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대로. /사진=이미지투데이



서울이 물가가 싼 도시인가 비싼 도시인가, 고물가 시대인가 저물가 시대인가.
올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세달 연속(1월 0.8%, 2월 0.5%, 3월 0.4%) 전년 동월비 0%대에 그치면서 1분기 기준으로는 0.5%로 내렸다. 분기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통계가 처음 나온 196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민간 소비가 위축됐다는 방증이며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신호다. 심지어 저물가 상태가 장기간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행 관계자는 물가상승률 둔화 요인을 석유류와 채소류 가격의 약세, 신학기에 시행된 고교 무상급식, 납입금 부담 경감 등 복지정책으로 인한 근원물가 하방압력 등을 거론하면서 소비 측면보다는 공급 측면에서 설명했다. 2009년 이후 물가지수 상승률은 10년간 내려가는 추세에 가깝다.


서울 명동 거리. /사진=이미지투데이


◆서울 생활비, 세계 중 7위
한편 올 3월에 발표된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보고서 ‘2019 Worldwide Cost of Living’(전세계 생활비)에는 전세계 주요 133개 도시 중 서울의 생활비가 비싼 순위 7위에 올랐다. 식품·의류·주거·교통·학비 등 160여개 상품·서비스 가격을 반영한 지수를 만들면서 뉴욕을 100으로 하여 상대적인 평가로 순위를 정했다. 작은 도시국가로서 인구밀도가 높은 싱가포르가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비싸다고 인식되는 서유럽 및 북유럽에서 스위스의 취리히와 제네바, 덴마크의 코펜하겐, 프랑스의 파리, 그리고 아시아의 홍콩과 서울이 5년 연속 10위권에 들었다. 도쿄는 2013년까지는 전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였지만 낮은 인플레이션과 달러화 약세로 순위가 많이 밀렸다. 서울은 2013년 21위였으나 2014년 15위, 2015년 9위로 순위가 점차 상승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성격의 자료를 보면 과연 서울의 물가가 낮은 건지 높은 건지 혼란스럽다. 세계 주요 도시 중 서울의 생활비 순위와 국내 물가지수의 현황을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이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한국인이 일상생활에서 소비지출하는 것 가운데 구입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460여개 상품 및 서비스를 품목으로 정하고 이들의 구입가격을 조사해 산정한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생계비지수나 생활비지수로 부르기도 하지만 완전히 같은 의미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소비자물가에서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일상생활에 필수적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는다. 즉 소비자물가 산정에 들어있는 품목 가운데 생계비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들어있더라도 중요도가 크게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물가에 포함되는 담배, 술, 해외여행비 등을 생활필수품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한 특정 품목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 및 의미가 국가에 따라 크게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주식이 밥이지만 서양에서는 빵이다. 한국도 요즘은 아침에 빵을 먹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디저트나 간식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빵 1㎏의 평균 가격은 15.59달러로 상위 10위권 내 도시 중 가장 비싸게 평가됐다. 반면에 다른 주요 도시에서의 빵값은 코펜하겐이 kg당 3.87달러, 취리히 5.31달러, 제네바 6.45달러, 오슬로 5.52달러, 파리 6.33달러, 시드니 3.99달러, 싱가포르 3.71달러, 홍콩 4.16달러, 텔아비브 5.10달러 등으로 서울의 5분의1 내지 2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5년 동안 빵값 상승률은 서울이 69%에 달했지만 코펜하겐(-13%), 취리히(-13%), 제네바(+15%), 오슬로(-13%), 파리(-29%), 시드니(-21%), 싱가포르(+14%), 홍콩(+3%), 텔아비브(+15%) 등은 소폭 오르거나 오히려 내려간 경우도 많았다.

한편 와인과 맥주값은 서울이 두번째 또는 세번째로 비싼 도시로 나타났다. 한국에서는 술을 마실 때 맥주나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소주를 많이 마시는데 세계 여러 도시의 생활비 비교에서는 소주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처럼 선진국 도시들과 비교할 때 서울의 생활비가 높게 산정되는 요인들이 있다.



