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휴대폰집단상가. /사진=뉴시스
2014년 10월1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이 시행된 지 정확히 3년이 지났다. 단통법의 핵심 조항인 지원금 상한제가 1일을 기점으로 일몰 후 폐지되면서 단통법의 실효성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이다.여기에 최근 단말기완전자급제(이하 완전자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여야 모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단통법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단통법은 존재의 이유를 잃는다.
완전자급제의 목표는 단말기와 통신서비스의 판매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현재는 통신사 대리점에서 단말기와 통신서비스를 한꺼번에 구매하는 시스템이지만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단말기는 유통망에서 구입하고 통신서비스는 이통사 대리점에서 가입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얼핏 보면 소비자 입장에서 단말기와 서비스를 각각 따로 구매해야 하므로 번거로워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가계통신비가 내려가고 시장원리를 해치지 않는 방식이다.
◆음지로 음지로… 깊이 숨어버린 보조금
단통법은 지난 정부의 가장 큰 화두였다. 단말기 유통시장에서 이동통신사들의 불법·과잉 경쟁으로 인한 소비자의 편익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도입된 법이었다. 특히 지원금상한제를 내세워 통신시장에 만연한 ‘불법보조금’을 뿌리뽑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하지만 통신시장 설립 초기부터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보조금은 더 깊숙한 음지로 들어갔고 통신사의 리베이트도 사라지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통신사 매장. /사진=뉴시스
서울 시내 한 휴대폰 집단상가에서 근무하는 A씨(27·남)는 “프리미엄라인으로 출시되는 스마트폰의 경우 대당 40만~60만원의 리베리트를 받을 수 있다”며 “단통법 시행 이후 아는 사람만 휴대폰을 더 싸게 살 수 있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실제로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소비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면서 특정 사용자가 ‘폰파라치’인지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보조금 공유도 스마트폰의 진동을 통해서만 암호처럼 확인할 수 있으며 만약 시스템이 정해놓은 규칙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가차없이 제재가 가해진다.
이 사이트를 통해 방문한 대리점은 일반 오피스텔에서 예약된 가입자에게만 스마트폰을 판매하며 가격을 비롯해 단통법과 관계된 모든 사항을 발설할 경우 즉시 퇴장조치되는 등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음성화됐다. 당연히 이전보다 소수의 사람만 저렴한 가격에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통법의 본래 취지인 소비자 편익 불평등이 해결되기는 커녕 한층 더 심화됐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한 시민단체는 “단통법, 지원금 상한제는 정부가 이통3사 및 제조사의 지원금 경쟁을 제한하는 잘못된 제도였다”며 “더 많은 소비자가 ‘호갱’이 되는 이상한 정책인 단통법에 대한 논의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 한 통신대리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스1
현재 통신시장은 그야말로 살얼음 판이다. 지난달 15일 선택약정할인제도가 25%로 상향되면서 가계통신비 인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어 정부가 내년 시행을 목표로 분리공시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외치는 등 속도가 붙었다.
그간 통신비 인하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격한 반응을 쏟아내던 이통사와 제조사들도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여론에 따르겠다”며 큰 반발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일각에서는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누구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며 “통신시장을 구성하는 어느 한 곳에서 피해가 발생할 우려도 적지 않아 모든 면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를 밀어붙이는 정부도 문제지만 과점체제를 만든 정책당국과 이통사에도 논란의 책임이 있다”며 “불완전경쟁이 만들어낸 현재 통신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쟁활성화가 답”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 시장이 스스로 경쟁을 통해 합리적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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