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DB

정부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 추진 등을 예고하면서 50만 보험설계사가 술렁인다. 설계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이뤄지는 입법이지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고용부는 지난달 보험설계사와 택배기사·화물차운전자 등 특수고용직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키로 결정했다.
앞으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를 담은 이른바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통과되면 보험설계사들의 노조설립은 물론 4대 보험 가입도 의무화될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노동3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고 취임 후 적극 추진 중에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는 현행법상 노동자가 아니며 개인사업자의 형태를 띠고 있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설계사들 "우리는 자영업자" 

문제는 혜택의 당사자인 보험설계사들이 이 법안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노동권 보장은 보험사들의 4대 보험가입에 따른 비용증가로 이어져 설계사 처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보험업계는 보험설계사의 4대 보험이 의무화될 경우 연간 약 6037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추가비용에 따른 손실 보전은 결국 설계사 수수료 축소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또한 보험사들은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사측과 설계사간 대립이 잦아져 불필요한 노무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설계사 감축이나 구조조정으로 인한 영업점 폐쇄 등이 진행됐을 때 노사 분쟁은 불가피하다"라며 "여기에 소요되는 노무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용보험가입 의무화에 대한 설계사들의 인식./자료=보험연구원
보험설계사들의 노동조합 가입 의향./자료=보험연구원


보험설계사들이 실제로 노동권 강화를 주장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근 보험연구원이 보험설계사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조사해 발표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입법에 대한 보험설계사 인식조사'에 따르면 설계사들은 고용형태로 근로자(19.4%)보다 개인사업자(78.4%)를, 납세형태도 근로소득세(19.5%)보다 사업소득세(76.4%) 납부를 선호했다.

업무환경상 스스로를 자영업자라고 생각하는 것. 현재까지 대법원 판례나 행정해석 및 노동위원회도 일관되게 보험설계사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특수고용직 노동권 강화 법안이 시행되면 설계사들은 개인사업자가 아닌 근로사업자로 활동하게 돼 세금부담이 커진다. 보험설계사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사업소득세 3.3%만 내지만 근로자로 인정될 경우 이보다 높은 세율의 근로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노동조합 설립에 있어서도 설계사들 간의 의견은 엇갈렸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보험설계사 노조 설립 시 가입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3.9%, 잘 모르겠다가 12.3%, 가입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53.9%였다. 10명 중 6~7명의 설계사는 노조가 설립돼도 가입을 망설이거나 미가입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는 설계사들이 노동권 보장으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임금교섭이나 복지문제보다 노조활동에 따른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보험사 전속 설계사 A씨는 "설계사들 대부분 자영업자라는 인식이 크고 자신의 수익이 우선이지 동료 설계사들의 노동권리를 우선 시 하지는 않는 편"이라며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 해도 적극 활동할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보험사-설계사, 모두 만족할 법안 필요

일부 조사결과로 전체 보험설계사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8월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보험설계사 중 74.6%가 고용보험 가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연구원 조사에서는 고용보험 의무가입 제도에 대해 설계사 38%가 반대했으며 45.5%가 본인부담이 늘어나므로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설계사 B씨는 "설계사의 노동지위를 강화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실제로 주변 설계사 중에는 고용보험 가입을 원하는 사람도 많다"면서 "다만 무조건 법안을 추진하기보다 사측과 설계사 모두가 만족할 만한 입법내용이 제정돼 피해를 입는 노동자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