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편의점 식품 코너. /사진=박효선 기자
# ‘삑’. “아타타메마스까? (데워 드릴까요?)” 머리가 희끗한 편의점 직원이 상품 바코드를 찍으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워준다. 2분 뒤 전자레인지에서 뜨끈한 도시락을 꺼내 비닐봉투에 넣어 건네줬다.
지난 3일. 4박5일 일정으로 일본 교토를 방문했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자마자 지갑을 들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로손, 훼미리마트, 세븐일레븐…. 골목을 지나는 동안 만난 편의점들이다. 어느 편의점을 들어가든 다채로운 상품들이 고객을 맞는다.
편의점 입구부터 다양한 잡지와 신문이 좌르르 나열돼 있었다. 간편식 코너 매대는 도시락, 면, 샌드위치 등 각종 즉석식품으로 채워졌다. 일부 편의점 앞에는 차량 5~6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졌다. 슈퍼마켓처럼 채소, 과일, 육류, 반찬류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과연 일본은 편의점 왕국이다.
일본 편의점 디저트 코너. /사진=박효선 기자
◆도시락·디저트 천국
배가 고파 도시락으로 유명한 세븐일레븐부터 들렀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역시 간편식 코너. 간편식 코너에는 여러가지 음식을 오밀조밀 담은 백반 도시락, 덮밥, 삼각김밥, 초밥, 파스타, 메밀국수, 우동 등 별도의 조리 없이 구매 직후 전자렌지에 바로 데워 먹을 수 있는 수십종의 간편식이 가득했다. 다만 매장 안팎에 간편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없었다. 다른 편의점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밥 위에 얇은 대패삼겹살이 올려진 도시락과 돈까스 도시락을 집었다. ‘계란 샌드위치’도 함께 골랐다. 훼미리마트에서는 ‘야끼소바빵’을, 로손에서는 ‘모찌롤’과 ‘모리나가 푸딩’을 사왔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도시락을 풀었다. 데리야끼소스를 가미한 대패삼겹살에 밥을 싸먹었다. 고기가 얇아서인지 데리야끼소스가 잘 배어들어 고소함에 감칠맛을 더했다. 씹을수록 입 안에서 불향이 퍼졌다. 돈까스는 방금 튀긴 게 아니라서 다소 눅눅했지만 속에 든 고기의 두툼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후식으로 로손의 모찌롤과 푸딩을 먹었다. 로손 모찌롤의 쫀득함과 부드러움. 이 두가지 맛의 시너지는 언제나 새롭다. 빵의 식감은 쫀득하고 안에 들어있는 크림은 우유를 머금은 듯 부드럽다. 6조각의 로손 모찌롤은 먹을 때마다 남김없이 먹게 된다.
푸딩은 부드럽게 목 뒤로 넘어가 언제 입 안에 넣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황홀감을 선사한다. 푸딩 표면을 살짝 구워 푸딩의 부드러움과 묘한 시너지를 낸다. 바닥에는 진한 카라멜소스가 깔려 있다.
다음날 아침에는 세븐일레븐 계란샌드위치와 훼미리마트에서 사온 야끼소바빵을 먹었다. 계란샌드위치는 말랑말랑한 식빵 안에 마요네즈와 적절하게 섞은 계란반죽을 가득 채운 샌드위치다.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면 고소한 계란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리는 식감이 감칠맛을 낸다.
일본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야끼소바빵은 처음 먹어본 맛이다. 빵 속에 볶음면이 들어있는데 짭조름한 맛이 맥주와 찰떡궁합이다.
대부분의 음식이 훌륭했다. 실망한 음식이 없었다. 가격도 400~500엔(한화 4000~5000원) 정도라 우리나라 편의점 도시락과 비슷한 가격대다. 아끼지 않는 풍부한 재료와 일본 물가를 고려해도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왼쪽부터)세븐일레븐 세븐뱅크, 일본 훼미리마트 ATM. /사진=박효선 기자
◆편의점에서 금융서비스 제공
처음엔 편의점의 도시락·디저트 코너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갈 때마다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편의점 입구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다. 일본의 모든 편의점에서는 ATM을 통해 예금인출뿐 아니라 각종 공과금 납부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일본 직장인들은 퇴근시간 이후에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세븐일레븐이 2001년 설립한 인터넷전문은행 ‘세븐뱅크’는 아예 편의점 ATM서비스가 주력사업이다. 예금은 받지만 여신상품이 없다. 신용카드도 발급하지 않는다. 입·출금 등 대부분의 거래가 현금카드를 통해 ATM에서 이뤄진다.
세븐뱅크는 전국 편의점 ATM을 은행 점포망처럼 활용해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일본 전역에 있는 세븐일레븐을 오프라인 창구로 활용한다.
특히 해외관광객에게 세븐뱅크는 유용하다. 세븐뱅크 ATM 화면 및 거래명세서가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등 4개 국어로 제공돼서다. 새벽에 갑작스레 돈이 필요한 경우 세븐일레븐을 방문해 세븐뱅크 ATM을 이용하면 한국어로 안내받으며 한국에서 발급받은 비자·마스터카드를 통해 곧바로 엔화를 인출할 수 있다.
로손도 은행업에 진출한다. 내년 ‘로손뱅크’ 업무를 본격 개시할 예정이다.
훼미리마트에서 눈에 띈 것은 ATM 앞 자전거보험 가입 안내서. 자전거보험을 그 자리에서 들 수 있다. 보험계약 내용을 확인한 뒤 ATM을 통해 보험료를 납입할 수 있고 바로 보험증권이 교부돼 보험계약 효력이 시작되는 식이다. 보험료 납입뿐 아니라 보험금 인출도 ATM에서 바로 가능하다.
이처럼 일본 편의점은 ‘금융서비스’ 채널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국내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한국 편의점은 초반에 일본에서 건너온 업체들이 주도한 만큼 일본시장과 닮은 점이 많다”며 “1인가구 및 고령층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도 비슷하게 흘러가 한국 편의점 역시 일본 편의점처럼 지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국내 유통기업들이 간편식 및 편의점사업에 유독 신경쓰는 이유다.
그는 이어 “한국 편의점도 현재 인터넷은행, 택배 배송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앞으로 편의점 공간을 활용한 협업이 더욱 많이 늘어날 것”이라면서 “국내 편의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일본 편의점 시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0호(2017년 10월18~2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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