문화에 따라 다른 생활물가
한국은 농토가 좁고 산지가 많기 때문에 평야가 넓은 미국이나 농업과 축산업에서 앞서 있는 나라들에 비해 농산물의 생산비용이 높다. 날씨의 변동이 심하면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도 흔하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유럽에서도 식재료를 마트에서 사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생각보다 돈이 적게 들어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인건비와 서비스 요금이 비싸기 때문에 음식비가 상당히 높아진다.


한국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인건비 비중이 높은 일반 대중음식점에서의 가격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김밥, 피자, 치킨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서민음식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입지가 좋은 장소는 높은 임대료만큼이나 원가상승 요인도 발생한다. 편의점과 마트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햇반 등 가공식품 가격과 주류 및 음료 가격도 최근 연쇄적으로 올랐다. 우리 고유 음식 준비에 필수품목인 된장·고추장 가격마저 올라서 식탁물가 상승은 식비 비중 높은 일반 가정의 생활비 부담을 높이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로서 수십년 만에 최저치라는 것이 다른 나라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운송 수단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와 발전연료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시내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요금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보다 빠르게 상승해 왔지만 정부에서 관리하는 공공요금은 선진국에 비해서 훨씬 낮게 유지됐다. 소득이 선진국보다 낮기 때문에 월소득 대비 대중교통비 지출 비중은 비슷하게 나타난다. 앞으로 석탄이나 원자력 발전을 줄여가고 이보다 발전단가가 2~3배나 높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리는 정책이 시행됨에 따라 서민의 발이라 할 수 있는 지하철, 열차 등 전기로 운행되는 대중교통 수단의 요금 상승 압박이 상당해질 것이다.

통신료가 현재 OECD 국가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데 LTE 전국망을 가장 먼저 완성한 국가로서 통신망 품질은 가장 좋다. 초고속 인터넷과 유선전화, IPTV, 이동전화 등을 결합한 상품의 요금도 저렴하다. 하지만 가계의 무선통신요금 지출액은 상위권이다. 이는 데이터 소모가 많은 동영상 시청과 모바일 쇼핑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품목이라도 평균단가가 낮아도 가정에서 소비량이 많거나, 평균 단가가 높아도 소비량이 적으면 물가 수준과 실제 생활에서의 소비 수준 사이의 괴리가 커질 수 있다.

일률적 잣대의 물가평가는 부적절

달러로 환산된 물가가 낮게 평가된다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뉴욕의 생활비를 100으로 놓고 상대적으로 평가한 수치가 15밖에 안 되는 카라카스는 전세계 133개 도시 중 최하위 133위다. 수년간 경제가 빈사상태인 베네수엘라는 화폐 평가절하 이후 대혼돈에 빠졌으며 하이퍼인플레이션과 생필품 부족으로 수백만명이 나라를 떠났다. 석유 매장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의 경제가 이토록 추락한 것을 보면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다. 그 외 최하위권에는 132위(25)인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131위(33)인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130위(35)인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129위(39)인 인도의 방갈로르, 127위(40)인 파키스탄의 카라치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등이 있다. 생활비가 가장 낮은 나라들은 대체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도 매우 낮다. 물가와 인플레이션에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적정수준이 존재한다.

국가별 물가비교 통계는 가중치와 품목선정 등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비교하는 것은 힘들다. 개인 입장에서는 통계로 나오는 물가와 생활비 데이터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인의 생활패턴과 소비습관이다. 똑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행복감은 비슷하게 유지하면서 지출액을 줄이고 저축을 늘릴 수 있다. 수입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물가가 높은 품목에 대한 소비성향이 크면 삶의 여유가 줄어든다. 물가가 낮은 품목에 대한 소비를 통해서도 충분한 만족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경제적인 삶의 지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9호(2019년 4월23~2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