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용 블록체인 세계시장의 규모가 2016년 25억달러에서 2025년 199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인 가운데 이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 보험사 경쟁력 확보의 관건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감에 비해 국내 보험업계의 블록체인 성장속도는 더딘 편이다. AI의 경우 보험사별로 자동답변, 스마트청구 등에 접목해 서비스로 점차 발전해가는 추세지만 블록체인은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상태다.
◆데이터관리 혁신 기대
보험업계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보험사 데이터 관리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어서다. 지금은 중앙시스템에서 문서, 정보, 데이터의 위변조 유무를 공증하지만 블록체인은 모든 정보가 고리처럼 연결돼 모두가 주체가 된다. 어느 한곳을 해킹해도 다른 주체가 무한대로 존재하기 때문에 탈중앙화가 가능해진다.
이런 식으로 모든 보험가입자의 데이터가 모아져 관리가 수월해지면 보험금청구 프로세스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이는 보험사의 리스크관리 향상과 소요시간 단축 및 비용절감으로 이어져 보험료 할인도 가능해진다.
특히 블록체인을 활용한 전자문서는 보험·의료업계에 접목이 가능하다. 예컨대 병원에서 치료 후 자동으로 보험금 청구가 된다. 현재 병원의 진단서, 보험사 제출 서류는 오프라인으로 진위여부를 확인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되면 문서가 위·변조 여부를 검증할 수 있어 진단서나 보험사 서류를 간단하게 모바일로 처리할 수 있다.
국내 보험사 중에서는 교보생명이 업계 최초로 블록체인을 활용한 보험금 자동청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삼육서울병원, 가톨릭대성빈센트병원에서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인 보험금 청구제도는 100만원 미만 소액 보험금을 고객이 청구하지 않아도 보험사가 알아서 지급하는 서비스다.
이 기술은 정부가 주관한 ‘사물인터넷(IoT) 활성화 기반조성 블록체인 시범사업’ 중 하나로 각종 증빙서류를 발급받은 뒤 보험사에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대폭 축소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교보생명은 시범사업을 마치면 올해 안에 전국 20개 병원을 대상으로 모든 고객에게 보험금 자동청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보험사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헬스케어에도 블록체인이 활용될 수 있다. 고객의 데이터가 효율적으로 모일 경우 환자의 생활패턴까지 관리하기 수월해져서다. 현재 병원은 환자의 정보를 공유하지 않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확대되면 병원간, 그리고 보험사간 환자의 의료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규성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보험사는 블록체인을 통해 고객 및 담보물에 대한 정보를 보관·유지할 수 있어 보험사기방지와 보다 정확한 보험료 산출이 가능해진다"며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과거에 비해 보험금 지급처리 소요시간은 3분의1로 단축되고 비용도 5분의1로 절감될 것"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 보험'이 아직 걸음마단계인 국내와 달리 해외는 이미 관련 상품이 출시됐다. 개인보험시장에서 글로벌 보험사 악사(AXA)는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인 피지(Fizzy)를 활용한 항공지연보험 상품을 선보였다. 이 보험 가입자는 탑승 예정자가 비행기 2시간 이상 지연 시 보험금을 지급받는다. 보험사가 블록체인 기술로 직접 항공교통기관과 연계돼 관련 데이터를 얻고 보험 계약기록을 보관·유지하다가 항공 지연 후 2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상업보험시장은 해운회사 주도로 항구와 세관당국으로 구성된 블록체인 생태계(XL Group) 안에 보험사가 참가하는 방식으로 사업모델이 탄생했다. 재보험의 경우 보험회사들로 구성된 블록체인(B3i)을 통해 재보험사와 원수회사 간 계약내용을 공유한다.
◆신기술 도입에는 소극적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만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을 일으킬 여지가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처리 목적을 달성한 경우 해당 정보를 파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전체 블록의 무결성 유지를 위해 일부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신용우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블록체인 기반의 수많은 아이디어가 구현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국가 전략 수립과 법제도 정비 등 전방위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의 특성이 현행 법령과 상충하거나 포섭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내 보험사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블록체인 도입에 소극적인 상태다. 올 들어 MG손해보험은 블록체인 전문기업 큐브인텔리전스, DB손해보험은 핀테크 기업 데일리금융그룹, 악사(AXA)손해보험은 인슈어테크 스타트업 직토(ZIKTO)와 제휴를 맺고 각각 블록체인을 활용한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신상품 개발은 자동차보험에 한정됐다. 생보사는 헬스케어 등에 블록체인을 접목한 상품개발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을 못잡는 분위기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AI와 빅데이터, 블록체인이 인슈어테크 핵심 키워드로 거론되지만 기술이 워낙 복잡하고 적용가능한 부분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보험금 자동청구 부분에 활용하려는 논의가 이뤄졌지만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