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1세가 처형당하기 전 갇혀 있던 런던탑. /사진=이미지투데이
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연말연시는 인사(人事)의 계절이다. 한해의 공과를 평가해 신상필벌로 진용을 새로 갖춰 잘한 것은 계속 이어가고 못한 것은 고친다. 새로운 도전 과제를 세워 목표를 한 단계 높이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함이다. 용인(用人)이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연례행사다.
사람을 잘못 쓰면 일을 그르쳐 회사와 국가가 망할 수도 있지만 인재를 제대로 기용하면 회사와 나라가 번창한다. 그런 사례는 역사에 수없이 많다. 오죽하면 ‘인사가 만사다’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다.

◆밀실담합이 망친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잘 쓸 수 있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바로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삼고초려 해 모신 것처럼, 주공(周公)이 인재를 맞기 위해 먹던 밥을 뱉고 감던 머리를 잡았던 것처럼, 세종이 신분차별을 건너 뛰어 장영실 같은 인재를 등용한 것처럼 능력 있는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다.


<주역>에서도 “문 밖에 나가 사귀니 성공이 있다”, “관(벼슬)에는 변화가 있으니 곧아야 길하다”고 강조하며 문호개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몸을 낮춰 국민 사이로 들어가 그들과 교류하며 민심을 잡아야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문을 닫고 안에서만 속닥속닥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종씨 집안에서 사람을 모으니 옹색하리라”고 한 동인괘 육이효가 그것이다. 오로지 덕망과 재능만을 살펴 인재를 등용하는 광원무사(曠遠無私)의 열린 마음 없이 그저 친하다는 것만 알아 자기 사람만 등용하면 일을 그르친다는 지적이다. 이는 “자식에게 매이면 남편을 잃는다”는 계소자실장부(係小子失丈夫)라는 말과 같다.

‘계소자실장부’의 사례는 영국 왕으로서 전무후무하게 단두대에 머리가 잘린 찰스1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즉위한 뒤 선대부터 권력을 전횡했던 버킹검 공의 잇단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를 적극 감싸 안았다. 이는 계소자에 해당한다.


이후 의회가 버킹검 공의 탄핵을 요구하자 의회 해산으로 맞서 결국 내전으로 치달았다. 왕당파(기사당)와 의회파(원두당)로 갈린 싸움에서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가 승리했다. 그 뒤에도 찰스1세는 몇차례 재집권을 시도하다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는 실장부다.

◆찰스1세는 사람을 몰랐다

사람을 잘 쓰지 못해 목이 잘린 찰스1세는 사람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람을 잘 쓰려면 사람을 잘 알아야 하는데 지인(知人)을 하지 못해 용인(用人)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사람을 아는 것은 앎(知)을 이루는 핵심이다. 공자는 번지가 앎에 대해 묻자 “사람을 아는 것”(知人)이라고 답했다. 번지가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자 공자는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으면 굽은 것을 곧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번지가 여전히 깨닫지 못하자 자하가 나섰다. “순임금이 다스릴 때 고요(皐陶)를 쓰고 탕임금 때 이윤(伊尹)을 발탁하니 부인(不仁)자들이 멀어졌다”고 했다. 자갈밭에서 옥을 골라내듯, 뭇사람들 속에서 제대로 된 인재를 알아보고 발탁함으로써 정사(政事)를 옳게 펴면 나라가 바르게 다스려져 백성이 편안하게 산다는 이치를 터득하는 게 진정한 앎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또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 한다”고 했다. 사람을 아는 것은 언어행위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행위의 감정적 의미들과 그 의미들의 얽힘을 공감적 이해로 확장하는 일이다. 쉽게 말해 국민이 무엇을 진실로 바라는지, 즉 민심(民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능력자는 기꺼이 등용해야

43세에 미국 최연소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는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실인사’라는 비판은 제기되지 않았다.

춘추시대 진나라의 중군위였던 기해(祁奚)는 자신의 후임으로 원수처럼 지내던 해호(解狐)를 추천했다. 불행히도 해호가 임명받기 직전 사망하자 기해는 그의 아들인 기오(祁午)를 추천했다. 좌구명은 이에 대해 “기해는 원수를 추천하며 그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을 추천하면서 사사롭게 편애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민심이 인정할 정도로 능력이 있다면 최고 지도자는 그의 자녀나 형제자매라도 기꺼이 등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능력이 한참 미달되는데도 그저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자리에 앉게 하는 것은 자리를 꿰찬 사람은 물론 그를 쓴 지도자와 국민 모두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트린다.

<대학>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정리한다. “어진 사람을 보고 천거하지 않거나 천거하더라도 높은 자리에 등용하지 않는 것은 운명이고, 올바르지 않은 것을 보고 물리치지 못하고 물리치되 멀리 하지 못하는 것은 허물이다.”

자신을 죽이려고 화살을 쏜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등용해 춘추오패의 첫번째 으뜸패자가 됐던 제환공은 그 운명을 알았던 사람이었다. “내부에서 등용할 때는 친척을 피하지 않았고 외부에서 발탁할 때는 원수도 꺼리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자신을 죽이라고 했던 위징(魏徵) 등을 등용해 ‘정관의 치’를 이루어낸 당 태종도 마찬가지다.

반면 ‘개원의 치’로 태평성대를 일군 현종은 무능한 간신으로 알려진 이임보에게 정사를 넘겨주고 양귀비와 놀아나면서 안록산의 난을 초래해 황위도 잃고 양귀비도 잃는 비운을 맞았다. 나와 친한 내편을 챙겨주려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두루 통하는 패치워크(짜깁기, 접붙이기)의 교훈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3호(2019년 1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