했고 때로는 노환자의 생명까지 위협했다.
◆뇌진탕 사고 쉬쉬한 간병인
흔히 ‘간병 비극’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금융감독원과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에 따르면 환자 1인당 병원비를 제외한 평균 간병비는 한달에 40만~60만원이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만 65세 이상 환자나 저소득층일 경우 정부의 간병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의료복지제도가 많다.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가족살해 등 극단적 사건은 간병비 부담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대부분 간병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나 심신미약이다.
기자는 할머니를 간병한 경험이 지난 10년 동안 10번도 채 되지 않는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체력으로도 하루 간병을 하고 나면 몸이 녹초가 될 때가 많았다. 무게가 40㎏도 안 나가는 노인이지만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진 몸을 욕실로 옮기려면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발을 잘못 딛는 바람에 함께 넘어진 적도 있다. 배변 뒤처리를 하다 도망치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할머니를 돌보던 간병인 중에는 아무런 연락 없이 잠적해버린 경우도 있었다. 가장 아찔했던 사고는 5년 전의 일이다. 가족 중 한사람이 할머니의 머리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 간병인에게 따져 묻자 며칠 전 낙상사고가 일어났다고 털어놓았다. 그 사이 할머니는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하기를 반복했지만 가족들은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고 응급실에 가서야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조금 더 늦었으면 사망할 위험이 있었는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기자의 이모는 “치매노인을 간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직접 해봤기에 간병인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마음에 안 들어도 싫은 내색을 못했다”며 “하지만 단순히 성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간병인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는 반복됐다. 구순 노인인 할머니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골절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간병인들은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못해 병을 키우거나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했다.
◆무자격 간병인 고용하는 병원
할머니도 요양병원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치매환자치고는 정신이 또렷했던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병원이 싫어서 집에 가고 싶다”고 호소하는 일이 많았다. 요양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들을 접하면서부터다. 일부 병원에서는 야간 간병인 비용을 아끼려고 밤새 환자의 손발을 묶어두거나 다음날 아침 간병인이 출근한 후에야 배변 기저귀를 교체해주는 일들이 일어났다. 가족들은 이런 할머니의 요구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퇴원해 가정간병을 하게 됐다.
국내 요양병원은 규제가 느슨하고 무자격 간병인이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국인을 채용하는 경우도 많다.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에 따르면 경기도 내 요양병원 308곳의 간병인 중 중국인이 3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없을뿐더러 치매노인 간병에 대한 교육조차 받지 않는다.
2010년 한양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치매노인에 대한 간병인의 지식·태도가 간병역할 수행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서울 6개 노인전문병원의 한국인·중국인 간병인 229명 중 치매노인과 동거 경험이 있는 사람은 한국인 20.5%, 중국인 18.9%에 불과했다. 치매에 대한 지식수준은 평균점수 15점 기준 한국인 9.28점, 중국인 7.24점이었다. 간병인의 이전 직업은 가정주부가 가장 많았고 간병을 지속하기 가장 어려운 요인으로 근무조건의 열악함을 지목했다.
정부는 이런 간병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사용됨은 물론이다. 2013년 정부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도입하고 환자의 비용부담률을 낮췄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점이 많다.
지난달 21일 더불어민주당과 보건의료노조 주최로 열린 국회토론회에서 이규혁 공주의료원 간호사는 “간호·간병 업무가 전문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데다 환자가 원하면 커피도 타주고 모든 잔심부름을 해줘야 하는 것으로 인식돼 이직률이 높다”고 토로했다. 노조 조사 결과 간호등급 1등급의 상급종합병원에서 간호사 1명당 돌보는 환자 수는 13명으로 미국 5명, 일본 7명에 비해 많았고 근무강도 또한 높았다.
2012년 국내에서도 상영한 프랑스 영화 <아무르>는 이런 간병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영화는 노인 의료복지와 간병인 교육이 비교적 잘돼 있는 유럽임에도 비인간적인 간병서비스를 견디지 못해 결국은 남편이 치매에 걸린 부인을 살해하는 비극적 내용을 다뤘다.
잘못된 시스템으로 누군가는 소중한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려면 정부의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간병 전문교육이 꼭 필요하다. 노인은 우리의 미래다.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잃지 않으면서 여생을 지내다 떠나야 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498호(2017년 7월26일~8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